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명화 10위 [침묵] - 사다코의 선조
침묵 (1801)
헨리 퓨즐리 Henri Fuseli (1741-1825) 작
사실 이 그림이 뿜어내는 공포의 힘으로는 더 높은 순위에 올려도 되겠지만, 가장 최근에 본 그림이고 또 퓨즐리의 더 유명한 그림이 상위에 있어서 그냥 10위에 올렸다. 한밤중에 이 그림을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그림 속 인물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머리카락 사이로 핏발 선 눈을 보여줄지도 모른다...아니면 아예 얼굴이 없을지도..ㅎ [링] 시리즈의 사다코가 당장 떠오르고, 또 그 옛날 폭포 그림 괴담이 생각나기도 하는 작품이다.
사다코~~
하지만 저 퓨즐리의 그림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단지 그림 속 인물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몰라서일뿐만 아니라 그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침묵” 속에 고개를 떨어뜨린 인물에게서 끝없는 나락 같은 절망과 침체의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을 꼭 소름끼치게 하진 않더라도 우울하게 만드는 그림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사실 절망보다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공포명화 9위 [죽음의 승리] - 인간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쟁
죽음의 승리 (1562)
피에터 브뤼겔 Pieter Bruegel (1525-1569) 작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인 브뢰겔의 [죽음의 승리]는 유럽 미술의 전통적인 주제로서 인간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메세지를 담은 "죽음의 춤"이 약간 변형된 것이다. (죽음의 춤에 대해서는 예전 포스트 [민둥산의 하룻밤, 죽음의 춤 - 판타지아 이야기 1]을 참고하시길) 이 그림에서 인간의 삶 자체가 죽음과의 전투이며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전투라는 음울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해서 왕관과 갑옷을 걸친 왕(그림 왼쪽 아래)도 평범한 농부들(그림 가운데)도 그 누구도 해골 모습을 한 죽음의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의 승리 오른쪽 아래 모서리 확대
또 이 그림은 죽음이 언제 어디에서 덮칠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특히 그림 오른쪽 구석에 있는 젊은 남녀의 모습에서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두 사람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죽음과의 처절한 투쟁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의 기쁨에 충만해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그들 뒤에도 해골 모습의 죽음은 이미 와있는 것이다. 죽음은 히죽 웃으며 그들을 흉내 내어 악기를 연주하면서 그들의 달콤한 가락을 음산하게 비틀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공포명화 8위 [죽은 어머니] - 아가의 붉은 손
죽은 어머니 Dead Mother (1910)
에곤 실레 Egon Schiele 작
내면의 고통이 신체적 왜곡으로 나타나는 그림을 많이 그린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실레는 [죽은 어머니]라는 제목의 일련의 그림들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당시 그의 모친은 생존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자들은 이 그림들이 실레의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실레는 자신의 모친이 자신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며 그다지 사랑하지도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실레가 어렸을 때, 그 손윗누이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실레의 모친은 그 슬픔 때문에 실레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레는 냉담한 어머니가 자신에게는 죽은 존재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저 죽은 어머니가 안고 있는 아이는 실레에게서 엄마를 빼앗아 가버린, 실레에게 산 모친을 죽은 어머니나 마찬가지로 만들어버린, 죽은 손윗누이인 것일까...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증오로 핏빛으로 얼룩진 손을 구부리고 있는 실레 자신인 것일까? 무시무시하면서도 서글프기도 한 그런 그림이 아닌가 싶다.
공포명화 7위 [웃음짓는 거미] - 그로테스크의 정수
웃음짓는 거미 (1881)
오딜롱 르동 Odion Redon (1840-1916) 작
프랑스 상징주의 미술의 대가 르동에 대한 예전 포스트 [기괴한 흑백에서 신비한 채색으로] 에서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썼었다.
-- 르동의 "noirs(검은 그림들)"라고 불리는 무채색 작품들 중에서 대표작은 이 [웃음짓는 거미]일 것이다. 사실 난 이 그림을 보고 그냥 르동의 팬이 돼버렸다. 작은 악마 같은... 이 조그만 존재가 발산하는 압도적으로 기괴하고 사악한 분위기에는 그냥 헉 하는 탄성이 나올 뿐 뭐라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내가 이 그림처럼 무시무시한 그림도 없을 것이라고 했더니, 내 친구 중 하나는 이 그림이 은근히 웃기다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하긴 어떻게 보면 그렇기도 하다, 공포와 웃음을 동시에 일으키는 그림일 수도... "그로테스크 grotesque"의 정의가 기괴한 것, 부자연스러운 것, 흉측하고도 우스꽝스러운 것을 형용하는 말이라는데, 그렇다면 이 그림이야말로 "그로테스크의 정수"라고 할 만할 것이다.
