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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페스트, 뮌헨 맥주 축제

이혜원 |2008.09.20 04:36
조회 117 |추천 0


이 글은 재독 피아니스트 Kim Schneider가 쓴 글로, 제게 소개를 요청해 와 대신 소개함을 밝힙니다.

 

   (키미! 토요일 네 시 반이야, 잊지 마, 응?)

(알았어, 시간 맞춰 갈게.)

벌써 일 년이 지났나? 시월 축제가 또 시작되는 걸 보니…….

우도의 전화를 받고 나니 시간이 작년에서 올해로 건너뛴 것 같았다. 맥주 마시며 춤추며 마구 웃던 기억이 어제같이 생생한데, 벌써 한 살을 더 먹었나?

흠, 그럼 어떡하나? 옷을 새로 장만할까?

우도의 여자 친구들은 틀림없이 최신 유행 스타일로 쫙 뽑고 올 텐데! 뎐델(바이에른 트라흐트, 즉 바이에른 고유 의상으로, 여자 의상을 보통 뎐델이라 줄여 부른다)은 보통 때는 입을 기회가 없는데. 남부 독일 애들은 특별한 행사 때마다 입으니까 거금을 투자하겠지만 난 그냥 작년에 입었던 옷으로 버텨야겠다. 뎐델은 형식상 우리나라 한복에 비교되는 의상으로, 남부 독일에서는 주로 경축일에 특히 시골에서 집안 행사 때 차려입는다.

남자들 의상은 짧은 가죽 아니면 무릎까지 내려오는 가죽 바지에 수놓은 흰 와이셔츠에다 손으로 짠 앞이 터진 스웨터나 재킷(가죽 아니면 천)을 걸친다.

참, 두꺼운 긴 양말에 가죽(거의 섀미 (chamois) 가죽) 신발을 빼놓을 수 없다.

전형적인 모자도 있긴 한데 후텁지근한 시월 축제 때 천막 안에서 본 적은 없다. 여자 옷은 원피스 스타일이나 투피스 식으로 아래위가 떨어진 뎐델, 거기다 몇 년 전부터는 남자들도 짧은 바지 차림이 유행하고 있다.

내 친구들은 가죽(섀미) 신발(꽤 비싸다)까지 제대로 갖춰 신으라며 올핸 꼭 장만하라고 날 꾀었다. 하지만 난 얼굴이 전형적인 한국인이라 100퍼센트 완벽하게 차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하며 이십 년째 사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보다 진짜 이유는 투박한 가죽 신발이 너무 싫다. 옷은 앞가슴이 깊이 파인 블라우스나 엉덩이 부분이 빈약한 내 체형을 감싸 주는 치마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몇 번 눈 질끈 감고 투자했지만 신발은 아직 살 생각이 없다.

편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좀 더 나이가 들어 높은 신발이 부담스러울 때 신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위로해 본다.

이틀 후면 뮌헨의 우데 시장이 통 맥주를 터트리며 개막식을 열 것이고 라디오에서도 계속 ‘O` Zapft is’(병마개를 딸 것이여/바이에른 사투리)가 나오며 이번에는 ‘50리터가 넘는 맥주 통 꼭지를 나무망치로 몇 번이나 두드려야 아랫부분 구멍이 터질까?’ 하는 여론이 들썩인다.

방송을 듣고서 난 아들 다복이에게 말했다.

“뭘 그런 걸 다 방송하니? 몇 번을 치든 맥주만 쏟아지면 되지. 엄청 할 일도 없나 보다.”

그러자 다복이가 말이 재밌다.

“엄마! 그건 여기서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야. 세 번 이상 치면 빈병 취급받아요! 작년에 우데 시장이 두 번 만에 터트렸으니 SPD당이 한숨 놓았지. 아니면 CSU당에서 SPD는 망치도 제대로 못 두드린다며 신문 인터뷰하려고 기다렸을 거예요.”

“야, 아무리! 정치가들이 그렇게 할 일이 없냐?”

“원래 시월 축제도 정치적이잖아요!”

“왜?” 하고 묻는 내게 “아빠한테 물어봐요.” 하고 아들은 사라지고 베를린 태생인 남편은 잘 모르겠다며 바이에른 사람에게 알아보라며 무관심했다.

기왕 알려면 확실히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뮌헨 소개 책자를 찾아보니 약 200년 전인 1810년 11월 12일로 거슬러 올라갔다.

