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녀간의 설정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의 설정에 주요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 이유는 이 장르의 소구대상이 여성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끼리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다. 하지만 연인들끼리, 혹은 여성들끼리 극장을 찾을 때 가장 선호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소구대상에 맞게 영화를 만들 수 밖에 없는거다. 그리고 또 매우 중요한 요소는 '대사'다. 소위 '대사빨' 먹혀야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로 평가받을 수 있다. 연인들간의 평범한 대화는 영화로 보여주기에는 재미가 없다. 코미디의 요소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이한 설정과 그 설정에 맞춘 재미있는 대사가 필수요소다. 그 다음으로 들어가는 요소는 슬랩스틱이다. 대사로만 한시간 반을 이끌어가기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간간히 남녀 주인공들이 몸으로 웃겨주는 개그가 꼭 들어간다. 마지막은, 적절한 감동과 해피엔딩이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비극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감동받고 이해하는 결말이 꼭 들어가기 마련이다. 보고 나서 즐거워야 하는게 로맨틱 코미디지, 눈물을 쏙 빼려고 코미디를 보러 오지는 않는다는 거다. 물론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이 필수요소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도,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를 살펴보면 이 정도 요소는 거의 필수적으로 갖춰져 있다. 대표적으로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봐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설정, 재치있는 대사, 적절한 슬랩스틱, 마지막의 감동적 해피엔딩까지. 이 이상 무슨 필요가 있으랴.
<아내가 결혼했다>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나선 영화다.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까. 90년대 <마누라 죽이기>, <결혼 이야기>를 거쳐 2000년대 초반의 <엽기적인 그녀>, <어린 신부>, <싱글즈>의 계보를 고스란히 가져왔다. 이 계보의 가장 큰 중심은 바로 여성 캐릭터에 있다. 하나같이 톡톡 튀고 남성보다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성격을 가진 캐릭터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천상 여자'란 말이 어울리기도 하듯이. 그 단면은 어쩔 수 없이 남성에게 귀속되고야 마는 특성들을 지니고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같은 경우가 대표적 예다. 그녀가 차태현에게 그렇게 못되기 구는 건 헤어진 전 애인을 잊지 못한것에 대한 보상심리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톡톡 튀는 신세대 여성을 그리고 있지만, 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 자체가 남성에게 있었고, 결국 이들도 남성에게 귀속되기를 바라는 듯한 마무리고 끝내고야 마는 것이다. 결국 그런 코드들이 한국사회랑 잘 맞아 떨어져서 크게 히트할 수 있었던거다. 하지만 <싱글즈>는 달랐다. 여성이 결혼을 포기하고 주체적으로 미혼모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길 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가 결혼했다>는 어떨까.
일단 <아내가 결혼했다>의 대사빨은 훌륭하다. 적당한 음담패설과 적당한 유머. 때로는 박장대소 할 수 있고 때로는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코드라고 생각하면서 피식거리고 속으로 웃을 수 있는 유머들도 많이 있다. 슬랩스틱의 요소도 중간중간 첨가되어 있다. 술취해서 담장을 건너다 넘어지는 장면이나, 재경의 집에 몰래 들어가 어지럽혀놓고 나갔다 다시 들어와 책을 꽂는, 그런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다면, 캐릭터의 설정은 어떨까. <아내가 결혼했다>의 가장 기본적 설정은 '아내'가 '결혼'했다는 거다. 왜 아내일까. 왜 여성일까. 이건 앞서 말한 로맨틱코미디의 특성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물음이다. 일부다처제는 예전에도 많이 나와서 이미 흔해빠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아침드라마를 주름잡는 소재가 남자가 바람피워서 딴살림차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모두가 다 이유가 된다. 남성이 다른 여자랑 딴살림 차리는 건 이미 흔해 빠진 얘기다. 만약 <남편이 결혼했다>라고 한다면 다가오는 느낌이 식상하지 않는가.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정형화 되어있기 때문에, 드라마나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을 봐도 남편들은 딴살림을 차려도 마누라에게 들키면 싹싹 빌고 돌아가던지, 더욱 세게 이혼을 요구하던지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둘을 동시에 만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상황의 기본설정은 보통 남성의 바람끼는 괜찮고 아내의 바람끼는 천벌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며,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것은 헌신적이고 바보같아서 맨날 당하기만 하는 마누라와 표독스럽게 사랑을 차지하려고 드는, 상대적으로 훨씬 젊고 세련된 다른 남편의 애인이다. 고 최진실 님이 나오신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가. 진짜 진부하지 않은가. 이렇게 부부사이의 고질적 문제점이 아직도 인기를 끌 수 있는 좋은 드라마 소재라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만약 그 반대는? 아내가 바람핀 것이 딱 걸린다면?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를 떠올려보자. 끔찍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의도적인 과감한 성적 노출과 잔인함으로 남성의 보수성과 그로 인한 피해의식을 꼬집은 영화다. 이 모든것들을 무시하는 영화는 머릿속에 떠오르는건 딱 한 편밖에 없다. 바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이다. 버라이어티하게 바람피우는 가족들 이야기. 이 영화 역시 사회적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아내(혹은 남편) '동거'했다>는 뉘앙스는 어떨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결혼과 동거의 차이이다.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 한시적이고 영원히 같이 사는 것. 이런 차이는 이제 쉽게 무시되는 세상이다. 결혼을 해도 혼인신고 안하는 부부들도 많이 있고, 이혼하는 부부들도 정말 맣이 있다. 다만, 아이에 대한 문제는 고민을 해 봐야 한다. 결혼을 통해서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동거를 하면서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것은 뭔가 말이 안되거나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동거를 하는 커플들은 '아이'를 만들 생각을 꿈에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동거는 언제든지 헤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결혼은 최악의 상황이 이혼하는 상황이다. 반면 동거를 해서 행복하다면 결혼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즉, 결혼은 동거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가족을 꾸릴 수 있고, 자연스럽게 동거보다 더욱 심한 책임감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훈은 은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동거를 해라, 동거를!"