공포명화 6위 [죽음] - 전염병의 얼굴
죽음 (1890?)
델비유 Jean Delville (1867-1953) 작
벨기에의 상징주의 화가 델비유의 이 끔찍한 그림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붉은 죽음의 가면]에서 가장무도회에 나타나 춤추던 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는 "붉은 죽음" 전염병의 화신이라고 추정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예전 포스트 [죽음의 얼굴]에...
공포명화 5위 [가면들 중의 엔소르] - 견딜 수 없는 소외감
가면들 중의 엔소르 (1899)
엔소르 James Ensor (1860-1949) 작
또 다른 벨기에의 상징주의 화가 엔소르의 이 그림은 여기 있는 무서운 그림들 중에서 내가 가장 어렸을 때 보게 된 그림이라,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은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본 건 기이하게도 펼쳐진 신문(그것도 경제신문 ^^)에서였는데, 한번 보고는 무서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가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나서 다시 가까이 다가가서 봤던... 그런 기괴한 매력의 그림이었던 것이다!
가면의 화가, 괴짜 화가로 이름 높은 엔소르는 충격적인 색채와 거친 붓놀림으로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의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해골 가면처럼 보이는 것은 죽음의 진짜 얼굴이며 다른 추악하고 우스꽝스러운 가면들도 어쩌면 살아있는 자들의 진짜 얼굴들인지 모른다.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엔소르는 그의 작품들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가족과 미술계 양쪽에서 구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그림에서 엔소르를 둘러싸고 있는 추악하고 어리석고 무관심한 가면들은 그의 친지들과 군중의 진정한 얼굴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엔소르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나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공포명화 4위 [세속적 쾌락의 정원 중 지옥 패널] - 새디스틱한 지옥의 풍경
세속적 쾌락의 정원 삼면제단화 중 오른쪽패널 (1503~1504) - 부분
보슈 Hieronymus Bosch (1450~1516) 작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가 보슈는 그 독창적인 기괴함으로 몇 세대 후의 화가 브뢰겔부터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현대의 록 뮤지션들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감을 주고 있는 화가다. 그의 지옥도는 사실 언뜻 보기에 무섭다기보다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하지만 인간들이 그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하나하나 개성 넘치는(?) 엽기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벌을 받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은근히 불쾌하면서 또 감탄도 나오는 그런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마치 새디스틱한 코믹 호러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 그림의 전체 모습과 자세한 감상은 예전 포스트 [볼수록 수수께끼인 보슈의 지옥] 에 있다.
공포명화 3위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 권력욕과 두려움이 낳은 잔인함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19~23)
고야 Francisco Goya 작
에스파냐의 낭만주의 대가 고야는 만년에 자신의 별장인 "귀머거리의 집 Quinta del Sordo’에 칩거하면서 그 벽면을 이른바 "검은 그림들 Pinturas negras"이라고 불리는 불길하고 무시무시한 그림들로 채웠다. 에스파냐의 정치적 혼란과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인간성에 대한 깊은 환멸이 생긴 데다가 개인적으로 병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공포와 광기와 허무주의로 가득찬 그림들을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 별장에 그 그림들이 남아있다면 아마 납량관광의 명소가 되었을 것 같은데 ^^ 아쉽게도(?) 그 벽화들은 떼어져서 프라도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검은 그림들은 하나같이 섬뜩하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바로 이 자식을 뜯어먹는 로마 신화의 사투르누스 Saturnus (Saturn), 그리스식으로는 크로노스 Kronos 라고 불리는 티탄 Titan 신족의 신일 것이다. 그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최고신의 자리에 올랐는데 아비로부터 "너도 네 자식에게 똑같이 당할 거다!"라는 저주를 들었던 것이다. 그 저주의 말이 강박관념으로 박힌 그는 결국 자기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삼켜버리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짓은 결국 그의 파멸을 재촉했다. 남편이 저런 식으로 자식 5명을 먹어치우는 것을 본 아내 레아는 더이상은 못 참겠다고 생각하고 6번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 대신 돌을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크로노스는 의심없이 그것을 삼켜버렸다. (사실 이 신화 내용을 보면 크로노스가 자식을 먹을 때 고야의 그림처럼 뜯어먹지 않고 꿀꺽 삼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뜯어먹었다면 금방 바위인 줄 알았을테니... ^^) 그리고 몰래 키워진 아기는 청년이 되어 마침내 이 막장 아비를 몰아내고 최고신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그가 바로 제우스 Zeus 인 것이다. 그는 또 부친이 삼켰던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다 토하게 만드는데 그들이 바로 헤라와 포세이돈 등등이었고 이렇게 올림포스 12신의 시대가 열리면서 티탄 신족은 몰락하게 된다.
