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있어서 수치나 기록이 그 음악 자체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음악적인 완성도와 음반판매량이 별로 상관 없는 관계가 될 수 있고, 대중성과 음반판매량도 별로 상관 없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완성도는 높지만 대중들이 이해를 못하거나 하는 음악은 안 팔릴 수 있고, 대중성은 있지만 그 가수 자체가 맘에 안든다든지, 홍보가 안돼서 등등의 여러가지 문제로 안 팔릴 수도 있다. 반대로 대중성은 없지만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인기가 높다면 앨범판매량이 많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수치가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수치나 기록은 무엇인가 결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수치나 기록들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신승훈 시리즈①은 신승훈의 기록들을 우선 다뤄 보기로 한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무엇일까.
NO.1
음반판매량은 인기의 척도다. 완전하게 척도할 수 있는 완벽한 자료는 안되지만, 그래도 음반판매량이야말로 가장 근접하게, 가장 과학적인 흥행 측정 기준이다.(몇 년전 부터 디지털 음원이 대세긴 하지만, 이건 최근 몇년 동안 이루어진 대세이기에 일단 제외하기로 하자) 물론 우리나라는 빌보드나 오리콘 차트처럼 정밀하고 정확한 집계 시스템을 잘 갖추진 못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신뢰할만한 자료는 이것 밖에 없고, 어느 정도 통계를 가늠할 정도의 수준은 되는 것 같다. 그 인기의 척도인 음반판매량에 있어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하는 가수가 바로 신승훈이다. 음반판매량에 있어 신승훈의 기록은 거의 독보적이다.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신승훈의 통산 누적 판매량은 1400~1500만장에 이른다. 발표한 앨범은 총 12장(정규 앨범 10장, 라이브 앨범, 스페셜 앨범) 밖에 되지 않지만 판매량은1400~1500만장에 이르는 것이다. 1집에서 6집까지 이미 아시아에서 최단 기록으로 1천만장을 돌파했고, 그 기록은 신승훈에게 빌보드 인터내셔날 표지에 실리는 영광을 주었다. 조용필이 최초로 1천만장을 돌파한 가수다, 그리고 누적 판매량도 1500만장이 넘는다는 '설'도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그것이 널리 인정되는 가수는 신승훈이 유일하다. 게다가 권위있는 가요순위紙 「뮤직박스」의 2003년도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0년동안 「전앨범이 가요차트 1위를 기록한 가수」, 「가요차트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 「가요차트 1위 곡을 가장 많이 작곡한 작곡가」로 신승훈을 선정했다. 한마디로 가요계 역사상 앨범이 가장 많이 팔린 가수, 가요순위에서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 따라서 신승훈이 데뷔한 1990년도 부터 2008년까지 18년동안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가수가 누구냐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면, 기록상 신승훈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1집 -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0년) : 140만장
2집 - 보이지 않는 사랑 (1991년) : 158만장
3집 - 널 사랑하니까 (1993년) : 170만장
4집 - 그 후로 오랫동안 (1994년) : 180만장
5집 -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1996년) : 247만장
6집 - 지킬 수 없는 사랑 (1998년) : 130만장
7집 - 전설 속의 누군가 처럼 (2000년) : 110만장
8집 -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2002년) : 100만장
9집 - 그런 날이 오겠죠 (2004년) : 32만장
10집 - Lady (2006년) : 14만장
* LIVE 앨범 (1992년) : 87만장
* 스페셜 앨범 - why (2002년) : 35만장
신승훈 같은 연륜의 가수를 음반판매량으로 따진다는 건 유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신승훈 시리즈 1편은 그의 기록만을 다루는 글이고, 그 기록이 나타내는 그 무엇인가를 짚어보자는 글이다. 더군다나 신승훈이 세운 기록과 수치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거대하다.
