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트와네트. 위의 이미지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는 판이하다. 나는 그녀가 감독한 을 본 적이 없다. 각 잡지의 리뷰어들은 앞다투어 그녀의 전작, 그리고 주연배우가 같다는 점을 들어 를 계보학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어느 정도 작가주의적 해석이 들어간 리뷰들이 각 잡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잡지를 보나 저 잡지를 보나 이 작품을 다룬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이다.
이것이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의 포스터다. 국내잡지가 그냥 철자따라 편하게 읽은 것이 주연배우 Kirsten Dunst 를 커스틴 던스트로 만들어 버렸는데, 여왕 역할까지 맡아버린 그녀의 이름을 예의에 맞게 제대로 발음해 주자. 여왕 앞에 이 무슨 실례란 말인가. 그녀의 이름은 다음과 같이 발음해야 한다. Keer-sten. 필자가 한 말이 아니고 www.imdb.com 에 그렇게 나와 있다. 발음하기는 좀 그런데 어쨌든 그녀의 이름은 키어스텐 던스트가 되겠다.
바깥을 몰랐던 소녀들의 궁정 생활기.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동맹, 그것의 징표로 맺어진 프랑스의 황태자 루이와 오스트리아 공주와의 결혼. 이 사건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지만 마리 앙트와네트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얘기다. 프랑스로 시집 온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모든 관습을 버린다. 심지어 오스트리아에서 기르던 애완견까지 돌려 보내고 프랑스로 입국한 그녀. 사교계의 가십꾼들은 '애기가 시집왔다' 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녀는 베르사유 궁에 갇힌 채(?) 죽을 때까지 소녀성을 간직하고 산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빵이 없어 폭동을 일으킨 백성들은 왕궁으로 행진해 오지만, 이 폭동의 원인 제공자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들은 바깥 사정을 모른 채 궁 안에서만 있었으니 말이다.
궁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백성들의 삶은 유리되어 있는데, 소피아 코폴라는 간간이 들려오는 백성들의 원성어린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초상화에 명패를 붙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가십들이 있는데 그것들로 그 시대의 사회상을 읽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이 시대의 역사를 여러가지 텍스트를 참고하며 궁의 생활과 백성들의 결핍된 그것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으나 감독의 의도는 그것이 아닌 듯하다. 여전히 궁금한 건 왜 그녀들-마리를 비롯해 그녀와 친구인 젊은 귀부인들-을 궁 안에 가둬놓고 놀게 했는지, 결국 소녀성을 버리지 못한 채 죽어야만 하는 운명으로 만들어 놨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영화의 또다른 포스터다. 뭔가 화사해 보이는 것이 비주얼이 장난 아니다.
영화에는 위 그림에서 보는 먹거리들이 넘쳐난다. 캔디, 과자, 케잌, 그리고 아까 보았던 샴페인까지. 오스트리아의 관습까지 철저히 버리고 프랑스 궁정에 적응하기를 강요 받았던 마리는 아침이면 서열에 따라 귀부인들이 자신의 옷을 입혀주고 하는 것이 웃기기만 하다. 황태자비가 되고 얼마 안 있어 왕비가 되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런 그녀가 빠져들만한 것은 여기 베르사유 궁에 다 있다. 케이크, 샴페인, 구두, 옷, 가발, 과자, 사탕, 다이아몬드, 심지어 애완견까지. 그리고 도박.
왕비가 된 이후 치뤄진 생일 파티는 마치 10대들을 위한 장 같다. 보면서도 이 곳이 과연 궁 맞나 그리고 18세기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밤 새며 놀고 싶어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았을까? 거나한 파티가 끝난 뒤에 보는 풍경은 50%도 먹지 못한 케잌류들을 치워버릴 때 갑자기 분노가 치솟게 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혁명은 빵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고, 실제 이 시대 프랑스 백성들은 밀가루가 없어 빵을 먹지 못해 기아에 허덕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왕족과 귀족들에게는 넘치다 못해 버려지는 것도 있었다고 하니 '낯선 땅에 와서 모든 것이 한 마디면 이루어지는 곳에 갇힌 소녀는 어떻게 살까요?' 를 보여주기로 작정한 감독의 의도를 따라간다 해도 그런 역사적인 맥락을 배제한 의도는 무엇인지 내심 궁금해진다.
