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세상에.. 홀로 서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저녁 무렵
기별도 없이 찾아온 김 대감이 매향을 불러 앉히고서
"이제. 아이도 어느 정도 컸으니.. 더 이상..이리
숨겨 두고 키울 수 만은 없질 않겠소?..
내 이 아이.. 데려가 먹이고 입혀 키워 줄 터이니..
걱정 말고 내게 맡기게..
허나.. 자네를.. 함께 데려갈 순 없을 듯 하네..
자네가 갑작스레 사라 졌을 때도 온 고을이 온갖 추문으로
떠들썩 했는데..
홀연 아이와 함께 나타나 내 집으로 들어온 다면
자네 머리 올려주고 정을 나눈 사이 임을 알만 한 이는
다 아는 마당에
이 아이.. 내 아이임이..자연히 알려지지 않겠는가?
그러면.. 괜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려
내 명성에 먹칠 할 것임이 자명하고,
내 서슬 퍼런.. 본처와.. 자식들.. 틈바구니에서..
자네나,,이 아이나 버틸 수 없을 터이니..
마음 아프겠지만.. 이대로 보내주게
여인네 혼자 몸으로 아이를 키우기도 힘들 뿐더러
내 언제까지 이렇게
밤이슬 밟아가며 자네를 찾아오기도 힘들지 않겠는가?
내 이 아이는 친한 지기에게서 데려온 아이로
소일거리나 시키며 데려다 기르다가
장성하면 적당한 여식과 짝지여 혼례도 치러줄 터이니..
걱정 말고 자넨 자네 길을 가게 "
사모하는 이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기뻐하며
그 사내의 지어미로 살아갈 수 없더라도
그 아이 바라보며 살겠다 다짐했던 그녀였는데..
그를 위해 모든 걸 버리고,,세상과의 인연도 버린
그녀였는데..
지금.. 그 사람이..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간 그 사람이
그녀에게 세상이고..전부인 아이를 포기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리도 기막히고, 한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태어나 한번도.. 어미와 떨어진 적 없는 아입니다..
제가 함께.. 종살일 하더라도.. 함께 가겠소..
부디.. 제게 마지막 남은..
이 아이 마져.. 빼앗진.. 마시오.. "
애처롭게.. 매달리는. 어미 옆에서..
어느새 잠에서 깨어 아비인줄도 모르고
낯선 사내 앞에서 서럽게 우는
어미의 팔을 붙잡고
영문도 모른 체.. 소리죽여 따라 우는.. 가련한.. 아이..
엉엉 울고.. 소리쳐.. 투정 부릴 나이 이건만..
길이는.. 마치.. 큰소릴 내면.. 큰일이라도 나듯..
작은 입술을 앙다물고..
울음을 참고 있다..
" 매향아..
니 마음.. 모르는 바 아니나..
너와 나 태어나길 양반과 기생으로 태어났고,
맺어질 래야 맺어질 수 없는 사이가 아니더냐..
내 기회를 봐서 세상 사람들에게 네가 잊혀질 쯤 시간이 흐르면 너를 소실로라도 삼아 곁에 둘 터이니..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지금은 아이만이라도 데려가.. 입이라도 덜어 주는 게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로구나.. "
아직은. 젊디 젊은 나이나.
살던 터전도.. 자신이 기녀로써 갖고 있던 명성도..
모든 걸 포기해야 했던.. 매향은..
더 이상.. 문밖출입조차 자유롭지 않은.. 자신이..
어린 길이를 키우는 건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어린 녀석에게까지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워두는 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
가슴을 치며..
아이를 보내기로 한다..
어미를 꼭 뺴닮은..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고인..
길이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아이의 작은 어꺠를 꼬옥 잡고서 마주선 매향.
애써 눈물을 감추며 사뭇 엄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한다.
"아가.. 내 아가.. 길아..
어미가.. 널.. 미워해서.. 보내는 게 아니다..
널.. 아끼지 않아, 네가 짐이 되어 보내는 게 아니야..
어미곁에서.. 숨어 사는 것 보단.. 배 곪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널 위해선 더 낫지 않나 싶어서 란다..
아가.. 니 어미는 조선 제일의 기생 이였다.
비록 웃음을 팔고, 재주를 파는 천한 여인 이였을 진 몰라도
내 가슴에 담고 나를 허락한 사람은 니 아비 하나였다.
넌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준 이에게서 태어난 소중한 아이란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 건..
네게 부끄럽지 않은 어미가 되도록 언제나 널 내 가슴에 품고 살겠다.
길아.. 내 아가 길아.
이 어미 기억이.. 가물거리도록.. 지워질 떄면..
어미 내음이라도.. 기억해다오... 아가.. "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하염없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어린.. 공길...
그제야.. 아이다운 서러운 울음을 터트린다...
아비라 부르지도 못하는 아비의 손에 이끌려..
고개는 등 뒤에..선 어미 얼굴에 못 박은채.. 끌려가듯.. 떠나가는.. 일곱살.. 길이..
홀로 남은.. 매향이.. 그 뒤.. 남은 인생을..
어찌 살았을꼬...
생떼같은 자식을 떠나보내며 행여나 쫏아가
못가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까봐.
등 돌리고 서서 오열하는 어미와
언제 볼지 모를 기약 없는 헤어짐에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한 조각이라도 더
가슴에 담으려 목이 부러져라..
뒤를 돌아보며..
눈물 콧물 뒤엉킨 작은 얼굴로
그 먼 길을 가는 어린 길의 헤어짐이 가슴 아프다.
어린 공길을 업었다가.. 걸렸다가를 수 차례하며
겨우겨우 도성 안에 도착한 대감..
등에 엎혀 잠든 길을 흔들어 깨워 길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길아.. 지금 부터 너는 내가 지방 벗에게서 데려온
머슴아이다. 넌 날 아비라 불러서도 안되고,
니 어미의 얘기를 입 밖에 내어서도 아니 된다.
만일 그랬다간,
니 어미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게야.“
아비라 부르기엔 낯설기만 한 그 사내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진 않았으나
어미를 다신 볼 수 없단 그 말 하나는 분명 귀에 들어왔다.
언젠가 꼭 다시 볼 수 있으리라..
먼 길을 오는 내내 가슴 속에 되 내이며 있었던 그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드디어.. 난생 처음으로 엄청나게 커다란 대문 앞에
서게 된 공길.
그 기세에 눌려 작은 어깨가 더 움츠러 들었으나
이내 어깨를 쫙 피며 주먹을 꼬옥 쥐어본다.
‘여기서 말 잘 듣고, 시키는 일 잘 하고 기다리면
꼭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꺼야. 꼭.‘
이리 하여.. 순탄치 만은 않을
새로운 곳으로의 두려운 첫발을 내 디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