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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그들이 보낸 생애 마지막 편지

이강율 |2008.10.08 19:30
조회 304 |추천 1

한살 두살 먹을수록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것만 같고 얼마 되지

않는 그 사람들에게조차 언제,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 할지  망설임은 계속 커지는것 같다.

 

 언제 한걸음 다가서야 할까?? 언제 마음을 열어야 하는거지?

 

때론 정말 하고 싶었던 말과는 정반대의 말을 내뱉기도하고

내일의 용기를 꿈꾸면서 오늘 하루도  어제와 똑같은 망설임으로  그 사람 곁을 계속 맴돌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 앞에 설 수 있는 자신의 시계가 조만간 영원히 멈춰버린다는것을 알아버린 사람들은

내일의 용기를 꿈꾸며 잠들기보다는  잠들어버린 오늘밤이 생애 마지막날이 될까봐 하는 두려움이

더 크다.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알아버린 사람들도 있지만

내일의 용기를 꿈꾸며 잠들었던 오늘이 생애 마지막날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이젠 영원히 떠나버린 그들이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남겼던  그 마음들을 하나씩 꺼내볼려고한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조금 늦게 도착한만큼 더 간절하고 슬펐던  떠난 사람들의 마음을....

 

( 주인공이 죽는다는 공통적인 틀 안에서 쓴 포스팅이기때문에 언급한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

은  유의해주세요 ) 

 

1) 영화

 

3류 양아치인 강재(최민식 )는  자신과 서류상으로 위장결혼한 조선족 여성인 파이란(장백지)이 죽고

난뒤  생전에 그녀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읽게된다.

 

강재씨에게

아무도 없는 사이에 살짝 몇자를 씁니다..
손이 굳어 글씨를 지저분하게 써서 죄송합니다
이 편지를 강재씨가 보시리란 확신이 없어 부치지 않습니다
이 편지를 보신다면 저를 봐주러 오셨군요.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죽습니다. 너무나 잠시였지만 강재씨의 친절 고맙습니다.

강재씨 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강재씨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게 되자 힘들게 되었습니다.
혼자라는게 너무나 힘들게 되었습니다..죄송합니다.
당신은 항상 웃고 있습니다.
여기 사람도 모두 친절하지만, 강재씨가 가장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강재씨 ! 내가 죽으면 만나러 와주실래요?
만약 만난다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습니까?
응석 부려서 죄송합니다..제 부탁은 이것뿐입니다.
강재씨 !당신에게 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서 죄송합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는 강재씨

 

안녕..

이 장면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싶다.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쓴 파이란의 서툰 글씨와 어눌한 한국어 발음처럼 

꾹꾹 눌러담은 슬픔을 토해해던 강재가 오열하는 장면은

브라운관 밖에있는 사람들이 마치 강재 몸에 있는 모든 세포 하나 하나의 슬픔이 느끼지는듯한

착각마저 들게한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의 아내로 사는것이 아니라 당신의 아내로 죽는것이 마지막 부탁이었던

그녀의 가여운 사랑이 강재 한 사람만 울렸던건  아니였다.

 

2) 영화

 

 

백혈병에 걸려 아키가 세상을 떠난뒤 10년이 넘어서야

사쿠타로에게 전해진 아키의  마지막 음성편지....

 

( 세중사는  카세트에 녹음한 형식이라 엄밀하게 말하면  편지라고 할 수 없지만

 음성편지도 편지에 끼워 맞추는 무규칙 막된 논리를 밀어붙인점 사과드립니다.  )

 

눈을 감으면, 너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라!

생각나는 모습은...

볶음국수 빵을 문 커다란 입, 얼굴을 일그리며 웃던 모습,

화나서 불어있다가도 금세 돌아보며 웃어주던 상냥함,

'꿈의 섬"에서 본 너의 잠든 얼굴...

지금도 손뻗으면 만져질 것만 같아.

스쿠터에 탔을 때 전해오던 네 등의 따스함이 내겐 너무나 소중했어

너와의 수많은 추억이 내 인생을 빛나게 해줬어.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로 고마워.

잊지 않을께. 너와 함께 한 소중한 시간들을

 마지막으로 딱 하나 부탁이 있어.나의 재를 울룰루'의 바람속에 뿌려줘.

그리고 넌... 너의 시간을 살아 줘.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안녕...

