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그랬다. '일단 국가고시 끝나면...' 나는 핏줄 세우며 실컷 욕을 했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K는 한번의 저항없이 찬찬히 듣고 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차 싶었다. 원래라면 절대 그럴 K가 아닌데, 정말 내가 맞는 말만 했구나 싶어서. 이럴 때 친구라면 대부분 어깨를 내어주고 등을 토닥여 주는게 아닌가.
중학교, 고등학교때 늘 곁에 남자가 있던 K는 작고 귀엽고 성질 제법있는 괜찮은 여자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짝사랑을 했던 나는 그런 K가 신기하고 부럽기도 했지만 K는 남자가 너무 자주 바뀌잖아라며 나를 위로했었다. 하지만 벌써 몇년을 한사람 이름을 언급한다. 그럴만한 사람인가 싶어서 정말 대단히도 괜찮은 놈인가 싶었지만, 나는 K의 친구다. K가 훨씬 아깝다. 아마 K가 변호사, 의사를 데리고 온다해도 내 눈에는 안차는 나는 편먹기 좋아하는 사람.
싸웠다며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먼저 꺼내도 막상 내가 그 놈 미친놈이네 욕을 하면 성질을 내는 K였다. 그 사람이 참 많이도 소중하구나 싶어서 인정해주기로했다. 그런 K가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나는 또 다시 잔뜩 욕을 해댔지만 평소처럼 K는 성질 한번 내지 않았다. 진짜였나보다. 사실이 되버릴까 K는 두려웠나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려고,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도 이런 상태라면 좋은 사람이긴 한데 내 사람은 아니네가 될텐데 그냥 헤어져. 라고 말했다. 나도 K와 비슷한 상환인데도 남 얘기라고 너무 쉽게 말해버렸다. 더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일까. 능력있는 사람, 키 크고 잘생긴 사람, 학벌 좋은 사람, 성격 좋고 착한 사람. K에게 좋은 사람은 K의 20살, 21살, 22살을 함께 보낸 한 사람이 아닐까. 세월을 함께 보낸다는게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한 힘을 가진다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를 흔들게 하는 시간을 겪고 있다면 K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도 K를 그렇게 만들어 주고 싶다.
너는 충분히 몹시도 좋은 사람이야. 라고. 마땅히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 이라고. 당연히 그러고도 남은 사람. 인데 왜 그러고 있냐고..
떨어져있는 시간을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 분명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만나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잘 버텨줬으면 좋겠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처럼 K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녀석이지만. 결코 똑똑한 녀석은 아닌 듯 싶다. 늘 내게 '넌 이성적이고, 끝 맺음이 확실해서 부러워. 하고 싶은게 분명하고 뚜렷하고 목표가 있는게 부러워'라고 말하는 K. 나는 지극히 감성적이고 충동적이며 내성적이다. 시작은 일단 해도 끝 맺음이 늘 지저분한 용기 없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게 있어도 분명하게 정하지 못하는 확신없는 사람이고, 목표가 자주 바뀌어 스스로도 햇갈리는 사람이다. 이런 나를 너무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K가 있어서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인지도. 그래서 우리가 여전히도 서로에게 119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