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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SI사업 판도 바꿔야 한다.

윤광식 |2008.09.29 12:57
조회 183 |추천 0

최근 SI업계에서는 희한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살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서로 죽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싸움은 경쟁관계에 있는 SI업체끼리만 ‘죽는 게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자칫하면 국내 IT산업 전체를 죽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전산 프로젝트의 ISP 사업을 수주한 업체가 향후 전 과정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프로젝트의 각 단계마다 수주 사업자가 바뀐다. 이것은 일견 바람직한 모양일 수 있다. 특정 전산 프로젝트를 특정한 SI업체가 독식하고, 발주기관과 ‘끈끈한 관계’, 즉 밀착관계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만일 이런 현상이 발주자의 의지에 따라 일어난 것이라면 더욱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오로지 매출 달성을 위한 경쟁업체간 출혈경쟁이 빚어낸 씁쓸한 현상일 뿐이다.

 


대형 SI업체간 ‘복수혈전’식 가격경쟁

이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최근 관심을 끌었던 외교통상부의 전자여권시스템구축 사업에서 ISP사업을 수주하는 등 전통적으로 전자여권사업에 강자로 군림해온 삼성SDS를 누르고 LG CNS가 사업권을 획득했다. 외교통상부가 밝힌 당초 프로젝트 예가는 약 160억원 정도였으나, LG CNS는 가까스로 100억원대를 맞춰 이 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관련업계는 ‘복수혈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올 초에 있은 대법원의 통합유지보수사업도 실상은 가격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 넘게 대법원을 텃밭으로 일궈온 LG CNS를 제치고 삼성SDS가 약 130억원 규모의 사업권을 수주했다. 오랜 프로젝트 진행 과정상, 올해도 당연하게 사업권을 수주할 것으로 여겼던 LG CNS가 방심한 탓도 있지만, 더 이상 ‘파트너’에게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대법원의 의지가 담긴 수주쟁탈전이었다. 결국 대법원은 2번 유찰에 따른 기존 사업자와의 수의계약을 피하고, 공정경쟁입찰을 시도해 더 저렴한 가격에 삼성SDS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이했다. 외교부 전자여권 프로젝트와는 본질 면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똑똑한’ 대법원이 이를 적절히 활용한 측면이 강하다.

 


동일 프로젝트를 놓고 후속 사업 수주에서 국내 대형 SI업체 간에 벌이는 가격 경쟁 외에 각기 다른 프로젝트를 놓고 벌이는 순차적인 경쟁 또한 점입가경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인연금관련 프로젝트를 삼성SDS가 수주하면, 후속 여타 공공기관의 프로젝트에서는 LG CNS가 무리를 해서라도 사업권을 수주한다. 이를 지켜보는 글로벌 솔루션 밴더의 영업담당 임원은 “수익보다는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수익은 안중에도 없다, 매출과 자존심이 우선”

대형SI 업체 간 가격경쟁, 즉 눈앞의 외형 불리기를 위한 매출경쟁은 여기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이번 달부터 LG CNS는 LG그룹의 동일한 IT 자회사였던 LG엔시스를 분할합병을 통해 계열사로 편입했다. 솔루션 사업과 유통/리마케팅 사업을 분리하는 그룹 내 IT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위한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때문에 최근 LG CNS와 LG엔시스는 직원 재배치 작업을 진행했다. 유통과 관련한 LG CNS 직원 200여명이 LG엔시스로 옮겼고, 보안 사업을 담당하던 LG엔시스 50여명의 직원이 LG CNS로 옮겼다.

 

삼성SDS는 LG CNS의 계열사 편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SI업계 선두자리를 고수해온 삼성SDS가 LG엔시스를 통합한 LG CNS에게 SI ‘왕좌’를 내줘야 할 형편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사의 2007년 목표 매출만 비교하면, 이미 선두자리가 뒤바뀐다.

