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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時 _ 배수아

김선미 |2008.11.18 11:18
조회 140 |추천 0
회색時        
아무런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과거의 어느 사소한 순간이 생각날 때가 있다. 과거는 주로 미래의 한순간과 강하게 연결되는데, 예를 들자면 죽음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과거의 어느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러나 아주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듯이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과거의 사건은 이미 망각되어버린 것이거나 혹은 너무나 사소하고 무의미해서 미래의 어떤 순간과는 전혀 아무런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듯이 보인다. 그 과거의 사건들은 인생의 비밀을 미리 알려주는 암시였을까. 그것이 암시였기 때문에 어느 날 우리의 의식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무심코 갈망한 우연이기 때문에 미래의 어느날 그것은 암시가 되는 것이리라.  시간이 스스로를 관통하는 방식은 짐작되는 것보다 훨씬 더 임의적이고 즉흥적이어서 우리들의 세계에 보이는 것과 의식하는 것 사이에 거짓의 거울의 벽을 장치해놓은 것과 같다. 그리하여 내가 믿지 않는 것의 리스트 중에는 모든 지나간 일들의 얼굴이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에 비해서 지나치게 많은 과거의 시간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노인들이 자주 과거를 회상하거나 그것을 언급한다고 나는 예전에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의 장면들이 낯설고 그 진위가 의심스러워지는 것에 반해서 앞으로의 일들이 점점 더 은밀하게 친숙하고 다정해지며 낯설지 않은 깊은 이야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미래의 일에 대해서 마치 그것이 이미 완료되어 지나가버린 것인 양 과거시제를 사용해서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고, 분명히 아직 겪은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전부 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되기도 했다. 간혹 나는 미리 그것들을 용서했으며, 아직 만나지도 못한 것들과 이별하기도 했고 사랑하기도 전에 싫증을 내기도 했다. 말 그대로 나는 때때로 미래의 일을 ‘기억’하곤 했다. 그에 비해서 과거의 시간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모호해지고 비현실적이 되어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잊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거울의 벽을 통한 미래는 과거의 예언이 되었다. 과거의 장면들은 화상처럼 벽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이 장면과 저 장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들을 짜맞추다보면 어느새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자신이 얼마나 큰 공포와 혐오를 가지고 있는가 깨닫고 그 예감만으로도 구토를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예언된 모든 과거가 피할 수 없는 성격의 하나로 일종의 죄의식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혀오던 시간의 무게는 그것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런 죄의식과 회피가 모든 과거의 시간들을 더욱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원인처럼 보인다. 선명한 채로 남아 있다면 너무나 괴로울테니 말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과거는 어떤 특정하고 기억에 남을만한 ‘사건’이 아니라 단지 ‘시간들’이라고 표현되는 추상의 형태가 되어갔다.  만일 시간이 직선으로만 흐른다면, 그런 과거의 시간에 대해서 글로 쓰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언급한 죄의식과는 별개로, 그리고 그것의 진위와는 또한 별개로, 인간이 항상 경험하고 사고하고 실행하고 예언하고 미래를 여행하고 글을 쓰는 모든 행위가 결국 언제나 이미 과거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관념과 인식의 경계 안에서, 과거 아닌 것은 없으며 어떤 일도 과거 안에서만 진실로 발생할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이야기’와 ‘역사’를 의미하는 단어는 종종 같은 형태를 띤다. 지금 현재의 순간에 내가 내 행위를 결정하며 이 찰나적인 순간이 내 심상 안에서 형태를 부여받기를 원하면서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슬프게도 착각이며 아무것도, 이미 거대한 과거 안에 잠식당한 미래처럼, 나의 완전한 수중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쓰는 것은 회색바탕 그림 속의 회색 옷을 입은 회색빛 남자를 회색으로 덧칠하는 것과 같은 행위가 된다. 