루드비히 황태자가 테레지엔 공주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지금 뮌헨의 중심가인 센드링에서 말 경기를 시작했고 1818년부터는 시월 축제의 형식으로 보통 시민들이 모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콜레라와 전쟁, 굶주림 때문에 몇 번 거른 것을 제외하고는 2차 세계 대전 직후 1946년에도 농도가 짙지 않은 양의 알코올 맥주로 이 축제를 계속 진행했다.

날씨(가을 이때가 일 년 중 좋은 편) 때문에 9월 중순부터 10월로 접어드는 2주간 행하므로 시월 축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올해도 9월 중순 첫 토요일에 날씨가 좋기를 모두 기원했고 그 뜻이 하늘에 전달되었나 보다. 한국의 천고마비 날씨가 아침부터 축제 장소로 이동한 듯 전 뮌헨을 감싸고 세계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아침부터 Trachtenumzug(의상 행진으로 거의 바이에른 주 복장) 행렬이 축제 장소인 Theresienwiese(테레지엔비제)에서 이어지는데 유명한 바이에른 맥주 회사들이 말들에다 큰 맥주 통을 얹고 각양각색의 장식을 하고서 전통 의상을 입은 남녀들, 또 사냥꾼 클럽 차림, 매해 조직 위원에 따라 행렬의 분위기랑 내용들이 달라진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다 비슷해 보였다.

수많은 맥주 회사의 천막들, 쳐다만 봐도 아찔한 공중을 떠다니는 갖가지 기구들, 요란하게 땅위를 움직이는 기구들, 사람, 개들……이 축제 장소를 채웠다.

축제 시작 며칠 전부터 시내는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이들로 붐볐다. 특히 밤이 되면 그들은 슈바빙(젊은이들이 많은 시내 구역으로 대학가이기도 하다)에서 일찌감치 기분을 내며 맥주에 취해 돌아다니다 아침부터 행렬을 보려고 줄을 설 게 뻔했다. 이때만 경험할 수 있는 만원 지하철을 타고 난 축제 시작 날 오후에 비제에 도착했다. 다행히 독일인들은 질서를 잘 지키는 터라 아무런 사고 없이 약속 장소인 히포 드롬에 활짝 웃으며 나타날 수 있었다.

친구들은 약속 시간도 되기 전에 모여 예약해 구입한 손목에 두르는 테이프를 받아 붙였다. 나도 테이프를 받아 손목에 두르고 우리 일행은 차례로 입구에 서서 기다렸다.

삼, 사십 명가량 되는 젊은이들이 천막 입구에 서서 먼저 들어가겠다며 경비원들과 실랑이하는 걸 보며 우리도 한마디씩 했다.

“저것 봐! 여기 히포드롬(hippodrom)은 예약 안 하면 못 들어간다니까!”

“요즘은 다른 데도 꽉 찼다지?”

“와인 마시는 천막은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한스! 너 이리 와서 와인 마실 테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율리아! 내년에도 꼭 예약 부탁해!”

다짐하며 우리 일행 열 명은 행복한 얼굴로 손목에 두른 테이프를 보이며 천막 안으로 행진했다.

혹시라도 ‘임시로 만든 천막이니까 규모가 얼마나 되겠어.’ 하고 들어왔다가는 깜짝 놀라고 만다. 1리터 병 맥주잔을 든 수천 명이 바이에른 악단(트라흐트 가죽 바지로 무장하고 중앙에 설치된 단 위에서 연주한다)의 폭탄 같은 음악에 맞춰 우렁찬 건배(Prost, 프로스트)를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예약한 사람들은 10시부터 마셨으니 비틀거리며 일어서고(이 시간은 오전과 오후 예약이 교체되는 시간), 우리는 생생한 얼굴로 나무 뱅크에 붙어 앉았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다섯 명씩 마주 앉았는데, 잠시 후 우리 쪽 의자에 문제가 생겼다. 우리랑 엉덩이를 맞댄 뒤의 의자에 남자 여섯 명이 앉은 것이었다.

유럽 사람들의 히프 사이즈는 장난 아니게 크고 튼튼하다.

게다가 한 명이 더 추가되어 사이즈가 제일 작은 내가 계속 밀리다가 결국 일어나서 뒤로 돌아섰다.

“참을 수 없어! 너무 크고 많잖아!”

“뭐가?”

그들이 말했다.

“엉덩이가 너무 크면 인원수가 추가 안 되나?”

“그럼 네가 내 무릎에 앉으면 되잖아!”

그중 한 명이 농담인 양 말했다.

“조심해! 키미는 태권도 검은 띠야!”

사비네의 진지한 얼굴에 나는 웃었고, 내 목소리에 지나가는 경비원이 나타났다. 그 바람에 그중 하나가 나가서 공중을 날고 오겠다며 맥주를 쭉 들이켜고는 사라졌다.