밀리언 셀러, 그것도 연속
서태지나 조용필, 김건모도 천만장을 돌파했고 신승훈과 근접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신승훈은 8집까지 연속 밀리언 셀러라는 점이다.(8집은 그해 41만장으로 음반협회에 등록돼 있음. 하지만 누적 판매량은 100만장 정도) 필자가 알기론 전 세계적으로도 정규앨범만으로 8장 이상 연속으로 밀리언 셀러를 달성한 가수가 몇 없다는 걸로 알고 있다.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로서 음반판매량의 넘버원을 달린다는 건 의미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특별한 궤적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의미 이상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단순히 '최정상의 인기가수' 를 넘어 그 무엇인가를.
데뷔앨범 부터 8집까지 밀리언 셀러를 달성했다는 건 그의 충성어린 매니아 층의 두터움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우리나라 가요 시장에서 백만장이란 수치는 너무 크다. 즉 백만이란 숫자는 신승훈의 매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사랑을 고루 받았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있다. 단순히 매니아 층의 지지도로 설명히 안된다면, 변화무쌍하고 흐름의 변화가 심한 가요계에서 오랜 세월을 뚫은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THE 신승훈
뛰어난 대중성이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대중성의 본질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고, 신승훈은 얼마 만큼의 대중성을 갖췄는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신승훈을 논할 때 늘 신승훈스런 음악을 한다고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늘 똑같다고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그 스타일이 좋다고 얘기한다.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오랜 세월동안 대중들의 인기를 얻으려면 늘 변화해야 하지 않은가. 유행에 민감하고 변화가 심한 가요계에서 어떻게 똑같은 스타일로 사랑 받을 수 있을까. 그건 일반적 대중성의 공식에 어긋난 것이다. 적절하게 변화하고 유행의 흐름에 잘 적응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승훈은 늘 그대로라고 얘기한다. 변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신승훈이 대중성이 있다는 얘기인가 없다는 얘기인가. 우선 신승훈의 주 전공인 발라드는 대중성이 있는 장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 받은 장르는 발라드라는 공식 통계 발표가 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승훈이 대중적이라고 얘기하기엔 논거가 부족하다. 장르상 유리한 조건은 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발라드 가수가 신승훈만큼 되는 건 아니니까. 대중들은 식상함을 못 참는다. 새롭지 않으면 바로 도태되는 것이 바로 대중의 기호다. 이 예측하기 힘들고 변덕스런 대중들이 늘 신승훈은 비슷한 음악을 한다면서 세월을 뚫고 사랑받게 하는 이 아이러니는 무엇으로 설명돼야 할까.
그의 음악은 늘 조금씩 변화해왔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변함없는 신승훈 스타일로 사랑받아 왔지만 늘 같은 스타일을 반복해 결국 식상해져서 그 인기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신승훈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그럼 7,8집까지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텐가. 대중들이 그리 만만해 보이던가. 한두 앨범도 아니고, 다섯여섯 앨범도 아니고 무려 8장 앨범이 12년동안 사랑을 받았다면 그동안 늘 비슷한 신승훈 스타일로 사랑 받았다고 하기엔 8장이란 너무 많은 앨범이고, 너무 오랜 세월이다. 그리고 대중은 너무 변덕스럽지 않은가. 대중들은 비슷한 스타일엔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가요계에서 대중들의 메가톤급 인기를 얻은 히트곡들을 보면 평범한 곡은 거의 없다. 조금은 새로운 스타일이거나 반발짝 앞서가면서도 트렌디한 곡이 대부분이다. 다음편에서 한번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신승훈의 '미소 속의 그대'나 '보이지 않는 사랑'도 당대엔 반발짝 앞서간 음악이였다. 단일 앨범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도 당시로선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음악이었고, 서태지의 '난 알아요'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된다면 '대중성'이란 모호해진다. 쉽고 친숙하고 트렌디하되, 반발짝 앞서간 새로운 스타일이라... 대중성을 획득하기란 쉬울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메가톤급 히트를 하려면 개성과 새로움을 더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중성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늘 같은 것을 답습해왔다면 신승훈의 흥행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3집까지는 아마 통했을 진 몰라도 8집까지 이르를 순 없는 것이다. 