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베토벤 바이러스가 나날이 비현실성을 더해감에 따라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일단 강건우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작가들은 강건우의 천재성을 납득시키는 데에 실패했다.
기껏해야 건방진 청음 천재이며 자기 악기 뿐만 아니라 모든 악기의 프레이즈를 외워버리는 외계인 같은 암보능력을 가진 가상의 존재일 뿐.
작가들은 그가 감정을 탁월하게 처리하는 음악적 능력을 지녔다는 내용을 시청자에게 납득시킨 적이 없다. (가브리엘즈 오보에서의 그 어리버리하던 강건우를 생각해보라)
강마에와 강건우 사이의 갈등은 연애적인 것만 노출되었을 뿐, 음악적으로는 다뤄진 적이 없다.
게다가 웬 시덥잖은 비평가는 고작 주제 도입부만 듣고 -9;강마에 보다 낫네-9;를 외치질 않나, 비평가 나부랭이에 휘둘려 충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9;세계적 지휘자-9; 강마에나...
그리고 누가 뭐래도, 내 생각에 포레의 파반느는 넌센스였다. (원곡이 합창곡이었는지는 확인하기 귀찮다치고... 그건 파반느라기 보다는 포레의 파반느 오피50 주제에 의한 XXX, 아니 그렇게 부르기에는 또 너무 건드린 게 없는...ㅁㄷ재렁러ㅣㅇ)
두루미의 대사, -9;음악이야 듣기 좋으면 좋은 거 아니겠어.-9;
클래식을 주제, 아니 적어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만든답시고 결국 한다는 말이 이거라니.
제작진의 음악에 대한 사유가 얼마나 부재한지, 최소한의 자신감마저 상실한 채 뒤로 숨어버리는 꼴이란.
클래식에 대한 일단의 건전한 화두를 제시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베바에 대한 실망감이 쏠쏠하다.
오히려 선입견만 심어주기 딱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클래식은 객관적인 음악이 아니다.
클래식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강건우가 신처럼 떠받드는 카를로스 클라이버 역시 누구보다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지휘자일 뿐이다.
아무리 권위있다는 비평가 몇명이 나불대도 자기가 하는 것만 진정한 음악이라고 독설을 퍼붓는 거장과 그 거장에게 매료된 팬층이 존재하는 것이 클래식이다.
누가 들어도 완벽한 클래식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반면 클래식에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외치는 이들로부터 -9;매사에 못 진지해서 안달인 꽉막힌 부류-9;라고 공격받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울, 음악에 대한 목숨을 건 어떤 집착 내지는 집요한 도전, 그리고 고집이 들어있다.
클래식은 인생을 걸지 않으면 못한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완전히 대조되는 분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분야가 클래식이다.
테크닉과 인간의 혼 양자에서 한치의 우연, 오차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한 절정의 순간을 재현하는 것, 이것이 클래식의 철학이다.
대중음악은 절대로 클래식과 같아질 수 없다.
이것은 종류가 다른, 따라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대중음악은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누구든 MR을 따서 노래만 다시 부를 수 있다.
대중음악은 음원을 통채로 소유하고 음악 감상의 절대적인 상태를 수시로, 원하는 때마다 유비쿼터스하게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대중음악의 미덕이다.
누구든 쉽게 평균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것.
가사는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닿게 들려지며 원한다면 거의 비슷한 발성으로 스스로 부를 수도 있다.
반면 클래식은 명반의 음원을 소유한다고 해도, 직접 연주를 감상하는 감동에는 미칠 수 없다.
연주자의 포스, 공간에 울려퍼지는 미세한 울림, 감상자의 평소답지 않은 집중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타 요소들, 숨죽여서 오래 기다린 끝에 불타오르는 절정! 때로는 그간의 지루함에 대한 보상심리까지...-_-
물론 우리가 종종 대중음악의 일부로 치부하기도 하는 많은 장르에도 이에 못지 않은 예술적 투지가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어떤 경우이든 대중성을 포기하거나 무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의 클래식이라고도 부르는 재즈.
재즈는 사실 서정성에 있어서는 클래식과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다.
영혼을 울리는 소리, 그리고 현대 음악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풍부한 화성... (전공자가 아닌 관계로 이 정도로 얼버무리는 것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재즈 역시 클래식과는 다른 것일 뿐 무엇이 무엇을 대체하고 그럴 종류의 성질이 못된다.
재즈는 전체적인 완벽한 구조를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개연성의 미학이다.
순간순간의 최대한의 울림, 하지만 재즈에는 시작과 끝이 없으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렇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어쩌면 재즈는 시작과 발전, 끝장을 강조하는 클래식에 비해 비서구적인 대립항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건 뭐랄까, 음악적 환원주의?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그리고 완전히 평등한 잣대?
한심!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