갑자기 그들이 뒤에서 내게 맥주병을 주며 같이 건배하자며 윙크했다. 아직 화가 안 풀린 나는 안 받겠다는 몸짓을 했다.

그런데 때마침 교체된 악단이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는 바람에 떠밀리듯이 맥주잔이 내 손에 자동으로 쥐여져 우린 모두 건배! 프로스트!를 외쳤다. 그렇게 밤까지 우린 즐겁게 맥주잔을 두드렸다.

1리터짜리 맥주를 쭉 들이켜고 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옆에 있는 우도를 꾹 찔렀다.

“우도! 여기 축제 동안 500만 마스 맥주와 소 70마리, 10만이 넘는 소시지와 닭들을 잡는다는데 아직 요리가 다 안 됐나? 배고파 죽겠어.”

“너 어떻게 그 숫자를 다 외우니? 대단해!”

“그 정도 지식은 기본 아냐?”

“야! 역시 피아니스트는 다르구나! 피아노 치듯이 다 암기하는구나.”

“그게 아니고 어제 읽은 거라서…….”

사실대로 얘기하려다 우리 일행이 존경하는 눈으로 쳐다봐서 난 잠자코 있었다.

우리 일행 중 둘은 사진 모델이고 나머지도 대부분 패션계에 종사했다.

‘오늘 얘들 앞에서 잘난 척 좀 해 봐?’

나는 장난기가 돌았다.

이윽고 우리 탁자에 예약한 음식이 나와 열심히 닭다리를 뜯고 맥주 한 병을 비우고는 화장실로 갔다.

나처럼 2리터 맥주를 마신 사람들이 많은지 줄이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잠시 후 사비네도 어디선가 나타났다.

“하이! 키미, 너 여기 있었구나! 뒤쪽 애들이 너 찾던데.”

“왜? 나 없으면 자리도 넓고 좋을 텐데.”

“맥주 주려고 그러는 것 같던데?”

“아이고, 하느님! 난 벌써 취한 것 같아.”

“이제 시작인데? 여기 끝나면 P1 디스코텍에 가야지. 매년 갔잖아?”

“그랬지. 이제부터 천천히 마셔야겠다. 참! 근데 오늘 유심히 살펴봤더니 여긴 트라흐트 입은 독일 젊은 애들이 많네. 첼트(천막) 안도 별로 복잡하지 않고. 작년에는 여자 친구랑 둘이서 호프브로이 첼트에 들어갔다가 혼났는데.”

“난 거긴 절대로 안 가. 만취한 호주랑 이태리 젊은이들로 우글거리잖아.”

“난 교도소에서 나온 남자들인 줄 알았어. 사방에서 술 취한 남자들이 지나가는 우릴 잡아당겼거든. 십여 년 전만 해도 그곳이 안 그랬는데.”

“얘! 그건 정말 옛날 얘기다. 이렇게 복잡하고 자리가 없는 게 한 칠, 팔 년 전부터인 것 같은데.”

“예전엔 뎐델도 많이 안 입었는데. 일하는 여자들 말고는 젊은 애들은 거의 못 본 것 같아.”

“맞아, 키미! 나도 그땐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그런데 지금은 뎐델을 안 입으면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져.”

“아, 내 차례다.”

“그럼 나중에 보자.”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날 친구들과 뒤의 새 친구들이 반갑게 맞았다.

좀 전에 나갔던 남자도 그사이에 돌아와 또 여섯 명이 좁게 붙어 앉았다.

맥주 얻어 마신 죄로 말도 못 하고 그냥 서 있으려니까 알렉스가 서 있는 날 오해하고 내게 바깥에 나가고 싶은지 물었다.

“아니, 왜?”

“응, 난 네가 올림픽 다섯 링을 타고 싶은가 했지.”

“그런 것 절대로 안 타. 너무 무서워.”

“에이, 일단 맥주 1마스(1리터) 들이켜고 나면 괜찮아, 가자!”

“네 바지에다 토할 거야!”

알렉스는 그의 섀미 바지를 내려다보더니 우도랑 나가 버렸다.

“너무 심했다.”

즐겁게 눈웃음치며 율리아가 말했다.

그 말에 언제 돌아왔는지 사비네가 알렉스한테는 그렇게 안 하면 저녁 내내 타러 가자고 조를 거라고 했다.

“넌 작년에 알렉스랑 아우토반(Autobahn, 고속도로) 탔잖아?”