회색빛 옷을 입은 남자가 회색의 담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아마도 그 해 유월 어느 날 안개가 심하게 낀 이른 아침의 일이다……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글처럼 말이다.  그러나 도대체 회색빛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자면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회색빛 축축한 아침에 회색빛 담을 따라 회색빛 거리를 지나가는데 그를 뒤따라가 길 옆의 회색빛 운하에 슬쩍 밀어넣어버리는 것이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오직 회색 물방울 몇 개만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나 필연적으로 회색빛 남자는 운하에 밀어넣어졌거나 혹은 밀어넣어지지 않았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모순이 된다. 사람들은 그를 모른다. 아무도 그를 모른다. 운하에 밀어넣어졌거나 혹은 밀어넣어지지 않은 회색빛을. 시간 혹은 과거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그런 그림과 같다. 회색빛 붓으로, 회색빛 남자, 회색빛 담, 회색빛 포도, 회색빛 운하, 회색빛 안개…… 그것은 일상적인 분명한 감각이나 논증할 수 없는 문장이나 고전 물리학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다. 글을 쓰고 있으면 과거는 미래보다 더욱 분명히 미지의 것이 되어갔다. 혹은 글을 쓰는 그 순간은 과거나 미래와 전혀 분리되지 못했다.  죄의식에 대해서 잠시 다시 이야기한다. 지나간 시간이 그 내용과 관계없이 결국은 수치이자 죄의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나이들어 늙게 되면서 비로소 깨우쳤다. 그것의 시작은 행복하다고 느껴보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감정이 죄의식과 연결 되는 것은 무언지 모를 막연한 자신의 과실로 인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느 순간들을 그대로 헛되게 흘려보냈다는 과도하게 예민한 책임감에서 기인한다. 혹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그 소심하게 겁먹은 비굴함의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으리라는 지레짐작 때문이다. 내가 늙기 전에는 그것이 단지 개인사의 불행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의 계단을 점점 더 많이 내려오면서 죄의식은 그 자체가 곧 과거의 보편적인 거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가장 축복받은 어느 순간의 빛나는 기억조차도 그것이 과거의 것이 된 이상 수치나 죄의식일 수밖에 없는 어떤 것으로 변해버린다. 그 수치는 어리석음에 관한 것이고 무지와 경솔함에 대한 도덕적인 수치이며 필연적으로 자신과 세상에 대해 깊은 환멸과 회의로 종결된다. 수치의 쌍둥이이자 더욱 견고하고 지속적인 형태인 죄의식은 개인의 독특하고 개별적인 행위의 내적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각기관에서 효소처럼 비밀스럽게 분비되어 배출되는 일 없이 일생 동안 조금씩 쌓이는 매우 비선택적인 물질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일생 동안 어떤 윤리적인  판단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했다 할지라도 죄의식, 그것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결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둔할 뿐이다. 아무런 외관상의 흠 하나 없는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영원한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죽어간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자면 가난한 사람들. 어디에나 존재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나던 날을 나는 마치 내가 태어난 날처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는 너무나 어려서 자신이 가난한지 그렇지 않은지 혹은 가난이 무엇의 상대적인 개념인지 가난이 종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며 정작 가난한 것은 자신이 아닌가 의심해보지도 못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난’이란 단어를 내가 들어보았는지 혹은 알고 있었는지도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처음에 내 안에서 발생한 것은 동정심이 아니었고 나는 그들이 더럽다고 느꼈으며, 나아가서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경멸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특히 그들중에서 현저하게 허름한 옷을 입고 누르스름한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을 말이다. 