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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 away2

이은석 |2008.10.17 20:38
조회 70 |추천 0

요새 어떻게 지내니?


그녀는 아직도 저에게 밝고 아름답게, 그러니까 쉽게 묻곤 합니다.
그건 아마 쿨한 이별이란 걸까요. 그러니까 무사히 떠났다는 잘 도착했다는 인사 같은 걸까요.

아프되 슬퍼하지 않고 행복할 때 기뻐하지 않고 달려가 안기는 대신 안아줄 준비는 되어 있었지라고 말하며 소소한 일상들에 무디어지고 몹시 쉽게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게 되고 결국 그냥 감정적으로 게으르다는 게 사람들이 누군가를 말할 때는 쿨하다는 단어로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게 놀랍곤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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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너는 말하곤 했다.
그러니까 너는 우리가 아낌없이 세상을 가득 채울 듯 칠하고 또 칠하던 그 시간들을 지우고 있는 중일까. 보이는 것들마다 우리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끝내 자신조차 서로의 소유라고 애써 선언해가며 서로를 통해서만 다른 것들을 보고 함께 있는 시간만이 형체와 의미를 가지고 지나가게 되는 것처럼 이야기해가며. 정말 그랬을까?

시간이란 게 조용히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던 너의 스모키 화장처럼 눈가를 적시며 깊이 패여서 마침내 서로에게 가득 고이는 그런 거란 걸 그때 우린 몰랐다. 너는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했었다. 그 말이 내가 없어도 우리가 아니어도 괜찮을 수 있다는 말이란 것도 우린 몰랐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도 괜찮다고 말할 것이며 나는 조금 망설일 것이다. 사람들이 쓰는 괜찮다는 말이 사실은 네가 필요없다는 말이거나 너와는 상관없다는 말이란 걸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서로에게 가르쳐 주고, 헤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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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렇지, 괜찮아. 잘 지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여러 번 읽은 책장처럼 턱턱 넘어가버리는 그런 일들에 익숙해지고 나면 나는 삶을 살아내는 일에 비로소 적응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혹은 나도 무사히 떠나기 시작했다고 잘 도착할 것 같다고, 말할 자격이 생기는 걸까. 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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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서 내리면서 문득 네 전화를 받자마자 왜 그렇게 떠나고 싶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거나 혹은 빼앗겼다고 느꼈던 것일까?
애초에 그 아름다운 시간들은 내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끝내 무엇이 내 안에서 또박또박 걸어나갔는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이제 다 왔다고 말하면서 내려야 할 역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안도감을 확인하고 나서야 손끝에서 발끝까지 내가 어딘가로부터 온전히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플랫폼을 서둘러 벗어나고 있었다.
오래 흔들리며 같이 온 열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우리도 열차를 떠나야 한다는 듯이 함부로 뒤돌아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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