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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PD "허수아비가 된 것 같다"

이강율 |2008.11.03 15:40
조회 206 |추천 7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 PD는 라디오 주조정실 앞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 방송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KBS 라디오PD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 주례연설 방송을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KBS는 국가기간방송이니까 주례연설을 내보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PD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논리정연했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국가기간방송으로서 국가비상시에 대통령의 담화를 방송할 수 있는 건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되묻더군요. 지금이 국가비상시냐고….

 

답답해하더군요. 주례연설 방송이 결정되기까지의 절차, 그리고 방송제작 방식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한숨을 내쉬더군요(이 부분은 그간 많은 언론이 보도했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내용만 언급하겠습니다. 자체제작권과 자체편집권을 확보했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실상은 차이가 있습니다.

 

제작권은 방송차를 청와대에 보내 녹음을 따오는 것에 국한됩니다. 편집권의 경우 그것을 확보했는지, 편집권을 실제로 행사했는지는 PD들조차 모른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설명을 들은 바가 없다고 하는군요).

 

주례연설 방송이 결정되기까지의 절차가 불투명하고, 주례연설 방송 형태가 일방적이라며 한숨을 토해내는 그 PD에게 물었습니다.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었습니다.

 

자존심이 훼손된 게 아프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동료도 엄연히 라디오 PD인데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주례연설 방송이 정규편성됐는지 알지 못하는 처지가 갑갑하다고 했습니다. 바보, 허수아비가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KBS 라디오 PD들은 잘 알지 못하는데 청와대가 먼저 주례연설을 공표하는 걸 보면서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사진=이명박 대통령이 10월 12일 라디오 연설을 녹음하고 있다.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시청률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방송쟁이 아니냐고, 주례연설이 뉴스가치가 KBS의 시청률 경쟁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웃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PD가 더러 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주례연설이 뉴스를 생산하지 않겠느냐고, 그건 굴러들어온 떡이니까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PD가 있기는 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단호하게 자르더군요. 설령 그런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더 큰 것을 잃게 된다고 했습니다. ‘공영방송 KBS’의 위상을 잃게 된다고 했습니다. ‘관영방송’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 20∼30년 동안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아직 완전히 탈색하지 못했는데 또 다시 일방적인 대통령 주례연설을 내보내면 어떻게 되겠냐고 했습니다. 인터뷰어가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는 쌍방향 형식도 아닌데 어느 국민이 KBS를 곱게 보겠냐고 했습니다. 결국 후배들에게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대화는 거기서 끊겼습니다. 더 물어볼 것도, 더 대답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 PD가 그러더군요. “끝까지 싸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대통령 주례연설 방송이 끝난 직후 그 PD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KBS 정문 앞에 있다고 하는군요. 주조정실 앞 피켓시위를 끝내고 정문 앞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  PD는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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