잘 알다시피 이 작품에 나오는 구두는 마놀로 블라닉이 디자인 했다. 의 캐리가 곧 죽어도 고집하는 그 그두, 마놀로 블라닉 말이다. 일명 스틸레토 힐이라던가. 전 세계에 있는 매장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데 그 중 하나가 한국에 있다. 지미 추도 곧 들어올려나?
가발과 구두, 특히 하이힐과 코르셋은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한 장치로 고안되었다고 한다. 아..참...하이힐은 예외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궁정에서 먹고 토하고 하는 통에 그 오물들을 피해 높은 구두를 신게 되었으니.....어쨌든 영화 속에서는 머리 꼭대기에다 배를 얹은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는 그 가발이 무지 높고 그 위에다 큰 배를 얹어 가발 제작자가 쓰고 나면 목이 꺾이지나 않을까 걱정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도 들려오는데 에서는 좀 귀엽게 표현되었다. 그녀의 차림은 누구를 유혹하기 위한 것일까? 영화에 나오는 연인 페르잔 백작을 유혹할 때만 하더라도 그런 것은 소용 없었는데....그리고 어차피 궁 안에 있는 사람들이요 출입하는 사람들도 그게 그 사람인데 눈치 안 보며 밀회를 즐길 수 있었을까? 더구나 한 나라의 왕비가. 아님 그 지위를 이용했던 것일까?
출산 이후 별궁에 거처를 마련한 마리가 페르잔 백작과 벌이는 밀회 이후 몇몇 자녀가 태어나는데 나는 페르잔 백작 외에도 그 상대가 한 명 정도 더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공공연한 왕비의 애정행각이 궁 안에서 벌어졌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별궁은 일종의 안전장치로 기능하는 셈이다. 밀회를 위한. 또 화려하되 허세가 있는 듯하고 유행에 민감하나 서열이 분명한 이상한 프랑스 왕정에서 한 발 물러나 고향이 삶을 그리며 사는 마리는 점점 유리되는 듯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것은 루이 16세도 마찬가지. 조세 부담을 유발할 미국 독립전쟁 원조를 과감히 단행하는 것은 궁 안에까지 그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파리의 루브르로 가지 않고 베르사유에 안주하려는 그는 단지 여기가 편하고 있을 것 다 있다는 말로 파리 행을 거부한다. 할바마마의 서거 후 갑작스레 왕좌에 앉게 된 그는 '우리들은 너무 어린데 어떻게 감당하느냐' 라는 기도를 하늘에 올린다. 그러고 보면 마리 뿐만 아니라 루이 16세도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왕이라고 해도 궁에 갇혀 살면 어쩔 수 없으니까.
모든 것이 말이면 다 되는 궁의 생활도 반복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락 음악이 연주되는 가면 무도회장으로의 일탈은 하나의 해방구다. 의상만 빼면 현대판 코스튬 파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 마스커레이드 장면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동시에 바즈 루어만의 와 퀸의 음악으로 도배를 했던 의 어느 신이 떠오르기도 한다. 두 작품의 장면이 낭만과 의례라는 점에서 일탈을 전제한 의 댄스 신과는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실제 정치에도 간섭할 수 없었던 궁의 여인네들의 처지를 돌아보면 아무리 놀아도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앞서도 말했지만 궁에 출입하는 남정네들이라고는 다 거기서 거기요, 새로운 인물이라 해도 서열 높은 사람이 찍어 놓으면 아무말 못하는 것 아닌가. 파티와 별궁에서의 전원적인 삶을 빼면 마리는 늘 생기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죽음을 맞이할 때도 그저 익숙한 풍경과 결별할 뿐, 그리고 처연하게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고 해야 하나 딱 그런 느낌이다.
