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손금 / 1부
나는 손금을 좋아하는 편이라 누구를 만나서 좀 친해진다 싶으면 꼭 그 사람의 손금을 본다. 잘 맞고 안맞고는 둘째치고 그래야 속이 좀 편안해진다. 이를테면 여드름만 보면 모조리 짜주고픈 심리 같은 거랄까.
그래서인지 내 손금도 곧잘 들여다본다. 손금이야 어제고 오늘이고 내일이고 웬간해선 거의 변화가 없는 종족들임에도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사람 손금이 별로이면 그 사람도 왠지 더 가까이 하기 좀 그런 요상한 분위기가 내 속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다. 그냥 재미로 넘기기도 하지만 첨부터 좀 거시기 했던 사람들은 손금을 통해 역시 별볼일없군 하고 속으로 트집을 잡는 것이다.
인간이란 건 묘하게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어서 일단 작정하고 ‘이 사람 정말 형편없군’하고 분위기를 몰고 가면 실제로도 그런 사람처럼 여겨져버리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사람의 진면모를 보지 못하고 자꾸만 여기 저기 그 사람의 다른 별 볼일 없는 관심사에 오히려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불신이라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인간 본연의 자기 보호 본능이랄까, 요컨대 사람의 속마음은 잘 알 수 없으니까 어떤 타입의 인간일지 그 사람의 요모조모를 따져보고 재빠르게 결론을 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혈액형은 뭔지? 차는 국산인지, 최소 대졸인지, 직장은 어딘지,(거기에 연봉까지 알면 더 좋고), 집안이 일년에 몇 번씩 해외여행 다녀오는지, 몸매가 좋은지, 치열이 고른지, 대머리인지, 가슴이 풍만한지까지 두루두루 다양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거기에 외적인 것만 으론 알 수 없다고 느끼면 이런 저런 점이나 사주, 팔자, 궁합, 관상, 별자리, 손금, 발금까지 보게 되는 거다. 물론 이런 걸 전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고 특히 내가 특별한 관심을 가질만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한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어떨까? 하나님은 우리를 태어나게 하시고 한 번도 후회하지 않으신다. 에구 이 못난 놈, 이게 어떻게 내 뱃속에서 나왔을까? 하며 후회하거나 구박하지도 않으신다.
만약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만난다면 어떨까? 우리 스타일대로 라면 어쩜 반갑게 손 내미는 예수님께, ‘저기요 손 좀 잠깐...’하고 손금부터 볼 지도 모를 일이다. 손금이 만약 별로라면 ‘지지리 궁상 팔자’손금이라면 어떨까? 이 사람 예수님 맞아? 하고 의심할 지도 모르겠다. 혹시 차는 뭐 타고 다니세요? 천사들 월급은 제때 주시나요? 천국도 요즘 풀이라던데 다른 부동산 계획으 있으신지...?
우리들이 이렇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우리가 미울 때나 슬플 때나 예쁘거나 못생겼거나, 잘났거나 , 못났거나 그런 건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
자, 당신을 꾸짖으려고 이런 말들을 끄집어 내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손금에 유난떠는 나부터 쪽팔릴 일이다. 자 이제 우리 이거 하나만 알고 가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중요한 건 주님의 인성도 닮았다. 그러니 높은 곳의 오직 한 분만 사람의 진심을 볼 줄 아는 게 아니라 우리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는 약한 인간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진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