어쨌든, 로맨틱 코미디의 생명은 톡톡 튀는 신선한 설정에 있다. 그러니까, '아내'가 결혼했다와 '남편'이 결혼했다는 본질적으로는 같은 문제이지만,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아내'가 결혼했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으로, 그리고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거다. 남/녀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설정 자체가 한국사회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 그리고 왜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중요하다.
덕훈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프리랜서 프로그래머 인아를 만난다. 그녀와 축구에 대한 공감대를 가지고, 집에 들어가 섹스를 한다. 그 다음날 연인이 된다. 그리고 한번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겁나게 구애를 해서 결혼에 성공한다. 그런데 인아가 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단다. 그사람과도 결혼해달란다. 자, 이러한 상황을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가? 이해를 하려면, 사랑이 뭔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사랑이 뭔지 정의를 내려줄 수 있는 철학자가 과연 있을까? 역사상 가장 많은 지식인들이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이 바로 '사랑'이란 단어이다. 사랑 때문에 괴로워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 때문에 행복에 겨워 눈물나는 사람들도 있다. 실체도 없고 한 문장으로 끝나는 정의도 없지만, 누구나 인정하고 알고 있고 또 모르는 것이 사랑이다. 결국 내가 사랑을 모른다고 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도 모르는거 아니겠는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인아의 '자기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좀더 자세히 생각해보자. 스텐버그라는 철학자는 '사랑의 3요소'를 친밀감, 정열, 그리고 구속을 들었다. 구속. 이거야 말로 사랑의 아킬레스건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구속을 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다는 거다. 내여자, 내 남자니까. <아내가 결혼했다>가 기존의 상식을 깨는 지점은 바로 사랑의 3요소중 '구속'을 깨버리는 것에 있다. 인아는 덕훈에게 "덕훈씨는 나 사랑하는 거 알지만, 난 덕훈씨 꺼 아냐"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히 구속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녀의 사랑의 방식은 친밀감과 정열밖에 없는거다. 사랑하기 때문에 구속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나오면 상대방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몇가지 없다. 분노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방법. 이렇게 끝나면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 법칙인 해피엔딩은 포기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결코 해피엔딩을 포기하지 않는다. 해피엔딩을 위해서 여러가지 요소들을 첨가해 넣는다. 우선 덕훈, 인아, 재경을 한꺼번에 묶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바로 축구다. 축구를 통해서 덕훈과 인아는 맺어지게 되고, 아마도 재경과 인아도 축구 때문에 맺어진 듯 한 느낌이다. 덕훈과 재경도 1:1 축구를 하면서 교감하지 않던가. 축구를 통한 효과는 간단하다.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다른 관심사를 끌어옴으로써 풀기 어려울 정도로 얽혀있는 이들의 문제를 가리는 거다. 결국 이들의 엔딩도 '엘 클라시코 더비'로 마무리되지 않는가. 스페인 현지에서 직접 촬영한 엘 클라시코 더비를 보고 있는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심지어 레알 팬이던 덕훈까지도 그렇다. 결국 덕훈은 인아를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 아니겠는가. 인아가 2002년 월드컵에서 홍명보가 스페인에게 페널티킥을 성공하고 4강 진출을 확정했을 대 시청앞에서 덕훈의 청혼을 받아들이듯이, 이들은 엘 클라시코 더비의 한 가운데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적인 응원을 펼칠 때 이미 세 사람이 '우리'가 되어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다 가릴 수는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축구 클럽에 대한 사랑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가지 요소들이 더 준비되어 있다. 은연중에 덕훈에게 인아의 사랑 점수를 더욱 많이 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친자감별이다. 덕훈의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덕훈에게 인아와 재경의 돌잔치때 이를 공개하게 함으로써, 관객들은 심리적으로나마 덕훈과 인아의 관계를 더욱 응원하게 하는 것이다. 당연하다. 주인공들이니까. 심지어 재경은 덕훈에게 인아가 자기에게는 피임을 요구했다고까지 한다. 아이의 이름까지 재경이 좋아하는 '미라(미셀 플라티니)를 제치고 덕훈이 좋아하는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을 따서 "지원(지단 넘버 원)"일 정도이니. 심리적인 승부는 덕훈이 이긴거 아닌가.