 

 그 사람은 영원히 내 곁을 떠났는데

시간은 계속 가고 있고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듯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람들은 살아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을 느껴야하고

또한 죽은자의 기억을 안고 앞으로 어떻게든 살아가야하는 존재들이다

이젠 흐르지도 않는 메마른 눈물을 속으로 삼키고 

숨을 쉰다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속의 미세한 먼지처럼 보이지 않는 슬픔들을

들이마시고 내쉬는것도 같은 그 고통의 순간에도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그 사람이  떠나버린 텅빈 세상에서

여전히 변함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에 맞춰서 시간을 산다는건

어쩌면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져야하는  잔인한 생의 의무일지도 모르겠다.

 

잊어버린건지 아니면 잃어버린건지도 모르는 아키와의 추억을 조금씩 되짚어가는

사쿠타로와는 달리 아키의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멈춰버렸지만

내가 당신곁에 없더라고 내가 당신과 함께 시간을 살지 못하더라도

부디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살기 바란다는 아키의 목소리는 영원하다.

 

3) 영화

 

 

마코토~ 안녕!

나는 지금 일리노이주의 게일즈버그라는 거리에 와있어

녹음지고 너무 멋진 거리

하지만 이런식으로 촬영여행을 계속하면

매일이 너무 즐거워서 모든일에는 끝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하지만 언제가는 그래 언제나 이별은 생각보다 먼저 오지

그래도 모두들 웃으며 말하는거야

안녕 언젠가는 다시 만나요 안녕 어딘가에서 다시 라고

그래서 나도 이렇게 멀리 와버렸지만 마코토에게 말할께

 안녕~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 

 

난 안녕이라는 말을 보면 마음이 참 그렇다

만났을때도 안녕이라고 하지만 헤어질때도 안녕이라고 하지 않는가.

똑같은 안녕인데  그 상황에 따라서 반갑고 기쁜 말이 될수도

아프고 슬픈 말이 될수도 있는 안녕은 이렇게  보면 참 어려운 말인것 같다.

특히나 영영 헤어지는 순간에  안녕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때

처음 만났을때 그 사람에게 들었던 안녕이 생각이 나서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야 할지 아니면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흔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혹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건 아닐까 ?

 

" 안녕~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

 헤어질때의 안녕인것 같지만  그래도  슬프지만은 않은 안녕인것 같다.

 

4) 영화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뒤 

나는(오다기리 죠)' 엄마가 죽으면 열어보세요 ' 라는 작은 상자에 담긴 엄마의 편지를 보게된다.

 

마군, 긴세월 고마웠다.

도쿄생활은 아주 재미있었다.

엄마는 결혼에는 실패했지만

마음착한 아들을 선물받아서 행복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었다...

어릴적엔 울보에 병약해서 신불님께 빌때는 첫째가 건강.

그리고 순진한 아이로 자라나길...

크고 나서는 역시 건강이 첫째

그리고 장사번성, 

요즘엔 욕심을 내서 여자친구와 두사람의 교통안전을 기원하고 있어요.

여자친구는 정말로 우리 딸 같았다.

어머님, 어머님 하고 애교부리는 것이 너무나 기뻤어.

엄마는 행복하게 막을 내릴 수 있어서 아무 여한이 없습니다.

잘있거라 마군.

 -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이 어머니라고 하지만 어쩌면 가장 차가운 말이 될 수도있는것 같다.

그 무엇보다 따뜻하다고 말하는 그 사랑에게

버림받고 상처받은 아픔과 고통은 그 만큼 더 크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버림받고 상처받은 아픔이 아니라 너무 따뜻한 나머지 먹먹하다 못해

어쩔땐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드는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 < 도쿄타워 >는  슬픈영화라는 표현만으론 부족한 영화인것 같다.

 

개인적으로  새드 무비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젖은 수건을 비틀어서 짜는듯한 영화는 정말 비호감의 최고봉으로 여긴다.

