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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지다(최진실)

허광빈 |2008.10.04 21:26
조회 323 |추천 5
故 최진실, 영광, 고통 뒤로 한채 40세 생 마감 '별이 지다'(종합) [마이데일리 = 최나영 기자] 탤런트 故 최진실의 유해가 4일 오후 12시 50분 경기도 양평 양수리 갑산공원에 안치됐다. 이로써 2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자택에서 의사(목맴)로 사망한 고 최진실의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났다.

고인의 발인식은 4일 오전 8시께 서울 강남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렸으며 이날 오전 9시 20분께 경기도 성남시 성남 영생관리사업소에서 화장 절차가 진행됐다. 탤런트 윤다훈, 조연우, 박해진, 고주원 등은 관을 운구했다.

산에 묻히고 싶다는 살아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유해는 갑산공원으로 옮겨졌다. 갑산공원에서 최진영을 비롯한 유가족, 엄정화, 이영자, 홍진경, 이소라, 신애 등 절친한 동료연예인, 교회 교인들, 취재진 등 약 250명의 사람들이 최진실의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고 최진실은 산에 묻히며 40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20년간 연예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던 최진실은 슬하에 두 아이를 남긴 채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 작별을 고했다. 최진실의 사망은 지인들, 동료들 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울고 웃던 일반 시민들의 가슴에도 깊은 슬픔을 남겼다.

1968년 12월 24일생인 최진실은 지난 1988년 MBC 사극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데뷔했다. 깜찍한 외모와 발랄한 연기로 데뷔 이후 곧바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그녀는 한 CF에서 선보인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란 멘트를 유행시키며 `만인의 연인`으로 떠올랐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꼭지단(1990), `남부군`(1990), `마누라 죽이기`(1994), `고스트 맘마`(1996), `편지`(1997), `은행나무 침대 2-단적비연수`(2000)와 드라마 `질투`(1992), `별은 내 가슴에(1996) 등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 연기자로서 입지를 다져갔다. 일생동안 각종 신인상과 스타상, 연기대상 대상 등도 휩쓸었다.

많은 히트작을 남기며 대한민국 대표 연기자로 우뚝선 최진실은 2003년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선남선녀 커플로 주목받았던 최진실과 조성민은 일명 `세기의 결혼`을 올렸지만 약 1년 후 합의 이혼했다.

최진실의 이혼은 양측의 입장이 대립하고 여러 가지 소문을 낳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고, 이 과정에서 최진실이 연기자로서 재개하지 힘들 것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들 환희와 딸 수민, 두 아이의 엄마인 최진실은 짐체기를 이겨내고 2005년 `장밋빛 인생`에서 시한부 생을 사는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화려한 컴백을 알렸다. 보는 이를 뭉클케하는 최진실의 애절한 연기는 대중의 심금을 울렸으며, 그녀는 다시 `연기자`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연기자와 MC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최진실은 최근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출연하면서 다시 한 번 녹슬지 않는 파워를 보여줬다. 아이들을 홀로 키우면서 일에도 성공한 최진실은 야무진 싱글맘으로서 대중의 응원을 받았다.

`똑순이` 최진실의 인생은 이렇게 탄탄대로인 듯 했다. 하지만 최근 절친한 동료 정선희의 남편 故안재환이 자살을 해 큰 충격을 받았다. 안재환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가장 먼저 병원에 달려온 이가 최진실이었고, 고인의 발인까지 정선희를 곁에서 지켜준 이도 그녀였다.

하지만 곧 최진실이 고인에게 사채를 빌려줬다는 루머가 나돌았고, 그런 소문을 퍼뜨린 용의자를 검거하면서 마음 고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소문과 역경을 이겨내온 그녀였지만 지인을 잃은 상실감과 그에 따른 복합적 상황, 그리고 연예인으로서 느껴여만 했던 외로움과 우울함 등은 그녀를 사망으로 내몬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비운의 톱스타 최진실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대배우 최진실, 불꽃같은 인생 10가지 이야기
[아시아경제신문 고재완 기자]1988년 데뷔해 꼭 20년동안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고 최진실이 불꽃 같은 인생을 마감했다. 그는 데뷔 후 줄곧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하며 남녀노소 관계없이 많은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가 활동했던 20년동안 우리를 울고 웃겼던 10가지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1989)=1988년 MBC '조선왕조오백년 한중록'으로 데뷔한 최진실은 삼성전자의 CF 한편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멘트와 귀여운 마스크로 하룻밤새 톱스타 대열에 들어섰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CF모델 이미지가 강했던 최진실은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박중훈과 호흡을 맞추며 배우로 각인됐다. 영화 속에서도 CF와 연장선상에 있는 귀여운 이미지가 어필했다.]
◆질투(1992)=드라마 '질투'는 최진실을 최수종과 함께 당대 최고 스타 대열에 들어서게 한 작품이다. 한국 최초로 트렌디 드라마를 표방했던 '질투'는 최진실의 발랄하면서도 커리어우먼적인 캐릭터를 한껏 부각시키며 성공했다.


◆매니저 사망(1994)=승승장구하던 최진실은 데뷔 후 첫 암초에 부딪힌다. 자신을 발굴한 매니저 배병수씨가 살해된 것. 또 이사건의 범인이 로드매니저인 전모씨인 것을 밝혀지며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 최진실은 법정에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별은 내가슴에(1996)=안재욱과 출연한 MBC드라마 '별은 내가슴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톱스타의 자리를 이어갔다.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화제가 된 작품.

◆결혼(2000)=최진실은 당시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자이언츠에 진출해있던 5세 연하의 야구스타 조성민과 결혼을 발표하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연예계와 스포츠계 톱스타의 만남으로 큰 화제가 됐다.

◆파경(2002)=이들의 파격 소식은 결혼 소식만큼이나 충격으로 돌아왔다. 2002년 12월 조성민은 기자회견을 열고 별거에 들어갔다.


◆이혼(2004)=끝까지 이혼을 거부하던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행사건이 일어난 뒤 이혼을 결정했다.

◆장밋빛 인생(2005)=이혼 후 연기활동과 육아에 전념하던 최진실은 KBS2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큰 성공을 거두며 그동안의 아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재기에 성공했다.

◆자살(2008)=최진실은 10월2일 자택 목욕탕에서 목을 매 숨졌다. 우울증을 겪고 있던 차 '사채를 했다'는 루머가 퍼지며 심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20년 동안 톱스타의 자리에 있었던 최진실은 안타깝게도 불꽃같은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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