다른 곡과 차별되는 개성과 트렌디하면서 반발짝 정도 앞선 음악, 그런 묘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한 힘 때문이였다. 그렇다면 왜 신승훈은 늘 같다라고 말하는 걸까. 메이져 가요계에서 타이틀 곡을 늘 같은 장르로 밀어 부친 가수는 신승훈이 거의 유일하다. 7집에서 잠시 월드뮤직인 '전설 속의 누군가 처럼' 으로 방향을 선회하긴 했지만 그 외 10집까지 모든 앨범 타이틀 곡이 발라드라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즉 신승훈은 늘 발라드를 했기에 늘 같다고 추상적으로 얘기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발라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음악들이 다 비슷하게 들릴 것이다.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별 관심없는 장르의 곡들은 다 비슷하게 치부해 버리고, 또 그렇게 들린다. 마치 우리가 외국 사람을 보면 다 비슷해 보이고, 반대로 외국 사람이 우리 나라 사람 얼굴이 다 비슷해 보이는 것 처럼. 어떤 것도 다 마찬가지지만 그 문화에 정서적으로 이해가 깊지 않으면, 그 문화의 큰 틀만 보이고 디테일한 부분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여론이 '신승훈은 똑같다'고 한다면, 자신의 내면은 실제 그렇게 생각지 않아도 여론이 그러니까 자기도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를 소위 '군중심리'라 한다. 실제로 많은 대중들이 신승훈을 그런 식으로 쉽게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과 '지킬 수 없는 사랑' 을 비교해 보라. 둘 다 마이너 곡이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자세한 건 다음 편에) 물론 억지로 비슷한 부분을 갖다 붙인다면 여러 요소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꺼야' 라고 끝나는 부분과 <지킬 수 없는 약속>의 '~바래'라고 끝나는 부분, 그리고 둘 다 마이너 곡이라는 거, 피아노와 현이 중심이 되는 편곡, 하지만 두 곡은 곡의 구성이나 곡이 담고 있는 정서가 다르다. <보이지 않는 사랑>은 좀 더 애절하고 슬픔을 극대화하는 반면, <지킬 수 없는 약속>은 비장미를 품고 있다. 그리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피아노와 현 말고도 R&B풍의 리듬 프로그래밍이 곡의 분위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신승훈의 기존 발라드과는 또 다른 차별성이 있다.
그는 오히려 그만의 스타일 안에 매번 다른 스타일을 보여 준다기 보다 매번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그 스타일을 '신승훈화' 시킨다. 그런 그의 노력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신승훈 치곤 꽤 파격적인 시도를 보여준 <엄마야>는 그 후 비슷한 스타일인(제목부터도) <올꺼야>로 스타일을 확립시킨다. 그리고 역시 새로운 스타일인 <전설 속의 누군가 처럼>이후에 를 선보이며 신승훈 스타일을 완성시킨다. 만약에 이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 다른 뮤지션들에 의해 나온다면 '신승훈 풍이네'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게끔 그는 그 스타일을 2,3번 반복해 자기만의 것으로 확립시키길 즐기는 거 같다. 이런 예는 <가잖아> - <이런 나를> , <어느 멋진 날> - <Come to me> - <그런가요> , <지킬 수 없는 약속> - <Why>등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신승훈은 '무엇 하나 아직은 내 것이라 말할 수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은 저 먼 바다 처럼 펼쳐져(Dream of my life 가사 중에)' 라며 자신만의 그 무엇(색깔)이 없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내심 있으면서도 앞으로 평생 음악생활을 할 긴 시간동안 늘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줘야 하는 압박감도 동시에 지닌 듯하다. 신승훈이 이런 고민을 언제부터 한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런 불안한 모습이 흥행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게 7집부터다. 물론 7집은 100만장을 돌파하긴 했지만 '예전만한' 인기를 서서히 잃기 시작한 때라고 볼 수 있다. 신승훈의 흥행성은 아까 말했다시피 반발짝 앞서가는 대중성과 신승훈만이 가진 매력의 묘한 조화로 사랑을 받아 왔다면, 7집은 반발짝이 아니라 너무 앞서간 음악을 보여준 것이다. <전설 속의 누군가 처럼>은 너무 앞서가 대중적이지 못한 음악이였고, 신승훈의 주 전공인 발라드 타이틀 곡 '가잖아' 역시 지금 나왔어도 앞서 간 음악이라는 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로선 너무 앞선 음악이였다.(역시 자세한 곡의 리뷰는 다음 편에) 후속곡이라 할 수 있는 <엄마야> 역시 신승훈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스타일이였는데, 펑키 스타일의 장르적 특질에 너무 욕심낸 나머지 신승훈의 특기인 멜로디 라인의 '구성력'이 좀 약한 편이였다. 즉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 주려는 압박감이 7집에선 음악적인 완성도는 보여줬으나 흥행성에선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영향을 끼친 것이다.