밥 먹을 때마다 연주되는 음악을 들으면서 어린 모짜르트가 마리 앙트와네트에게 안겨 청혼했다는 귀여운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대략 모짜르트가 다섯 살 때 일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는 아직 마리가 프랑스로 시집가기 전이었다. 귀족들이 밥 먹을 때 즐겨듣는 음악이 디베르멘토였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이 시대는 밑의 계급들은 상류계급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 혹은 희생하는 존재로 치부되지 않았나 싶다. 궁정악사나 작곡가가 아무리 그 능력을 인정 받더라도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얻는 데는 그 한계가 있었으니. 그러고 보면 모짜르트는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산 사람이었다. 늘 가난에 쪼들린 것도, 영화 에서 볼 수 있었던 그 특유의 웃음소리도 다 시대와의 불화, 그리고 그것을 조소하는 결과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마리는 베르사유와 어울리지는 않으나 어쨌든 즐기고 본다.
영화 마지막에 군중들이 궁으로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한 시대를 바꾸는 동력이야 늘 밑에서 잠자고 있던 것이 역동적으로 분출되고 밖으로 뛰어나올 때 그런 것이지만, 를 보며 그런 분위기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고 느꼈다. 아마도 대다수 평자들이 궁정생활의 화려함, 십대 소녀의 이야기, 비주얼 이런 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차를 타고 다니며 대중에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왕족 및 귀족들은 결코 백성들과 동화될 수 없는 존재이기는 하나 우리와는 그 개념이 달랐던 것 같다. 왕이라는 존재 자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 사람 많은 거리에 나오는 여인들 중에는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여자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만큼 그네들은 오랫동안 안에서 갇힌 채 살아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리 앙트와네트가 루이 16세의 통치와는 유리되어 있는 것처럼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던 여자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집 혹은 궁으로 명사들을 초청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살롱의 탄생 배경이다. 플라토닉한 우정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말만 살롱이지 사교의 장으로도 기능했던 것 같다. 대를 이을 아이만 하나 낳아 놓으면 나중에는 바람을 피거나 말거나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도 같고. 그것은 또 이해관계에 따른 혼인이 많았다는 증거도 된다.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에서 나오는 창녀는 마담 뒤바리(아시아 아르젠토)인데, 이외에도 프랑스 궁정에 드나들 수 있었던 창녀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개방적인 사회였다는 말이었을까? 대를 이을 아들 하나 낳는 것이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기회고 그 의무만 다하면 모든 것은 용서가 되는 것이었을까? 하긴, 내 자식은 그저 Child 이지만, 사생아는 Love child 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가기는 한다.
영화평 :
궁정 내의 여인네들의 삶이란 바깥과 무관하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산다. 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백성들의 요구를 읽어내지 못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는 묻지 않는다. 감독이 말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아 비판할 수는 없다. 영화가 비극인 것은 누가 죽어서가 아니라, 궁에 갇힌 채 영원히 소녀로 남아야 했던 한 귀족의 삶이 갑자기 단절되는 데서 시작된다.
이 글과 무관한 결론 : 는 프라다 로 도배를 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낚인 것이다. 는 마놀로 블라닉을 선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명품은 어딜가나 티 나는 법이다.
사족 하나 : 키어스텐 던스트는 독일-스웨덴 혈통이다. 아마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앙트와네트 역을 소피아 코폴라가 맡긴 것인가 보다. 그럼 스웨덴의 페르잔 백작과의 연애도 이런 혈통을 고려한 배려?
마지막으로 수수께끼 하나. 위 사진은 누구일까? 정답은 에서 신성로마제국의 수호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비로 나오는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젊었을 적 모습이다. 그녀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니....참 식상한 말이지만 정말 세월이 무상하구료....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