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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홍당무

유주희 |2008.10.31 22:57
조회 108 |추천 1

 

거울도 안 보는 여자

 

는 왕따 양미숙(공효진)의 이야기다. 영화는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는 버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해-양미숙' 이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된다. 양미숙은 평소 얼굴이 늘 붉은 데다 감정의 기복에 따라 더욱 시뻘게져 버리는 안면 홍조증을 앓고 있다. 학창시절 늘 따돌림에 시달렸다. 거의 유일하게 챙겨주는 건 담임교사 서종철(이종혁)뿐이다. 그를 향한 마음 탓이었을까. 10년 후, 양미숙은 서종철과 같은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재직 중이다. 서종철을 향한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지,지,지난해 학교 회식 때 서종철이 옆에 앉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좁디좁은 티코 안에서 옆 좌석에 앉았던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내 옆에 앉다니. 서 선생님은 날 좋아하는게 틀림없어. 좋아하면서 말 못해 속 태우고 있는 거야. 아무렴.

 

 

이경미 감독의 는 나홍진 감독의 와 함께 올 한 해 가장 놀라운 데뷔작으로 기억될 만한 영화다. 내내 재치 있되 캐릭터 개개인에 고루 사려 깊은, 보기 드문 순발력으로 충만하다. 영화가 끝나고 홍당무 양미숙에 연민이든 사랑이든 따뜻한 감정을 품지 않고 극장을 나서기란 좀체 불가능하다. 미래의 양미숙이 좀 더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이길 손 모아 고대하게 될 만큼. 그렇게 끝내 마음이 가고야 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양미숙의 뜨거움이 그렇게 좋았다. 의 연출은 차갑고 냉정하다. 이경미 감독은 누군가의 감정을 온전히 화면 안에 꽉 채워 보여줄 생각이 없다. 울컥할 만하면 호흡을 자르고 숏을 확장한다. 연극적인 요소를 가져와 극과 관객을 분리시킨다. 방조하게 만든다. 내려다보게 만든다. 반면 그 안의 인물들은 대단히 뜨거운 체온을 가지고 있다. 뜨겁다는 것은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노력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미숙은 대단히 뜨겁다. 멋지고 그럴싸한 뜨거움이 아니다. 찌질하고 못생긴 뜨거움이다. 그럼에도 양미숙은 그걸 감출 생각이, 아니 그럴 능력이 없다. 안면 홍조증이란 양미숙의 질병은 상징에 가깝다. 속내를 감추거나 가장할 수 없으니, 감정이고 욕망이고 모두 솔직하게 드러내버린다. 단지 드러내는 것에서 멈추어 서는 것도 아니다. 양미숙의 희소성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서 기인한다.

 

 

 

이 노력한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모두가 쿨하고 싶어한다. 속내를 그럴싸하게 감춰 태연하고 냉정하게 행동할수록 어른이라 평가받는 세상이다. 꽁꽁 싸매 잘 감추고 짙은 화장술로 덮어둘수록 그(녀)의 시장가치는 상한가를 친다.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평가 절하된다. 누군가의 절박함은 한줌의 실소로 무마되기 일쑤다. 이 안에서 "아이고 난 내가 창피해"라고 솔직하게 칭얼거렸을 때, 사랑받고 싶어서 노골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 광경은 하나의 파격이 된다. 양미숙이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그런 환기와 파격을 끊임없이 안겨준다. 우리가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이 환기는 웃음으로 호감으로 이어진다.

 

 

물론 민폐일 수 있다. 솔직함을 가장한 객관적 폭력 따위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널려 있다. 하지만 양미숙의 뜨거움은 다르다. 그녀의 체온은 타인의 도덕적 당위를 자극하거나 노력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제 스스로 뜨거울 뿐이다. 영화 속, 언제나 수족처럼 핸드폰을 품고 있던 양미숙은 끝에 이르러 더이상 울리지 않는 소통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지를 접는 건 아니다. 대신 다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또 그래 또 그래. 양미숙처럼 살자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귀하게 여길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진짜 외로운 사람은, 거울을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글_ 허지웅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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