'신승훈 스타일' 을 확립할려는 고민과 'New 스타일'을 보여줘야 하는 압박감의 고민 속에서 7집에선 'New 스타일' 에 중심을 둬 균형을 잃었다면(물론 여기서 균형이란 완성도 면이 아니라 흥행성에 기준), 8집은 '신승훈 스타일'을 확립할려는 의지로 균형을 잃는다. 'THE 신승훈' 이라는 타이틀로 이름 붙인 8집은 신승훈 자신에게 있어 '내것은 무엇인가' 라는 고민 속에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규정 지을려 했다. <가잖아> 스타일을 확립 시키기 위해 <이런 나를>을, <엄마야> 스타일을 확립 시키기 위해 <올꺼야> , <I love you>에서 <우연>으로, <소녀에게> <너를 보내며> <순간을 영원처럼> 식의 신승훈식 R&B풍의 발라드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널 위한 이별>등. 기존에 보여 왔던 신승훈의 음악들을 다시 반복, 발전 시켜 '신승훈 꺼' 라는 인식을 각인 시켜 주고 싶어 한다. <반복의 브랜딩, 반복과 운율은 브랜드를 강하게 인식 시킨다 - 브랜드메이저 손봉선>란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8집으로 '신승훈' 이란 브랜드의 스타일을 분명하게 보여주는데는 성공했고, 거기서 한층 발전된 완성도를 보여주는데도 성공했지만, 역시 대중성면에서는 떨어졌다. 8집 타이틀 곡인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은 그야말로 '신승훈 늘 비슷해' 란 소릴 들을 만한 노래였다. 늘 신승훈 타이틀 곡은 신선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존 발라드와는 다른 새롭고 발전된 형태를 보여줬었다. 발라드는 장르의 특질상 강렬한 새로움을 보여주기는 힘들지만, 사람들은 신승훈의 발라드만은 새롭기를 원했다. 왜냐 신승훈이니까. 신승훈 정도의 레벨이라면 그 정도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8집 타이틀 곡은 새로운 개성도 없었고, 기존 발라드에서 발전된 형태를 보여준 것도 아니였다. 멜로디 라인은 조성모의 <불멸의 사랑>이나 <잘가요 내사랑>과 비슷하고, 신승훈의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팝적인 코드 진행은 사라졌다. 아마 <널 사랑하니까>같은 장엄한 마이너 발라드를 한번 더 '신승훈화' 로 확립 시켜 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런 스타일은 이미 조성모가 지겨울 정도로 답습해 놓은 상태였다. 아마 이 앨범으로 인해 더욱 평판은 신승훈의 자기 복제화란 소릴 듣게 됐고, 대중들은 기존 발라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그저 그런 발라드를 한 신승훈에게 실망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8집은 7집 보다 흥행성이나 대중의 관심도면에서 더 떨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흐른다. 이쯤해서 시대는 점점 디지털 음원 쪽으로 가고, 음악 자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많이 떨어 졌으며, 신승훈은 데뷔한지 14년이나 됐고, 그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2004년 9집을 발표하고 신승훈은 양갈래의 고민에서 조금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무궁화 꽃이 또... 피었습니다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던 신승훈의 인기는 7집 이후로 서서히 대중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는 이쯤해서 자신의 매니아 층을 위한 음악을 보여 주기로 한 걸까. 2004년 9집은 <9번째 답장> 이라는 앨범 타이틀로 팬들에게 고마움을 보답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붙였다 한다. 그는 대중성을 내려 놓고 8집까지 자신이 쌓은 'The 신승훈 스타일'을 좀 더 깊이 있게 발전 시키고 노련하게 풀어 나간다. 그러면서도 국악을 접목 시킨 음악이나 뮤지컬 풍의 새로운 시도로 음악성을 자랑하기도 한다. 