 

LG CNS는 기존 LG엔시스의 올 매출목표 4,500억원을 포함해 총 2조5,55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고, 삼성SDS는 2조4,450억윈이 목표이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 삼성SDS 관계자들이 LG CNS의 LG엔시스 통합 과정 및 효과에 대해 면밀히 분석했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수익은 중소업체를 짜면 된다” 공멸로 가는 길

국내 대형 SI업체 간 가격경쟁을 통한 매출경쟁이 단순 특정 SI업체의 문제로만 끝난다면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출혈경쟁에 따른 폐해가 고스란히 국내 IT산업 전체에 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문제이다. 매출을 목표로 한 가격경쟁으로 장기적으로는 대형SI업체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결국은 국내 전체 IT산업의 구조마저도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국내 대형 SI업체는 사업권 수주시 수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우선 사업권 수주가 목적이다. 원가 및 수익 산정은 그 다음의 일이다. 결국 예가에 턱없이 모자란 가격으로 사업권을 수주한 SI업체는 솔루션 업체를 비롯한 협력업체, 중소 SW업체들에게 가격을 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어느 글로벌 솔루션 밴더의 한 영업담당 임원은 “사업권을 수주한 SI업체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75%를 디스카운트해도 가격을 맞추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결국 저가에 사업권을 수주한 SI업체는 글로벌 솔루션 밴더의 직접 판매에 의한 ‘개발 및 유지보수’ 사후보장을 포기하고 동일한 솔루션을 판매하는 국내 리셀러를 접촉한다. 그렇다고 국내 리셀러가 SI업체가 요구하는 가격에 맞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향후 발생하는 여타 프로젝트를 몰아줘서 일부 보상을 받게 하는 방법을 취한다.

 


‘게이트웨이’ 역할만으로 수익 챙기는 대형SI업체

이 같은 관행은 단지 한 두 SI업체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 업체를 비롯해 국내 중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업체들이 대형 SI업체를 상대하면서 겪는 일상적인 일이다.

 

외국의 유수 글로벌 솔루션 업체를 비롯한 국내 중소 전문 HW/SW업체들은 자사의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SI업체이다. 국내 SI업체 대부분이 대기업의 자회사이기 때문에 국내 대기업 군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는 SI업체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뿐이 아니다. 국내 대형 SI업체가 공공을 비롯한 국내 주요 민간 프로젝트까지 독식하고 있어서 여타 중소 시장을 제외한 그럴듯한 시장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서 대형SI업체의 ‘우산’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 국내 IT산업의 현실이다.

 

특히 삼성SDS, LG CNS, SK C&C 등 이른바 IT서비스 ‘빅3’의 지난해 매출은 국내 주요 IT서비스업체의 매출합계인 8조3,179원 중 약 5조5천억원으로 무려 60%를 차지한다. 그룹의 캡티브마켓을 제외한 공공을 비롯한 경쟁시장만을 대상으로 하면 비율은 더 높아진다.

 


“업계 떠나거나 아예 SI업체에 넙죽 들어가겠다.”

SI업체와 파트너십를 맺으면 결국 손해만 볼 줄 알면서도 그들 밑으로 들어가야 만하는 국내 중소 IT 전문 업체. 그래야만 실적을 쌓을 수 있고,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레퍼런스를 요구하는 국내 IT 솔루션 구매 관행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올해 상반기에 실시한 정부의 행정정보DB 구축사업자 선정에서 대형 SI업체에 맞서 상당히 비중 있는 프로젝트에 주요 컨소시엄으로 참여 한 DB 구축 전문 업체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 수주에 실패했다. 형식적으로는 기술 및 가격 점수 등 평가에서 뒤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대형SI업체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당초 행정정보DB 사업이 중소기업을 배려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성이 없는 대형SI업체에 주사업자 역할을 맡기는 사업수행 관행으로 인해 전문성 있는 DB구축업체는 설 땅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부터는 올해와 같은 실속 없는 일은 그만하겠다.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안된다. 이시장을 떠나거나 그나마 하던 사업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형 SI업체에 줄을 서겠다.” 2007년 행정정보DB 프로젝트 수주에서 실패한 중소 DB전문 업체 사장의 말이다. 국내 IT업계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공정한 게임룰 세워 모두가 상생하는 풍토 마련해야”

 

다행히 정통부가 국내 IT산업의 생태계 조성을 위해 ‘소프트웨어 분리발주제’와 ‘대기업 참여제한 상향 조정’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내 중소 IT업체들은 지난 10여 년간 “대형 SI업체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탄만 해왔다. 이제는 더 이상 하릴없이 한숨만 쉬고 있어서는 안된다. 대형 SI업체는 업체대로 전문성과 솔루션에 기반을 둔 사업 수행방식으로 변화시키고, 중소 전문 업체 제값 받고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IT업계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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