율리아의 물음에 난 아우토반뿐 아니라 더 심한 것도 여러 번 타서 정말 토할 뻔했다고 인상 썼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속으로 생각하며 음악에 귀 기울이며 무대 위에 있는 악사들을 자세히 보니 바이에른 복장이 아니고 보통 재즈 단원 차림이었다. 들리는 음악도 다양했다.

‘여기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혼자 해석하고 주의를 둘러봤다.

맥주를 한 잔 더 들이켜서 그런지, 점점 고조되는 음악에 맞춰 춤춘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 몸의 열기 탓인지 내 몸에서 땀이 흘렀다.

난 뒷문을 지키는 이에게 승낙 받고 밖으로 나갔다.

차고 시원한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며 해가 졌는데도 음식 파는 곳곳과 땅과 공중에 돌아가는 기구들의 찬란한 빛들, 곳곳에 우리 천막 같은 흰 포장의 첼트들, 엄청나게 여기저기로 몰려다니는 인파들 사이의 긴장된 경찰관과 경비원들의 표정에 술기운이 조금 가시고(독일 내에선 바이에른 경찰이 엄격하여 범죄율이 낮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축제인 만큼 다양한 언어, 특히 이태리어의 수가 압도적인 밤의 이색적인 분위기가 후끈한 천막 안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너무 술을 마셔 잔디에 부둥켜안고 누워 있는 젊은 남녀, 혼자 인사불성 된 사람, 술병을 들고 계속 노래하는 사람, 잘 방이 없어 날이 따뜻하니 밖에서 밤을 샐 작정인지 담요를 까는 노숙자들이 눈에 띄었다.

다시 음악이 진동하는 열기 속으로 향하는 내 앞으로 구급차(항상 대기 중)에서 서너 명이 들것을 들고 우리 첼트로 급하게 뛰어갔다. ‘패싸움이라도 났나?’ 하고 생각하다가 ‘아냐, 여기는 경비가 철저해 조금만 이상한 짓을 해도 금방 달려와 쫓아내니까 그건 아닐 거야. 누군가 술을 너무 마셔 쓰러졌나 보다.’ 하고 난 천막 안으로 호기심을 품고 따라갔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다.

“키미, 어디 갔었니? 우리 모두 걱정했어. 신고하고 다녀라!”

우도가 반가워하며 말했다.

“내가 어린애니 보고하고 다니게? 맥주 주려고 찾았니?”

“조금 전에 구급 침대가 지나갔는데 알렉스가 누워 있는 여자가 너 같다고 했단 말이야.”

그 말에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하는 표정을 보고 난 우도가 날 놀린 걸 눈치 챘다.

“바깥에서 널 데려오는 줄 알고 화장실도 못 가고 뛰어왔는데 이런 줄 알았으면 천천히 올 걸.”

우리는 모두 폭소를 터트리며 깔깔거렸고 뒷좌석과 옆에 있는 사람들도 뭔지 모르고 함께 즐겁게 웃었다.

당연히 건배 잔은 시작되었다!

“8시다! 올라가자(천막마다 규정이 다르지만 히포드롬은 그전에는 나무의자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더욱이 책상 위로 올라가면 쫓겨날 각오를 해야 한다)!”

누군가 외쳤고 동시에 다들 의자 위로 올라섰다. 간혹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한두 시간 내에 맥주가 쏟아져서 엉덩이 부분이 다 젖을 각오를 해야 했다.

나는 이때부터 나갈 때까지(대략 밤 10시에서 11시 사이면 끝난다) 춤을 추었다.

가끔 친구들이 어떻게 몇 시간을 쉬지 않고 흔들어 대느냐고 물으면 옛날 어머니 친구들이 내게 하신 말을 해 주었다.

“너 서너 살 때 말이야, 트위스트가 한창 유행이었거든. 우리가 너희 집에서 삥 둘러앉아 ‘차차차 트위스트, 차차차’ 하면 조그마한 네가 가운데 서서 몇 시간 동안 어찌나 엉덩이를 흔들어 대던지. 하하!”

음악 소리만 나면 신이 나서 흔드는 나를 어머니는 동네 피아노 방에 넣어 준 게 인연이 되어 독일까지 유학 오게 되었다고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대부분 내가 왜 독일에 왔는지 알고 싶어 했으니까.

우리 좌석에는 지나가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계속 붙어 있는 몇 명의 아는 애들 때문에 뒷좌석 이상으로 복잡해졌다. 다들 의자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난 가장자리 끝에 달랑달랑 서 있었는데 뒷좌석의 힘 좋은 엉덩이춤에 단번에 밑으로 떨어졌다.

인상을 쓰며 갸우뚱하는 몸을 바로잡으려는 순간 누군가 내 손을 잡음과 동시에 난 건너편 의자 위로 옮겨 갔다.

