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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天에 자리한 [태양의 여자]

박종구 |2008.09.15 08:17
조회 3,600 |추천 22

--제목에서 말해주듯, [태양의 여자]는 강렬한 드라마다. 기존의 드라마에서의 여주인공은 흑기사의 존재가 필수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오직, 여자!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물론, 두 여주인공과 더불어 두 남자도 등장한다. 이 두 남자의 역할은 여주인공을 태양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의 강도와 시기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굳이 재벌 2세가 아니더라도, 굳이 터프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마음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해낼 수 있는 역할이다. 여기서 잠깐, [딴생각]을 하고자 한다.

 

 

 

--'태양'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태양은 우리가 눈을 뜸과 동시에 출발하여 각자의 일상을 마무리 지을 즈음이면 노을이라는, 미련을 남겨둔 채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사라져 버린 태양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내일의 태양은 내일 또다시 뜰 테니까." 이 사실을 우리는 수천 날을 살아오면서 자연히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만약, 내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태양이 솟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태양은 강렬함과 돋보임의 상징이자, 생명을 키우는 포근함과 따뜻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기서 회색연필은 태양의 두 번째 속성을 염두에 두고 이 드라마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뜰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윤사월(이하나 분)과 신도영(김지수 분). 이 두 여자 중 과연 누가 진짜 태양일까? 필자는 둘 다 아니라고 본다. 진짜 태양은 사랑이다.

 

 

 

--입양된 김한숙(신도영의 본명)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태양의 빛을 받으며 삶의 아픈 흔적들을 지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동생의 출생.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동생. 날마다 쫴주던 태양은 어느새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도영이의 입양된 목적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최정희 교수의 불임 때문이었다. 최 교수 부부는 아이를 원했다. 그러나 하늘은 10년 동안 아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입양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지영이가 태어날 거라는 걸 알았다면, 애초에 도영은 그 집에 입양되지 않았으리라. 자연히, 도영이의 설 자리는 없어지게 된다. 아니, 아무리 해바라기처럼 사랑을 향하여도, 그것은 구걸 정도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으리라. 만약, 최 교수 부부의 입양 목적이 불임 때문이 아닌, 지영이가 태어난 후, 외국으로 입양되는 대한민국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회적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한 아이가 [태양]이라면, 또 다른 아이는 그 태양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 밝혀주는 [달]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별]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어린아이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사랑의 강도와 진정성을 정확히 알아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린아이에 대한 정확한 나이 기준은 없다. 사랑의 빛을 덜 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에 목말라하며 작은 사랑에도,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주저 없이 내어 놓곤 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동생 지영이를 서울역에 버릴 당시, 도영이의 사랑 충족에 대한 나이는 아주 갓난아기였으리라.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으리라! 도영은 그 본능에 아주 충실했던 것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던 햇볕을 송두리째 가로막는 지영이와의 공존은 힘들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 본능은 결국, 동생 지영이를 서울역에 버리도록 자연 조정한다. 이후, 도영은 인생 길 위에서, 그것도 절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한 질긴 늪에 빠벼버리게 된다.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고 마는, 처절하고 잔인한 늪! 흔히들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다시 모두 다 풀고 새로 끼워야 한다고 한다.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잘 못 끼워진 첫 단추를 다시 바로 끼우고자, 이미 끼웠던 단추들을 모두 풀어 자신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난다면, 그 누가 쉽사리 그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미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눈이 밝아져서 부끄러움이라는 수치를 깨닫게 되었다. 도영 입장이라면 그 누가, 도덕과 양심을 들먹이면서 자신의 알몸을 선뜻, 드러내려 하겠나. 동생 지영이를 버린 것이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것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도영이라는 인물의 삶 속, 첫 단추는 훨씬 이전부터 잘 못 끼워졌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에 간절히 목말라하던 도영이었으리라. 그토록 바라던 포근하고 따뜻한 사랑의 볕에 영혼의 안정을 찾아가던 도영이. 그녀 앞에 불쑥 나타난 지영이. 지영이는 단순한 동생이 아니었으리라. 자신에게 쏟아지던, 태양의 빛을 가로막는 커다란 인형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도영은 사랑의 빛을 가로막는, 지영이라는 커다란 인형을 버려야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했으리라. 그리하면 잃어버린 사랑의 빛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으리라! 그 당시, 재산을 탐했겠는가. 오직, 사랑의 빛을 탐한 것이다.