하지만 친자감별 공개의 문제는 더욱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있다. 덕훈의 사회적 지위에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회사 사람들이 인아와 덕훈이 이혼한 줄 알고 있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잡지책 기사에 인아와 재경의 다정한 부부동반의 모습이 나왔을 때. 덕훈은 자신만의 무기를 준비한다. 이는 한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가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마지막인 '벼랑끝 전술'이다. 이 공개 한방으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난 것 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그래야 한다. 인아는 순식간에 미친년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고, 덕훈은 인아에게 어쩔 수 없는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재경은 불쌍하기만 하다. 실제로 분노하고, 싸우고, 모욕을 준 뒤, 헤어지게 되었다.
이 상황을 다시 해결해 주는 것은, 다름아닌 시간과 축구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외로움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덕훈과 재경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친해진다. 특히 이 둘의 관계의 급진전은 맨날 술마시면서 실없는 소리만 지껄이는 덕훈의 친구들과 대비되어 더욱 크게 나타난다. 축구는 이들 사이 급진전의 촉매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덕훈 중심의 1인칭 시점, 즉 나레이션의 화자가 덕훈인 것이다. 영화를 볼 때 나레이션의 화자에 대한 감정이입 대문에,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덕훈을 응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재경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이들 모두가 행복해 지는 것이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이긴 하지만-연적, 결국 악역인 셈이다. 하지만 악역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적과 친구가 되는 순간, 즉 덕훈이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에 관객들도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인아도 이들을, 그리고 관객들을 바르셀로나로 부를 수 있게 된다. 모두가 행복해 지는 것이다. 물론 관객들이 인아의 초대에 응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미지수다. 개인적 선택에 따라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많이 있을 것이다. 이건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각자의 가치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보수적이라고 배격할 수도 없는 문제다.
이 1인칭 시점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바로 인아를 철저하게 '대상화' 한다는 거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인아는 덕훈이 알고 있는 인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아의 머릿속까지 알 수는 없다는 거다. 결국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철저하게 대상화 함으로써 배우나 관객이나 '덕훈이 보는 만큼만' 그녀를 이해하면 된다. 영화 속에서 덕훈, 재경의 가족은 엄마 아버지 형제까지 등장하는데 비해 인아의 가족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아는 고아일까? 외롭게 자라서 그렇게 사랑이 목마른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극중 인아가 자신의 부모님을 설득하는건 포기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인아가 욕망하는 사랑을 이루려면 남편의 부모님들 챙기기에도 정신없다. 인아가 현모양처를 자처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어지간한 여우실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다.
여기서 만약 그녀의 부모님까지 챙기려고 하면 인아는 정말 괴로워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영화 역시 그 이상 표현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심각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간의 갈등이 끼는 순간, 로맨틱 코미디의 상큼발랄함은 순식간에 심각함으로 변하고 만다. 그래서 영화는 고의적으로 덕훈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인아의 가족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도 가볍게 패스해버렸다. 즉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묘사하기도 힘든 인아에 대한 개인적인 부분은 과감히 생략해 버린 것이다. 물론,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1인칭에서 벗어난 대표적인 장면이 있다. 바로 덕훈이 자고 있을 대 인아가 덕훈의 '성적 로망'을 실현시켜 주는 장면이다. 수위조절 문제 때문에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이것 때문에 덕훈이 인아를 이해하게 되는 첫번째 발걸음이 되는 역할을 한다. 결국 인아의 개인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덕훈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1인칭에서 벗어났다 해도 우리가 모르는 인아의 모습을 보여준 건 아니다.
결국 <아내가 결혼했다>는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에 충실하게, 철저하게 재미있게 만드려고 노력한 영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인아를 이해하달라고 말하는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인아에 대한 개인의 세부적 묘사를 대부분 삭제했다. 복잡해지면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대사빨, 상황설정, 적절한 슬랩스틱, 그리고 해피엔딩.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적 요소가 잘 갖춰진 상태, 그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어떤 식의 사회적 파문이 일어나고 하는 건 단순한 위기상황에서만 묘사될 뿐이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재미를 위한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설정 역시 한없이 심각하게 몰고가려면 정말 심각해져서 살인까지 날 수 있는 지경까지 이를 수 있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는 적당한 지점에서 갈등을 끝내고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를 추구한다. 즉, 아내가 결혼했다고 심각하게 현 세태를 풍자했다느니 뭐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느니, 여성의 선택이 어쩌구 하면서 호들갑 떨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인아를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은 다시 사랑에 대한 고민이다. 이건 계속 반복하지만, 설득의 문제가 아닌 영화를 본 개인의 선택의 문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