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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킹즈맨vs마태복음]어느 혁명가, 혹은 선동가의 초상

정주영 |2008.09.21 21:37
조회 76 |추천 0


 

연기파 배우 숀 펜이 윌리 스타크 역으로 나오는 (2006)은 리메이크 영화다. 이 영화를 보니 오리지널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동명의 오리지널을 보지 못했기에 아무래도 영화에 관한 얘기를 한다면 반쪽짜리가 될 것이다. 숀 펜이 그저 오리지널 작품의 캐릭터를 모방하려고만 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다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감독의 연출력인 것 같다. 오리지널과 비교하여 이 작품을 많이 비판하던데, 위 작품만 보고도 어떤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건 원작의 아우라는 얼마만큼 대단했길래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원작을 꼭 보고 싶다.

 

 

 


 

로버트 로젠 감독의 1949년 작품인 . 이것이 오리지널이다.

 

 

 

 

파솔리니 감독의 (1964)은 난해한 그의 영화문법을 구사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작품이다.  멜 깁슨이 제작한 도 있지만 필자는 이 작품이 훨씬 낫다고 본다. 둘 다 성경을 기초해서 제작했고 군더더기 있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고난 받는 육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예수라는 인물을 혁명가 내지는 선동가로 묘사한 이 작품이 더 와닿는 것이다.  


 

 


 

에서 윌리 스타크는 무산계급을 대변하며 루이지애나 주의 주지사로 당선된다. 1950년대 무렵에 주지사가 된 그의 외침은 신랄하기만 하다. 기득권을 쥐고 있던 백인들을 향해 포문을 열고 포퓰리즘을 지향하는 듯하는 윌리는 참모들이 있지만 어쩐지 고립무원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주지사가 가진 권력의 힘은 그의 여자관계를 통해 엿볼 수 있으며, 반대파의 정신적 지주를 제거하기 위해서 과거를 파헤쳐 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기도 하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청중과의 거리인데, 주지사 후보시절의 윌리는 대중들과 가까이 있지만, 주지사가 된 후  정적들이 공격해 올 때마다 관청 앞에서 스스로를 대변하는 연설을 하는 그는 모여든 청중들과 꽤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토해내는 그의 말이 웬지 공허한 외침으로 느껴진다. 그는 엄청 파격적인 정책들을 내놓아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만, 기득권층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은 파솔리니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하며 정확한 제목은 다. 여기서 그려진 예수는 의 윌리 스타크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그가 외치는 소리는 거침이 없고 열정적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주변은 황량하기만 하다.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소리랄까. 열렬히 그가 외칠 때 카메라는 클로즈업되어 그 얼굴을 비추는데 아무 배경이 없는 아주 작은 무대에 홀로 서 있는 배우랄까 그런 느낌이다. 파솔리니가 보여주는 팔레스타인의 모습은 고적하고 황량하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얼마 없다. 예수가 하는 말은 모두 성경에 기록된 것들이지만 그가 활동한 공간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번잡한 거리나 도시도 아니요, 그저 시골마을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가 외치는 소리와 공간 덕에 망상가, 이상가, 선동가 등의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예수의 이미지다. 그러나 시종일관 그는 꿋꿋한 모습을 유지한다. 따르는 사람이 없어도 그의 믿음과 신념은 확고하게만 보이고 간결하게 나오는 그의 말들은 시대를 향한 가시돋힌 비판이 담겨있다.

 

예수가 자신의 사상을 펼칠 때는 로마제국은 식량난으로 식민지 통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다. 로마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식민지 주민들에게 강요한 세금. 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시기에 태어나고 자란 예수가 생애 마지막 3년간 보인 행적이 신약성서 중 4복음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까칠한 비판을 퍼부은 대상은 기득권층. 엄격한 율법을 대다수 가난한 서민들은 이를 지킬 수 없는지라

자신들을 죄인으로 여겼고 예수는 그런 이들을 동정하며 자신은 이들을 위해 왔다고 말한다.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보인 행보나 말들은 당시로서는 너무나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의 윌리 스타크도 이런 점에서는 예수와 같다. 소수의 백인들이 누리는 특권, 백인보다 흑인이 더 많은 미국 남부의 루이지애나. 주민들은 환호하고 소수 권력층은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나 스타크는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불법을 자행하기도 하며 권력의 최상위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들도 외면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보면 윌리엄 스타크와 예수가 그리는 사회는 사회주의 체제였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그리던 이상향은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 변형되었고 북한은 그것을 자신들만의 사상인 주체사상으로 만들었다. 기독교계의 영향력있는 (원로) 목사들-일부는 친일전력이 있기도 하다-은 보통 공산주의 국가 북한 운운하며 설교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북한의 사상을 말할 때는 해외에서도 '주체' 라고 한다. 어쨌거나 스타크나 예수나 우리나라 극우-원래 우파는 민족주의자였다- 꼴보수, 혹은 수구반동-우리나라에서는 이 말들에 차이가 없다- 들이 보면 빨갱이다. 아직도 이념의 노예가 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세뇌자들을 보며 나는 진정한 빨갱이, 그러니까 좌파란 옳지 않은 것에 맞서며 그것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가진 자들을 지칭한다고 생각한다. 박노자는 그의 책에서 좌파를 광의의 의미로 해석한 바 있는데 나의 이런 생각은 그것에 힘입은 바 크다.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의 사상은 당시로서는 너무나 파격적이라 기득권층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한다. 종교를 떠나서 말하자면 예수의 죽음은 기득권 세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이 가져온 결과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과 스타크의 그것은 성격이 다르다. 의 스타크는 대다수가 흑인인 루이지애나 주의 주지사가 되어 권력을 독점한 소수 백인들에게 위협이 된다. 그 역시 백인이면서도 말이다. 그는 때로는 그들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간다. 이를 위해서 그는 불법도 자행한다. 그리고 주지사라는 권좌에 오른 뒤 그것이 주는 힘을 만끽하는 가운데 그런 일들을 수행하며 여전히 대중들을 선동하며 외친다. 그의 멘토에게까지 비수를 들이대는 스타크다. 하지만 예수는 어떤가? 성서의 기록만을 보면 그는 세상의 왕, 모두의 왕이 되지는 못했다. 죄수들만 매달린다는 십자가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라는 표지를 달고 못박혔지만 그것은 그를 조롱거리로 삼기 위한 것이었지, 예언자들이 말한 그 왕이라고 여겨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흘린 피는 그를 왕으로 만들었다. 그를 통하지 않고는 신에게 갈 수 없게 되었고 그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구나 따라야할 모범이 되었다.

 

파솔리니의 에서는 예수의 부활까지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가 그리는 예수는 한 사람의 인간이요, 선동가,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간소하게 제작되었거나 감독이 의도했거나 에서의 예수는 고독하지만 시대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의 대성일갈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아마도 기득권층이었겠지만- 을 보며 촛불정국을 생각한다. 다중의 외침을 외면하는 기득권 세력, 시대에의 저항이 아니라 역행하는 정책 등을 보며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들에 관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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