그런데 고야의 그림에서 자식을 뜯어먹는 것이 비록 신화 내용과는 좀 맞지 않는다고 해도, 그냥 삼키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강렬하고 무시무시한 메세지를 던지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그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로, 마침내는 자식을 움켜쥐고 뜯어먹는 크로노스의 광기 어린 눈을 보라...
공포명화 2위 [가위눌림] - 억눌린 욕망의 섬뜩한 얼굴
가위눌림 (인큐부스) (1781~82)
퓨즐리 Henri Fuseli (1741~1825) 작
스위스 출신의 영국 화가 퓨즐리의 그림이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한 여인이 가위에 눌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도 비교적 어렸을 때 보게 됐는데, 처음 볼 때보다도 보고 나서 나중에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지고 섬뜩해지는 그런 그림이었다. 마치 영화 [엑소시스트]를 봤을 때의 기분처럼 말이다.
가위눌린다고 할 때의 "가위"는 자는 사람을 타고 누르는 귀신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라고 한다. 영어로 가위는 나이트메어 Nightmare 또는 인큐부스 Incubus 인데, 인큐부스는 원래 라틴어로 역시 자는 사람을 타고 누르는 악마의 이름이다. 그걸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위눌림을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의 짓으로 생각해온 것 같다.
이 그림은 모든 것이 으스스하고 기분나쁜데, 기괴한 미소를 띤 인큐부스도 그렇지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상체를 뒤로 젖힌 채 힘없이 몸부림치고 있는 여인이나 눈에 이상한 빛을 내며 머리를 커튼 안으로 들이밀고 있는 말은 으스스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에로틱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중세에 인큐부스는 잠자고 있는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음란한 악마로 생각되었다. 게다가 문학작품에서 말은 종종 절제되지 않는 정욕을 상징하지 않는가.
일설에는 퓨즐리가 연인에게 채인 뒤에 그녀에 대한 증오심과 남아있는 욕망을 이렇게 표현했다고도 한다. 그도 그럴 듯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림 속 젊은 여인은 자기 자신의 욕망과 그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능적인 욕망을 철저히 죄악시하는 사회에서, 평소에 철저히 억눌렸던 욕망이, 사람들이 비몽사몽한 상태에 있을 때, 즉 이성이 느슨해진 틈에, 뒤틀린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대망의 1위는...두둥~
공포명화 1위 [고양이] 시리즈 - 정신분열증 환자는 고양이에게서 무엇을 보았는가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 그림의 변천
영국의 화가 루이스 웨인 Louis Wain (1860-1939) 은 고양이 그림만 그리는 독특한 화가였다.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고양이가 차를 마신다든지 골프를 친다든지 하는 만화 같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신문과 잡지에 기고해서 인기를 얻은 화가였는데, 50대 후반에 이르러 정신분열증 증세가 나타나면서 고양이를 독특한 시선(?)으로 그린 그림들을 그려내게 된다. 처음에는 왼쪽 위처럼 여전히 귀여운 고양이 그림을 그렸지만 점차 고양이가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상한 그림들을 그리게 되고 나중에는 고양이가 추상적인 무늬의 집합 같은 형태를 띄면서 마치 동남아시아의 우상이나 가면 같은 무시무시한 모습을 띄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백과사전에서 "정신분열증" 항목에서 이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 그림 변천사를 보고 너무너무 무서워서 다음부터는 정신분열증 항목 페이지는 아예 넘기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웨인은 고양이들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10위부터 2위까지의 무서운 그림들을 그린 화가들이 모두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가들인 반면에, 웨인은 덜 알려진 화가이다. 하지만 저 유명한 화가들이 공포 효과를 노리고 그린 그림들보다 이 덜 유명한 - 정신분열증에 걸린 - 화가의, 공포 효과를 의도하지 않고 그린 이 고양이 그림이 훨씬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다른 그림들에는 이제 꽤 면역이 돼있는데, 이 웨인의 고양이 그림은 아직도 볼수록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내게는 이것이 최고로 무서운 그림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goldsunriver?Redirect=Log&logNo=90033910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