물론 그것은 생각뿐이었고 곧 무서워진 나는 집 안으로 달아나버렸지만 그것이 나에게 떠오른 최초의 생각이었고, 지금까지도 그것에 대해 스스로를 전혀 용서할 수 없으며 자신이 소름끼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단지 고백하는 것으로 마음이 가벼워진다든가 죄악이 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방법으로는, 커다란 항아리 속에서 메아리가 울려퍼지면서 여기저기로 튕겨나가며 전달되는 것처럼 더욱 과장되고 부풀려진 채 그 고백이 한층 더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뿐이다. 간혹 사회적 변제의 행위로써 그러한 죄의식을 덜어보려는 시도가 행해짐을 알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내던지고 앞으로의 남은 시간을 절대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방벅을 선택하지 못했다. 나는 의지 이전에 이루어지는 의식(意識), 그들을 경멸해야겠다,는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죄의식이란 이렇듯 철저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자아를 위해서 발생하며, 그 자체는 숭고한 이상이나 도덕적 결별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그래서 휴머니즘이나 종교적인 헌신과도 모관하고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서 단지 사정없이 증폭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식의 관점으로는 인간의 육식 습관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에 대해서 깊은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빈번하게 만나곤 했다. 그들은 혀를 즐겁게 하거나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 고기를 먹은 다음에는 죄의식 때문에 우울해지곤 했다.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채식주의자 친구는 만일 실수로라도 고기를 먹었다면 자신을 매질하는 방법을 썼다. 그는 반드시 아무것도 없는 골방에 들어가서 단 한번의 신음소리도 밖으로 내뱉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가혹하게 자신을 벌했는데, 자신이 골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말러 (Mahler)를 크게 틀어놓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그를 떠나는 것을 망설였는데, 하느님 맙소사, 지금 계산해보니 벌써 이 년 반도 넘게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는 스무 살 이전까지는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는데 그것 때문에 언제나 괴로워했다. 즉 과거로 인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방법으로도 그는 그런 죄의식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으며 쾌락을 위해서 동물을 도살하고 식용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살아 있는 순간도 학대하며 사육하는 인간의 생태를 아무렇지도 않은 마음으로 스쳐 지나갈 수는 없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그는 인간을, 그러한 생태를 가진 인간 자체를 깊이 혐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혐오 또한 살생과 마찬가지의 악덕이 아닌가. 단순하고 무지한 백성을 일깨우기 위한 현자의 말씀에 따르면, 네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 어찌 다른 것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가 가진 생명에 대한 절대적인 경외심은 그의 종족의 식생과 마찰을 일으켰고 다시 불꽃을 튀기면서 그의 과거의 식욕과 마찰을 일으켰다. 마찰은 증오와 과도한 혐오를 낳았다. 어떤 사람들은 다시 반복해서 말한다. 가까이 있는 존재들을 사랑하지 못하면 천상을 향한 그리움이 다 무엇이더란 말이냐. 맨 처음에 그 말을 한 사람은 아마도 인간은 결코 가까이 있는 존재를 사랑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계명은 수행자들의 발목을 지상에 묶고 출발선에서 단 한 발자국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굶주리며 수없는 지상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관용 없이 어찌 다른 생명의 절대적 신성함을 의식할 수 있을 것이냐. 그의 입장은 한때 곤혹스러웠다. 그가 인간을 사랑하지 않음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그의 죄의식은 이중적이었다. 그는 잔인한 종족의 일원이었고,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을 해치는 것을 고급한 쾌락으로 생각하는 종족이었다. 