 

 

 

--"'탐하지 마라'라는 말이 율법에 없었더라면, 우리는 탐심이 죄라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라는 말이 성경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우리는 '탐하는 것은 죄'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죄악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탐심이 죄가 된 이상, 그 누구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 도영은 커다란, 그러나 가벼운 인형을 안고 서울역으로 간다. 그리고는 버린다. 도영에게는 인형이었으니까. 버스를 세우고 다시 찾아간 것은 버려서는 안 되는 인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삶이 어디 자신의 뜻에 항상 따라주던가! 사라져 버린 작은 인형. 불러봐도 대답없는 무거운 인형. 그리고 20년이라는 긴 세월에 묻힌 도영과 사월의 아픔은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제 윤사월의 기억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아니, 이미 사월은 자신이 신지영이라는 사실을 시청자에게 확실히 보여주었다. 어릴 적 기억에 이끌려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 그리고 사월 앞에 펼쳐진 너무도 선명한 기억의 파편들. 분명히 사월의 이것은 [데쟈뷰]가 아닌, [현실] 그 자체이다.

 

 

 

--사월의 집 앞에 동시에 서 있는 네 사람. 처음 보던 짝이 아니었다. 바뀌어 있었다. 여기서 필자는 도영과 준세의 마음을 의심한다. 도영은 노골적인 변심을 드러낸다. 동우에게 받은 장미꽃다발과 동우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로. 준세는 마음에 이중 막이 있는 듯하다. 절대, 일편단심인 듯 보이지만, 필자의 눈에는 준세의 영혼이 갈망하는 참사랑은 도영이 아닌, 사월이다. 중요한 약속을 핑계로 자신 대신 동우라는 멋진 남자와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는 것을 본 준세는, 어쩌면 질투보다는 기회를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신도영을 떠날 기회! 영혼이 갈망하는 사월이라는 참사랑을 찾아갈 기회! 사월이 최 교수 부부의 친딸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자신을 버린 사람이 도영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예고편을 보았다. 너무 느리지도 그렇다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전개다. 이제는 윤사월, 아니 신지영에게 더욱 강렬한 태양의 빛이 비추어질 것이다. 또한, 사월은 자신을 아픈 세월 속으로 내던진 언니 도영에게 '복수' 또는 '용서'라는 빛을 비추고자 할 것이다. 필자는 '용서의 빛'보다 '복수의 빛'을 기대한다. 필자가 기대하지 않아도 사월이 보여준 행동으로 볼 때, 사월의 복수는 불가피하다. 도영보다 더 모진 '복수의 빛'을 발산할 사월의 모습이 벌써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찔하다. 하지만, 그 강도가 거셀수록 결말에 자리할 김인영 작가가 밝힌 '인간애'에 대한 진한 감동의 빛은 더욱 빛날 것이다. 갑자기 떠오르는 말이 있다. "용서는 신만이 할 수 있다." 사월의 복수를 보고 싶다. 단순하지 않은, 도영보다 더 치밀하고 차가운 복수의 빛! 그 과정이 정말 궁금하다. '일상의 용서는 신만이 할 수 있다.'하더라도... 드라마와 시청자의 관계는 다르지 않을까? 아니, 달라야만 하지 않을까? 드라마를 지켜보는 시청자는 신이다. '용서'라는 빛은 사월의 몫이 아닌, 시청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몰락하는 태양과 타오르는 태양? 여기에서의 태양은 앞서 언급한 두 번째이 것이 아닌, 첫 번째의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표현이다. 작가의 기획의도에서 엿볼 수 있듯이 과연, 윤사월은 복수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용서를 택할 것인가! 복수와 용서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복수나 용서 모두 하나의 동일한 감정에 뿌리를 둔 거라 본다. 단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서 선택되는 것이리라. 부디, 힘겹게 흙을 뚫고 올라온 두 여린 새싹에, 따뜻한 햇볕과 촉촉한 단비가 내려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드라마가 되기를 바라면서, 회색연필의 [딴생각]을 끝장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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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22
반대수0
베플김미선|2008.09.16 03:15
악녀같이나오긴햇지만 신도영이라는여자가 너무불쌍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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