“여기서 우리랑 춤춰요!”

스무 살가량 된 청년들이 날씬한 몸매에 섀미 바지가 너무 잘 어울리는 차림으로 얼굴에 상냥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의자 위에 잔뜩 쌓인 맥주잔들을 보고 다시 그들의 얼굴을 보니 눈들이 좀 풀어졌다.

“너희 도대체 몇 잔씩이나 마신 거니?”

묻는 내게 한 청년이 다섯 손가락을 펴더니 다른 손도 올렸다.

“됐어! 손가락 힘들게 더 펴지 마라. 보통 때보다 훨씬 더 많이들 마신 거 같은데 그렇게 마시고도 난 어떻게 봤니?”

“상관없잖아! 마시려고 온 곳인데 나는 하인츠라고 해, 넌?”

반말하면서 헤죽거리며 웃었지만 다들 귀여워 내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날씬한 애들 옆에 있으면 의자에서 떨어질 염려도 없어 잠시 여기서 놀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도 의자에 올라서서 은근하게 몸을 흔드시고 음악과 술과 열광적인 사람들의 노래, 고함 소리, 춤들로 첼트 안은 건전한(대부분 친구나 회사 그룹, 가족 등이니) 환락가처럼 열기가 터졌다.

얼마나 지났는지 정신을 빼고 추고 마시는 내 앞에 우도와 알렉스가 서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키미, 이제 그만 이쪽으로 와라! 어떻게 거기서 젊은 애들하고 노냐? 반사회적이네(아, 소치 알이네).”

“야, 내가 거기서 밀려나서 여기서 혼자 춤추는 건데 무슨 아, 소치 알? 안 그러니 얘들아?”

하인츠 일행은 너무 취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떡였고 난 다시 알렉스에게 끌려 우리 자리로 갔다. 그런데 우리 의자가 기우뚱거리며 사비네와 그녀의 새 이태리 남자 친구와 알렉스의 여자 친구가 우르르 넘어지며 내 앞으로 쓰러졌다.

즉시 우도와 알렉스는 그들을 일으켜서 의자에 앉혔고 놀란 상태에서 벗어난 우린 다친 데가 없는지 그들을 살폈다.

충격 상태가 좀 지나자 사비네가 턱이 빠진 것 같다며 아파했고 다른 두 명은 어깨랑 다리가 아픈데 괜찮다고 중얼거렸다.

“구급 침대 불러올까?”

겁먹은 내 말에 ‘성형외과 의사인 우도가 있는데 웬 구급차?’ 하는 우도의 제의는 좋았지만 한없이 마신 우도의 얼굴을 보니 별 믿음이 안 갔다.

도움도 못 주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날 뒤에서 누가 끌었다. 하인츠가 같이 구경했는지 서서 눈을 찡긋하며 저쪽으로 가서 놀자고 꾀었다. ‘에이, 기왕 반사회적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가 볼까?’ 하는데 마지막 곡이라며 이별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아니, 벌써 끝이야?”

섭섭한 내 생각과는 달리 조금 전의 사고 때문인지 우리 일행은 슬슬 밖으로 나갔다. 그 바람에 더 있고 싶은 내 마음과 상관없이 내 몸도 친구들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깜깜한 하늘에 별이 총총히 빛나고 각 천막마다 쏟아져 나온 인파들과 번쩍거리는 기구, 물건, 술 냄새, 음식 냄새, 마지막 경품권을 사라는 상인들의 외침에 도저히 자러 갈 기분이 아니었다.

다친 사비네와 이태리 남자 친구만 없고 나머지 친구들은 한곳에 뭉쳐 있었다.

“너희, 다칠까 봐 겁나서 빨리 나왔지?”

“나는 철같이 강한 맥주잔에 앞니가 나갈 뻔했어. 갑자기 사비네가 쓰러지는 바람에!”

야스민은 예쁜 얼굴이 다시 생각난 듯 살짝 찡그리더니 오늘 더 돌아다녔다간 상처가 날지도 모르겠다며 투덜댔다.

“무슨 마음 약한 소리! 축제에서 한두 번 겪는 일이니? 내가 책임지고 네 얼굴 보호해 주고 고쳐 줄게! 당장 케퍼(kaefer, 뮌헨의 유명한 레스트랑으로 축제 기간 동안 천막을 치는데 여기는 예외로 몇 시간 더 문을 연다)에 갔다가 p1(뮌헨의 유명한 디스코텍)으로 가자!”

성형외과 의사의 본능이 발동했나 보다.

“내 앞니를 네가 어떻게 고쳐?”

“그건 치과의사인 키미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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