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떠날 때처럼 조용히 우리 곁에 돌아왔다. 김종국(31). "벌써 대기실 독방을 쓸 만큼 왕고참이 됐다"며 겸연쩍어 한 그는 "현역 장병들에겐 욕먹을 소리지만 소집해제를 앞두고 두 달 동안은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아 너무 초조했다"고 털어놓았다.
세 시간 동안 백세주 한 잔을 놓고 제사를 지낸 그는 간신히 반 잔을 비운 뒤 "취할 것 같다"며 엄살을 떨었다. 그는 "한 잔이 치사량"이라고 했다.

▶"설마 군용 건빵에는 멜라민 안 들었겠죠?"
김종국은 기자가 채워준 잔을 받은 뒤 잠자코 첫 질문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시간 있으면 제 잔도 좀 채워달라"고 하자 그제서야 "아, 죄송해요"라며 서투른 동작으로 술병을 들었다. 건배하는 모습도 영 어색했다. 그는 심지어 "이 술은 왠지 한약 냄새가 난다"며 '중딩' 수준의 질문을 하기도 했다. "술 마시는 게 연례행사"라는 그는 분명 주류회사에서 반기지 않을 가수였다.
-생일은 어떻게 보냅니까.
"생일이 4월인데 소속사 식구들과 맛있는 밥집에 가죠.(웃음) 다른 연예인들은 가라오케에서 한 턱 쏜다는데 저는 저 때문에 사람들이 시간 내서 다리품을 파는 게 체질적으로 불편해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생일은 조용하고 경건하게 보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케이크 촛불은 끄겠죠?
"초등학교 입학한 뒤부터 그런 기억이 한번도 없어요. 아버지가 할머니 살아계실 때 당신 생일을 한번도 챙기지 않으셨거든요. 아버지도 건너 뛰는 생일을 자식들이 투정할 수 없었죠. 할머니 돌아가신 뒤에도 조촐하게 미역국 먹는 게 전부였어요."
-아버지가 군인이셨죠?
"네. 포병 대위로 예편하셨어요. 월남전에도 다녀온 중대장님이셨죠.(웃음) 너무 엄하고 절약 정신이 강해서 지금도 함부로 전등을 못 켜요. 어릴 때는 큰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저희 두 형제가 머리 감고 그 물에 발까지 씻어야 했어요. 아버지 몰래 샤워기 쓰다가 걸리면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어요.(웃음)"
-건빵도 많이 먹었겠군요.
"그럼요. 새우깡 보다 더 친숙한 간식이었죠.(웃음) 그냥 먹고, 튀겨 먹고…. 아버지가 군대에서 버리는 물건을 잔뜩 갖고 오셔서 어릴 때부터 저절로 절약 정신이 몸에 뱄어요.(그의 휴대폰에는 긁힘 방지용 플라스틱 보호대가 부착돼 있었다) 저희집 연중 최고 경축일이 언젠 줄 아세요? 바로 10월1일 국군의 날이었어요."

-아버지 때문에 전학도 많이 다녔겠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경상도, 전라도로 이사 많이 다녔는데 그 뒤부터는 줄곧 경기도 안양에서 살아요. 매니저들이 고생이죠."
김종국은 중학교 때 씨름하다가 다친 허리 때문에 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군대 빼려고 꼼수부린다"는 말을 들을까봐 수술을 포기했다. 공익근무를 했지만 지금도 현역 입대 하지 않았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언제냐"는 질문에 "공익 가기 직전"이라며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빽을 써서라도 현역으로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론적인 얘기 아닐까요?
"그렇게 들릴 수도 있죠. 하지만 제 양심을 걸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아버지 소원이 제가 사관학교에 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점수가 안 도와주더라고요.(웃음) 그걸 상쇄하는 방법은 무조건 현역 입대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역시 제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요. 그동안 큰 불협화음 없이 활동했는데 군대 때문에 오점을 남긴 것 같아 팬들한테 죄송해요."
-터보 시절 소속사를 무단 이탈한 적도 있었죠.
"그때 믿고 따르던 멤버 형이 나가자고 해서 그냥 따라나간 거예요.(웃음) 숙소에 형사가 들이닥쳐 겁도 났고, 어린 마음에 며칠 춤 연습을 쉬고 싶었어요."
-공익 근무하면서 뭘 느꼈나요?
"다행히 주차 딱지 끊는 일은 안 했어요.(웃음) 대신 사회복지사 분들과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하는 재가복지 일을 도왔는데 정말 2년간 '사랑의 리퀘스트'를 찍는 기분이었어요. 우리나라가 제법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정말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어렵게 사는 분들을 눈으로 보고 겪으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어요. 도시락 배달이 끼니 제공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그분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측면도 있더라고요."
-지금도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희귀병을 앓는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저를 알아봐줘서 사진도 같이 찍고, 선물도 갖다줬어요. 거동이 불편하지만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한 아이였는데 성격이 너무 밝아서 마치 제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대민 지원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뭡니까.
"형편이 다들 어려우신데 그 가운데서도 차별이 존재하더라고요. 같은 기초수급생활자인데도 어떤 분은 정부 지원 대상이 되는 반면, 어떤 분은 한끗 차이로 대상에 포함이 안 돼요. 장애우 집에 식사를 갖다놓으면 그걸 또 훔쳐가는 분도 계시고요. 저는 앞으로 '힘들다. 죽겠다' 같은 말을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김종국은 자신이 근무한 지역 구청의 홍보대사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적어도 그들과 연결된 끈을 놓고 싶지 않다는 소박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입대 전 방송 3사 가수왕을 제패했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어요. 감격스럽지 않았나요?
"웬걸요. 너무 기쁘면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SBS에서 동방신기가 최우수상을 받길래 '혹시 내가 대상?' 했는데 정말이더라고요. KBS에 이어 MBC까지 대상을 받았죠. 사실 상을 받을 거면 터보 때 받았어야 했는데 데뷔 10년 만에 그런 큰 영광을 안으니까 얼떨떨하더라고요. 후배들이 헹가레 쳐줄 때는 정말 쑥스러웠어요."
-방송사에서 미리 귀띔을 해줍니까.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MBC에 가니까 저랑 제일 친한 차태현(95년 데뷔 동기)이 대상 시상자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오늘 좋은 일 있는 거 아니냐'고 얘기했는데 정말 대상에 호명됐죠. 그런데 이듬해부터 가수 시상식이 폐지돼 아쉬웠어요."
-인생을 통틀어 가장 후회되는 일은 뭡니까.
"군대죠. 저는 지금까지 법만 어기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적어도 연예인이라면 법은 기본이고 대중들의 기대치 또한 어겨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는 아무래도 사려깊지 못했던 것 같아요."
-공백기 동안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데뷔했는데 직접 만나봤나요?
"네. 며칠 전 방송국에서 원더걸스 후배들이 제 방에 인사를 왔어요. 너무 애기들이라 귀여워 죽는 줄 알았죠.(웃음) 저도 숫기가 없는 편이라 그냥 인사만 하고 말았는데 나이차 때문에 별로 공통분모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웃음)"
>>2편에서 계속
글=김범석 기자 [kbs@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 [mg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