 있는 힘껏 젖은 수건을  꽉 쥐어 짜는것처럼  영화 여기저기에 깔아놓은 작위적인 설정과

아무런 의미없이  쉴새없이 펌프질하는  눈물을 보여주면서

마치 "이래도 안울래??" 라고 말하는것 같은 영화를 한편 보고 나면 

내 자신이 비틀어서 짜다가 끝내는 찢겨버린 수건이 된것 같은 처참한 기분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쿄타워는 억지로 눈물을 쥐어 짜지 않고 오히려 눈물을 닦을 마른 수건을 한 박스를 준비하고 있는것 같은 영화다.   오다기리 죠 라고 하면 길거리 음식  오다리  를 말하는 줄 알았던  친구 K양이 이 영화를 보고난 뒤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일본여행을 위해 피같은 술값을 아껴가며   적금을 붓게 할만큼  오다기리 죠의 연기도 좋았지만  어머니 역으로 나오신 키키 키린 상과 젊은시절의 어머니를 연기했고  실제 키키 키란 상의 친딸이기도 한  우치다 야야코 상의 조용하면서도 넘치는 않는 연기는 영화 내내 마음을 소란스럽게하고 눈물을 끊임없이 넘치게하는 최고의 명연기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주연 조연 가릴것 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준 영화와   일본 남자 연예인 중에서는 쉅게 찾아볼 수 없는 기럭지 소유자인 하야미 모코비치의 드라마  둘 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한 킹왕짱은 릴리 프랭키의 원작소설 일것이다.   ( 소설을 읽지 않으신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 강추 합니다 )   릴리 프랭키-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과도한 눈물 분비로 인한 두통과 팅팅 부은 눈, 심한 공복감( 심하게 울고 나면 배가 고프건 왜일까? ㅡㅡ;; )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싶게 하는  육체적 정신적 만신창이로 고생하긴 했지만   내가 살아있다는것, 무엇보다  어머니가 살아계신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해줬던 만신창이라서 그것마저 기쁘게 아파했었던 기억이 난다.   5) 영화

 

 

종현의 형인 성현(신하균)이 죽고난뒤

성현이가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보냈던 꽃과 편지가 집에 도착한다.

 

어머니 !    

생일 축하드립니다. 성현이에요!

항상 생일 날 같이 있었는데 집 떠나니까 자꾸 옛날 생각나네요.

기억나요?  어머니 생일이면 저하고 종현이가 미역국 끓였던거 하도 많이 끓여서

일주일 내내 미역국만 먹었잖아요.

누구 말처럼 신이 모든 일을 다 챙길 수 없어서 세상에 어머니를 보낸 것이라면

어머닌 골치아픈 아들 둘을 만나셨어요.

어머니 인생이 저희 둘 한테 차압 당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애물단지들이 나중에 효도한다고 ...

잘할께요! 아마 제가 잘 못하면 종현이가 가만놔두지 않을걸요.

종현이 잘있죠?  보고 싶네요. 

그거 알아요?  늘 종현이한테 미안했던것, 어머닌 항상 제가 먼저였잖아요.

어머니!   이제 그만 제 걱정 마시고 종현이한테  잘 해주세요.

지금 옆에 있는건 종현이잖아요. 

 어머니 !  아니 엄마 ! 늘 엄마라 부르는 종현이가 부러웠거든요.

 사랑합니다 !  저희들 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셔야 되요.

언제까지나  엄마 곁에서 함께 할께요.

 

  - 아들  성현 올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고 하지만 더 아프고 덜 아픈 손가락은 있는것 같다.

언청이로 태어난 형인 성현이는 동생인 종현이보다 더 애달프고 더 아픈 손가락이었다.

똑같이 깨물어도 더 아프게 느껴졌던 자식이었기에

어머니는 종현이를 덜 사랑했기 보다는 다만 성현이를 더 아파했던것 같다.

종현이가 조금 늦게 알아버린 마음이지만  어머니가 평생 당신 손가락의 아픔을 참고 어루만지시며살아 갈 수 있었던것은 남편같이 든든했던 자신이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가까이 있고, 고개를 돌리면 항상 그 곳에 있어준다고 믿는 가족이지만 

가까운 그 거리만큼이나  주게 되는 상처는 더 깊고 무심함은 점점 더 커져 갈 수 있다.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수 있다는거 평생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tv를 보고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우린 너무 가까이 있기때문에 그걸 깨닫지 못하는건 아닐까??....

 

# 조금 늦게 도착한 그들의 마음에  남겨진 이에게 안타까운 이유는 

 아마도  아쉬움과 후회 때문일것 같다.

 그 때 한 걸음 더 다가가지 못했던 그 망설임이 후회되고

 함께할 내일을 당연하게 느꼈던  그 때의  무심함이 후회된다.

 하루를 살았다는건 죽음에 하루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하루를 살았지만 정작 하루가 아닌 이틀 사흘만큼 죽음에 더 가까워졌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면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그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라도  건냈더라면 

 

지금 느끼는 안타까움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이 픽션인 영화에서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세상에서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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