미각이나 스포츠, 수집, 상류 계층의 상징이 되는 고급 사치품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생명이 얼마나 유일한 것인지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고 죽음과 고통과 영원한 소멸에 대한 공포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접시 위의 핏물이 밴 스테이크는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놓은 것과 신의 저울 위에서는 하등 다르지 않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무감각한 사람들이었다. 단지 미각에 대한 고급 취향을 만족시켜준다는 이유로 짐승의 살을 먹을 수 있는 자는 사람의 살 또한 먹을 수 있으며 더욱 싱싱하고 달콤한 것을 위해서 돈을 지불하는 자는 다른 것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 매일매일은 쾌락을 위한 죽임의 향연이며 부유한 자들은 그 피와 살점의 더미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가장 맛있고 연하며 건강에도 좋은 싱싱한 부위를 골라 찢어내어 입으로 가져간 다음 그 맛을 즐기면서 미소를 지었고 가난한 자들은 그 둘레에 모여들어 찌꺼기라도 얻기 위해 요란하게 헐떡거렸으며 행여나 운이 좋아 자기 몫의 한 점이라고 얻을 수 있다면 부유한 자들을 흉내내어 같은 모양으로 입맛을 다시고 쩝쩝거리는 소리를 커다랗게 합창했다. 고통과 죽음, 그런 것 따위는, 자신의 것이 아니기만 한다면, 혀의 향락 앞에서 아무래도 좋은 것인 양 말이다. 먹이를 사냥하고 그것의 목을 따버리는 행위를 스스로 하지만 않았다면, 인간은 죽음―살해당하는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면서 죽음의 축제에서 미쳐 날뛰는 자신을 간단하게 부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지상의 모든 축제가, 여자와 아이들의 미소가 추악한 걸신(乞神)의 그것이었으며―오, 어떻게 나머지를 모두 설명할 수 있으리, 절망적인 죄책감의 구토증이 너무나 심해 사람들을 모아 회합을 열고 연설을 하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혹은 조금이라도 수긍할 수 있게 고기를 먹는 것이 비효울적이며 건강에 좋을 것이 없다는 식의 설명을 하고(그렇다면 효율적이고 건강에 좋다면 그것을 위한 고통과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팸플릿을 나누어주는 낯간지러운 행위조차도 그는 할 수 없었다. 또한 그가 그런 종족에 의해 태어나고 고기를 먹으면서 성장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그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만큼 성숙해진 다음에는 동족의 잔인성과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그러한 동시에 그렇게밖에는 살아갈 수 없다고 고집하는 종족의 무지와  탐욕 앞에 증오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악덕 ―자신에게 고귀한 생명을 준 존재들이기도 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 또다른 죄의식을 느꼈다.  언젠가 한번 그는 자신이 느끼는 죄의식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해주었는데,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세상의 표면에서 걸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며 어느 누구도 자신의 그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등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만일 그가 잔인하고 비참한 전쟁을 일으키기로 최종 결정한 독재자였거나, 한 도시를 송두리째 몰살시킨 명령을 내린 장군이었거나, 반란한 노예들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인 주인이라고 하면 이처럼 지독하게 근원적인 죄의식에 시달리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사나 운명을 결정하고 한쪽을 불행에 빠뜨리고 다른 한쪽을 선택하는 입장에 서는 것은 어차피 공인된 유죄의 자리이며 역사의 공리성에 관한 문제이므로 단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럴 경우 그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육식의 문제와 그것에 기인한 증오의 문제는 그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거대한 선험’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수치적 윤리가 아닌 구토증의 윤리이고 존재의 주체가 아닌 존재 자체를 위한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서 누구도 그를 법정에 세우지 않을 것이고 심판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더욱 그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가 죄의식을 매질하고 죄의식이 그를 매질했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더 사람들에게서 멀어져갔다.  
