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유비의 무능함을 빗대어 쪼다,바보라는 식으로 비웃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그를 중심으로 하는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는 주인공이자 중국의 대표인물로써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유비는 남북조 시대때 송의 유유가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자신이 유비의 후예라 칭하면서 유비의 촉한에 정통론을 내세웠으며, 송나라때
요와금에 압박과 몽고로인해 항상 북방에 시달림을 당했기에 주자(주희)가 나라의 어지러운
상황을 해결하기위해 일차적으로 내국민의 사상통일을 위해 북방민족을 위나라로 인식케하고
자신들은 촉한을 계승한 정통성을 내세웠다. 여기서 촉한에 정통성을 부여한것은 유비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리학적 군주상에 가장 부합하였고 유비처럼 지금 지는건 지는게 아니라
는 불패사상으로 조조에게 끝없이 맞서고 결국엔 파촉을 수중에 넣는 결과를 얻었다. 이 유비
로 대표되는 불패사상은 그 당시 송이 바라는 것과 같았고 지금은 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이길거라는 중국인 특유의 기질이 잘 반영된 예이다. 송에 이어 명도 주자의 성리학을 추종
했기 때문에 유비는 한없이 부드럽고 인덕이 많은 사람으로만 부각되어야 했다. 하지만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기 이전의 싸움이 마치 관우와 같은 무장들의 무공으로 인해서만
이겼다는점은 말이 안된다. 전쟁은 한 사람의 힘보다는 전술로써 승리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유비는 원소와 조조같은 중앙귀족 출신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진게 없
었던 상태였고 그로 인해 따르는 무리도 적었다. 그래서 무장뿐인 세력속에서 혼자서
통솔,외교,보급,행정 등 여러 업무를 혼자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아무런 배경도 없는 그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제후로써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혼자서 올라운드
멀티 플레이어였던 유비는 제갈량과 방통을 만나기 전에는 혼자서 거의 모든 지휘를 해야
했기때문에 조조같이 군사 전문가들이 전투를 수행하는 집단에게 승리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비는 이름 없는 제갈량을 삼고초려나 해서 데려온건, 관우나 장비 조자룡보다
더 행정적 경험이 있고 전쟁의 흐름을 읽어 작전을 기획 할 수있는 인재가 절실했기 때문이
다. 말하자면 관우나 손건보다만 나아도 자기의 과중한 업무를 줄여주고 각 부분에대한 분업을
통한 체계적인 전술이야말로 유비군이 형주까지 몰린 상황을 타계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비는 자신의 문제점을 잘 알고있었으며, 멀티플레이어적 성격의 능력있는 군주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비를 인덕의 대명사로 생각하는데 유비가 관우의 죽음으로 인해 유봉을
죽이는 일에대해 생각해 볼 일이 있다. 유봉은 유비의 양자로써 많은 전공을 세우는 등 유능한
사람이였지만, 유비의 친아들 유선이 훗날 군주가 되면 그 존재자체가 매우 걸렸기 때문에 유
비와 제갈량은 유봉을 근심거리로 생각하고 관우의 죽음을 기회로 그를 처단한것이다. 이는
삼국지 정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비는 백성을 버리지 않고 같은 유씨라 하여 형주를 차지
못하는등 인덕을 과시하는데 이는 당연 이미지 관리이고 그도 사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은 영원한 악인도 선인도 없듯이 유비도
한 인간으로써 보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유비를 위시한 성리학의 촉한
공정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있다. 우리에겐 유비와 제갈량으로 대표되는
촉한이 충의지사들의 집단이라 생각되고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