귀를 한번에 사로 잡는 멜로디 라인은 사라졌지만, 더욱 깊어진 노련미와 감정선은 그의 매니아들에게 다시 한번 믿음을 심어주었다. '신승훈만의 것' 을 찾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그는 그의 음악적 터닝 포인트을 찾는다. 2006년 10집 <더 로맨티스트>를 발표하며 이 앨범을 끝으로 11집부터는 새로운 신승훈 스타일을 하리라 공언한다. 9집과 10집에서 신승훈은 대중에게 폭 넓은 사랑을 받진 못했지만, 그의 팬들에게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그의 음악에 미세한 변화와 발전까지도 알아보는 팬들에 대한 믿음으로 그는 'The 신승훈' 을 깊게 파고 들었다. 새로운 터닝을 하기 전에 그는 한번 더 자신을 바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이사하기 전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자신의 집을 몇 번이고 다시 돌아 보는 것 처럼.
발라드라는 장르를 완성시키고 그 끝을 향해 달려온 그에게 사람들은 변화가 없다고 비판한다. 아니 오히려 이쯤되면 고집스럽게 밀어 붙히는 그를 의아해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신승훈에게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새로운 발라드를 원했다. 너무 나아가거나 뒤로 가도 안되고, 대중이 받아 드릴 만큼 딱 그 정도만 균형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신승훈에게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게 만들었고, 신승훈을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유였다. 조금이라도 그 균형을 잃으면 사람들은 실망한다. 다른 신인가수가 불렀으면 사랑 받을 수 있는 노래도 신승훈이라면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신승훈이니까. 신승훈이라면 항상 그런 균형을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중성의 유혹을 등지고 'The 신승훈'을 좀 더 깊게 파고 들고 싶었던 신승훈이 택한 길은 그런 대중들 보단 자신의 팬들에 대한 믿음이였다. 그리고 그런 팬들 또한 실망 시키지 않고 그만의 것을 발전 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런 그가 변화가 없다고 비판 받아야 될 근거는 무엇인가. 흥행 기록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렇다면 조용필은? 그도 정상에서 10년을 버티지 못했다. 오히려 신승훈은 1집부터 10집까지 모든 앨범들이 단 한번도 그 당해 10위권 내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근 20년간 정상권에 있었단 소리다. 사실 음반판매량도 항상 상위권에 있었음에도 음반판매량을 기준으로 비판 하는 이상한 논리. '신승훈식 발라드' 의 자기 복제화? 늘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대중들과 그의 매니아 층의 오랜 사랑을 받는 게 가능할까? 보컬, 편곡, 사운드, 멜로디 라인 등 모든 게 발전하고 깊어졌지만, 그것이 호평 받을 이유가 된다면 몰라도 그것 때문에 비판 받아야 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늘 음반이 상위권이였고, 열렬한 고정층도 굳건하며, 늘 좋은 퀄리티의 음악을 하면서도 평가가 저하되는 이 이상한 가수는 도대체 무엇을 넘어서야 되는 걸까? 자신을 넘어서야 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세운 그 거대한 기록을 넘어서야 되는 걸까? 그러면서도 한편, 왜 무엇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세상이 어떻게 말하든 신승훈은 신승훈이잖아. 그가 늘 좋은 음악을 하는 것은 분명한데... 우리는 어쩌면 신승훈을 통해 가요계에서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벽을 넘보는 욕심인 걸까?
By : 김기우 (dreambow@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