 이십몇 년 전 어느 짧은 시기 동안 나는 나보다 나이가 네 살 정도 많은 한 여자에게 깊이 빠졌는데 그 이름은 수미라고 했다. 당시 나는 에스페란토어를 가르치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같은 클래스에 두 명의 미국인 학생이 있었다. 그중의 한 명이 수미의 남자친구인 얼이었다. 언제부턴가 얼은 수업에 여자친구를 수미를 데리고 왔다. 수미는 내가 몰입할 수 있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 내가 수미에게 빠진 것은 그녀의 외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큰 키였으나 전혀 부피감을 주지 않는 가늘고 버드나무 같은 몸매를 가졌다. 얼굴은 갸름하고 좀 긴 편이었고 머리카락은 몹시 윤기 나는 검은빛이었는데 목덜미를 살짝 덮는 길이였다. 피부는 매끈하게 희고 눈은 가늘고 길게 찢어졌다. 그녀의 외모의 첫인상은 여자고등학교의 연극축제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아 하는, 어느 정도 중성적인 표정의 아름답고 흰 얼굴에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고 날씬한 소녀의 인상이었다. 그녀가 아름답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무런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수업을 같이 들었던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아무런 기억도 없으니 말이다. 나는 수미와 직접적으로는 단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어보지 못했다. 수미가 처음 클래스에 나타난 날은 비가 내렸다. 내가 최초로 본 것은 노란 우산 아래 드러난 수미의 뒷모습이었다. 수미는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잘록하게 조이는 엷은 천으로 된 길고 풍성한 스커트를 입고 굽이 낮으며 리본이 달린 고전적인 모양의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수미가 몸을 돌리자 손수건을 쥐고 있는 흰 손이 드러났다. 수미는 한 손으로 얼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들은 우산 아래서 무엇인가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수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으나 단지 그 모습만으로도 수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당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아름다움은 단연코 패션잡지『논노』에 나오는 일본의 십대 혼혈 모델들이었으며 나는 그 이외의 다른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본 바가 없었으나 수미가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은 그것들과는 분명히 다른 어떤 것임을 알아차렸다. 이상한 점 한가지는 클래스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상당히 둔감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수미가 전혀 아름답지 않거나 놀랍게도 도리어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있었다. 눈이 가늘고 눈두덩이 너무 두꺼워서 침울하고 심술궂어 보인다거나 입술 양끝이 처졌다거나 허리가 길고 몸매가 빈약하다거나 말을 할 때 발음이 샌다거나 코가 지나치게 뾰족하다든가 하는 이유를 들어서 수미가 아름답다는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수미는 클래스에서 다른 사람들과 거의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도도하게 보인 것이 결정적으로 그녀의 외모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평가가 내려지게 된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수미에게 매혹되어 있었고 수미는 대학생인데다가 그토록 아름다운데 나는 겨우 뻣뻣한 직물로 된 교복이나 입고 다니는 신세였으니 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수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던 것은 내가 유일했을 것이다. 수미는 영문학을 전공한다고 했으나 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연속된 두 단어 이상의 영어를 구사하지도 못했으며 그것을 지켜본 어느 사람이 그 장면은 마치 수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고 나중에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잠시 동안 수미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수업시간에 수미의 등이 보이는 곳에 앉았다. 수미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얼과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지, 어떻게 연필을 돌리는지, 휴식시간에 커피 판매대 앞에서 유연히 마주치게 되면 어떤 얼굴을 하는지, 그런 점들을 남몰래 관찰했다. 그러나 정작 수미가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다든지 하면 나는 당황해서 얼른 눈을 돌려버렸다. 내가 기껏해야 바보처럼 보일 수 있을 뿐이란 확신이 강했기 때문에 나는 수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극도로 삼갔다. 그러나 내 감정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구름속을 산책하고 있었으며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몽상가의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느 날부터 수미가 클래스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감히 얼에게 그녀의 안부를 물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사실 에스테란토어는 그녀에게 별 흥미 없었을 가능성이 많았다. 수업중에 그녀의 태도는 시종일관 심드렁했기 때문이다. 그후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는 더 이상 그 클래스에 나가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가르치는 교사도 없었고 또 배우겠다는 학생도 몇 명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클래스는 자연스럽게 곧 해체되었다고 들었다. 이 년 뒤,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두었을 즈음 그 에스페란토어 클래스의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명동의 구두상점에서 근무하는 판매직원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이다. 그가 전해준 바에 의하면, 얼의 여자친구였던 ‘나무인형처럼 마르고 표정이 없던 대학생’―그는 수미의 이름을 끝까지 기억하지 못했다―이 유명했던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 되기 전 해에 있었던 소련에 의한 여객기 격추사고를 말하는 것이었다. 수미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다가 사고를 당했고 얼은 함께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클래스의 또다른 미국인 학생이었던 프랜시스와 그 이후에도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프랜시스가 미국으로 돌아간 다음 프랜시스의 직장 동료를 통해서 그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했다. 