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남편의 아침인사가 바뀐 것 같다.
좋은 아침, 잘 잤어? 라는 평범한 인사가 아닌.
"오늘은 누가 죽었게..?" 로 시작하는 섬뜩한 아침.
안재환의 죽음보다 더욱 말이 안되는, 더 믿을 수 없는
최진실의 죽음이었다.
이른 새벽 욕실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고
순간적으로 '욱'해서 실수를 했을 거라 생각했다.
잠시 우울증을 앓았던 때의 나도
홀로 깨어 있는 밤이면 아슬아슬 줄타기 하듯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곤 했으니까.
그 밤이라는 시간이 감정조절이 참 안되는
내 스스로에게 내 자신이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시간이었으니까.
그 밤만 잘 넘겼다면
그리고 다시 아침이 밝았더라면
최진실은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두 아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계속해서 자신을 충동질 하는
그 무서운 밤을 반복 해야만 했을까.
어쩌면 그렇게 하루, 또 하루의 밤을 넘기기를 반복하며
연예인으로 살아온 20년을 버텨온 것은 아닐까.
죽어서도 씹혀야만 하는 연예인들.
참 말도 안되는, 상식적으로 가능할까 싶은 이야기들이
연예인들에게 있어서만큼은 당연한 사실로 둔갑해버리곤 한다.
누가 누구의 가슴 실리콘을 터뜨렸다는 둥,
누가 라디오 전화통화에서 '나 누구 먹었다'라고 했다는 둥,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임에도
내 친구 누구가, 내가 아는 누구누구가 직접 들었다더라, 봤다더라는 식의
나름 '증거'를 디밀며 사실이라 주장하면
다들 그것을 '사실'로 철썩 같이 믿고 만다.
이것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게 되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나도 어디서 들은 말"이라는 면책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심지어는 기자들 조차 "이런 루머가 있더라" 라며
루머의 사실 여부가 아닌,
루머가 돌고 있는 '사실'을 기사화 하며
몰랐던 루머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되도록
루머의 내용을 소문내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연예인을 이리저리 씹는 것에
그닥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그저 '못마땅함'에서 비롯된 연예인에 대한 비난, 악플 조차도
저 사람은 연예인이니까, 비판도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며
'까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덜한 듯 하다.
비판과 비난이 다름은
백날 말해도 먹히지 않는 듯 해서 말하기도 지치지만.
연예인의 잘잘못을 두고 개선을 요구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야기들은
듣기 싫은 말일지언정 '비판'이 될 수 있겠으나
막연한 욕설과 인신공격까지도 '비판'이란 범주에 넣어
자신의 막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의 차이는 죽어도 모르는 듯 하다.
내가 싫다고 연예인 욕하는게 당연한 걸까.
사람을 싫어하는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이효리는 연애도 못하나
얼마 전 수영장에서 '도촬'을 당했던 이효리.
모바일 섹시화보도 아니고
난데없이 도촬 당한 비키니 사진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음에도 이효리의 행실(비키니차림)을 문제 삼는 이도 있었고
연인으로 지목된 이가 모재벌가의 아들이란 말에
패밀리가 떴다에서의 소탈한 이미지가 조작이라는 둥,
재벌2세와의 교제가 마치 비윤리적인 일이라도 되는냥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이효리는 연애 하면 안되나.
친구들하고 수영장 놀러가서 비키니 입으면 안되나.
도촬을 문제 삼는 댓글보다도
재벌2세와 비키니 차림으로 어울리는
이효리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보면서
연예인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싶었다.
연예인. 엔터테이너.
그들이 대중에게 주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들이 가진 재능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헌데 그들이 대중에게 주는 더 큰 즐거움은 따로 있다.
고기처럼 "씹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
엔터테이너들이 주는 즐거움,
그들의 재능으로 인한 즐거움,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서 부터 얻는 즐거움이 아닌
깔고 뭉개고 까발리고 흠집내며 '씹는' 즐거움에 열광하는 사람들.
직장동료들이, 학교 친구들이
나를 씹음으로 해서 즐겁다면
기꺼이 나를 내어던져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남을 손가락질 하는 한개의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은 나를 향하게 된다.
누군가를 씹고 씹으며 즐겁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 부정적인 에너지는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는 악이 되고 말테니까.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 진정한 죽음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로 부터 잊혀지는 것이 완전한 죽음이라고.
최진실의 죽음이 그녀를 그 징그러운 입소문으로 부터
해방시켰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녀를 둘러싼 소문들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 소문은 그녀가 죽고난 후에도 끊임없이
세상을 떠돌게 될 것이고.
그녀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것은
차라리 그녀를 잊어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연예인도 공인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 최진실 사망 사건 보도를 듣고
충격에 빠져 일손을 놓고 계시던 동네 슈퍼 아저씨를 보면서,
정치 경제 이야기 다 제쳐놓고 최진실 사망 사건을 첫 뉴스로 내보냈던
9시 뉴스를 보면서
식당을 가도 택시를 타도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연예인이 미치는 영향력은 공인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음을 느꼈다.
공인이라는 말,
그것은 하나의 족쇄로
연예인들을 가두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툭하면 공인 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서
책임을 가중시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연예인이 정말 공인이라면.
공공의 사람이고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고
공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면.
그런 공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잔디를 밟지 마세요." 처럼.
"연예인을 까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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