그때 이미 나는 수미나 에스페란토어 클래스에 대해서 깡그리 잊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나이를 먹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에스페란토어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않을 그럴듯한 책도 읽었고 그리고 어쩌면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혹은 결혼을 할 지도 모르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나날이 개선되는 새로운 생활과 매력적인 자극들은 지나간 시절의 일들을 하찮게 보이게 했고 심지어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것은 일생을 관통하는 죄의식으로 형상화되기 이전의 일상적인 감상이었다. 그 당시 막연하게 다시 되살려본 수미는 처음의 인상처럼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았고 신비스럽지도 않아서 굳이 기억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던 것이다. 수미를 독특하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 경험의 빈곤함과 정신의 미성숙 때문일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수미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거짓이 될 터이나 아름다움이 스스로의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러줄 정도의 존재는 아니었으며 오디세우스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시적인 힘이 아니라 기껏해야 혈기왕성한 동네 젊은 남자들을 몇 번 정도 뒤돌아보게 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에 들어간 이후 나는 간혹 육체와 정신 모두가 놀랄 만큼 매혹적인 여자들과 마주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들은 내가 한때 탄복했던 수미의 아름다움이 사실은 그다지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는 평가를 내리게 만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적인 수미의 인상은 사라지고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던 그녀의 지적인 면만이 기억 속에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사로잡았던 여자들 중에서도 특히 나를 근원적으로 매료시킨 여자들은 모두 내가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거나, 혹은 단지 몇 번 의례적으로 스쳐 지나갔을 뿐이며 심지어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인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친밀과 교제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관조의 대상이며 또한 오직 그렇게 남아 있을 때만이 불변의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 주었다. 그들은 일단 말수가 적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불친절하게 보일 정도로 과묵하며, 친밀한 교제를 귀찮게 생각하고, 별다른 취미를 갖고 있지 않고,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소극적이고 밋밋한 일상을 살고 있으며, 세속적인 인기나 소문에 초연한 듯이 행동하는 여자들에게 몹시 빨려들어갔다. 나 역시 한 번도, 심징는 절대적으로 외로웠을 때라도 그녀들에게 의도적으로 가끼이 다가가려고 한다거나 친해지고 싶은 욕망을 조금이라고 나타낸 적이 없었다. 그녀들은 지나치게 완벽한 것으로 보였으므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혹시 그 완벽함이 허물어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그리고 어쩌면 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로는,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남모르는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는 남자친구를 갖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주변의 관심과 애정을 모으는 것처럼 보였고 스스로 원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어쨌든 자연스럽게 모든 경우에서 매우 유리한 입장이 되는 것을 목격해왔다. 그런 그들이 어느 모로 보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설사 나에게 그들과의 교제가 허락되는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내가 과연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을지 자신이 없다. 나는 은밀하게 스쳐 지나가는 비밀스러운 두근거림을 그런 상태 그대로 놓아두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마치 처음에 수미에게 매혹당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수미였지만 그녀가 죽었다는 화제는 일상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좀 충격적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기는 했으나 죽기에는 터무니없이 젊은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러기에 적당한 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 충격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들었을 때와 같이 비현실적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으로, 그 감정은 비극적이라기보다는 단지 드라마틱할 뿐이었다. 우리는 그때 수미의 남자친구였던 얼에 대해서도 기억을 되살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뿐 아니라 그의 생각에도 얼은 무례하고 무신경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얼이 원래 무례하고 무신경한 행동을 의도해서가 아니라 단지 매사에 성의가 없고 대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게을리 하는 천성에다가 무엇보다도 타인이 자신과 다를 것이라고 전제하는 부분에서는 항상 경솔해지는 안이함 때문이었다. 얼이 외국인이고 우리들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좀 부족했다. 그래서 당시 우리들 대부분은 수미뿐 아니라 얼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금방 끊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수미를 개인적으로 거의 몰랐으며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어쨌든 여자친구가 죽는 비극을 당한 얼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투의 말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문은 잘못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중에 수미가 사실은 죽은 것이 아니라고 알았다 해도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수미는 나에게서 먼 사람이었고 내 피나 살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니 나는 ‘그녀는 죽었거나 아니면 살아있으며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다 모순이다’ 하고 장난스러운 명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으리라. 그래서 이십 년도 더 지나서 어느 저녁 어스름에 수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수미가 문제의 그 비행기에 탔다는 것은 세상에서 흔한 잘못된 소문이었고, 사실이 아니었다.  이미 나는 수미에게 전혀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았고, 또한 수미 자신도 과거의 시간에서처럼 내게 돋보이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모른 척하고 아무런 인사도 없이 그냥 지나치기를 바랐다. 혹은 수미가 이미 이 세상의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나쁜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의도적으로 모른 척 해야 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그 순간 수미를, 그 존재를 처음 만나는 상황이었다면, 오래 전처럼 다시 수미에게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미가 아름다우며, 내가 수미를 모르며, 그녀는 말수가 적어 내가 그녀와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으며, 그녀는 백조같이 우아한 몸매를 가졌고 사물에 대해서 초연한 태도를 취하고 마치 검소하고 단조로운 식탁 같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것은 미지의 죄의식과 무관하지 않고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녀의 시간은 그녀의 치마 속 다리처럼 드러나지 않으며, 욕망이나 열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혹은 그렇게 보이며, 그녀는 불친절하며, 타인의 행동을 탐색하지 않으며, 질문이 없으며, 관심이 없으며, 그 모든 것이 여전하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 나는 수미에게 애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수미라는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이미 충분히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과거에 하찮은 것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가벼운 분노 때문이었는데 그런 성급한 분노를 미리 차용함으로써 나는 수미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릴 수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수미를 관찰했다. 수미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으며, 사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알맞을 듯 했다. 수미는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다른 방향을 보고 앉아 있었다. 처음에 수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수미의 침묵과 외면은 나를 점점 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수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짐작하면서도 나는 조심스럽게 수미의 주변에서 머뭇거렸다. 나는 만일 가능하다면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수미가 나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수미를 별다르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하찮고 천박한 정서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고는 마음이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먼저 수미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은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수미에게 내가 비밀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내 죄의식에 대해서 가벼운 고백을 했는데, 그것은 사실은 당연하게도 그럴 이유가 조금도 없는 것이며 그럴 마음도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의례적인 인사처럼 들리게 수미의 외모를 칭찬했으며―왜 그랬는지는 전혀 알수 없는 일이다. 단지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수미가 마신 커피값을 대신 계산해주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하도록 강요당하지도 않았고 수미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도 없으며 수미에게 하등의 호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도리어 나는 진정으로 그녀를 마음속 깊이 경멸하고 있었으며 덧붙여 말하자면 솔직히 굳이 경멸할 만큼이나 의미 있는 존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적절하고 멋진 기회가 생긴다면 짧고 애매하게 우롱해주고 있는 희망 정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처음에 내가 가졌던 당황함은 점차 내 안에서 해석가능한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수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있고 수미는 그런 나에게 조금도 관심 없이 행동하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수미는 일생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테크닉 없이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쾌감을 느끼고 있을 터지만, 반대로 나는 내 마음을 단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반대로 표현해냄으로써, 그것을 절대로 수미가 알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혹은 수미가 거기까지 눈치채더라도 더욱 당당하게 나는 수미에게 내 마음을 결코 그대로 표현해주지 않는다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포함해서 전달함으로써, 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의 관계에 대한 욕구가 밀려왔으므로 순간적으로 나는 수미의 교제를 다시 (만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시작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수미는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나는 한때 그녀의 외모에 마음을 빼앗긴 약자처럼 보였을 것이고, 지금에 와서도 그 관계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미는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왜소하고 하얀 얼굴을 한 병약한 양아들을 나에게 소개시키기도 했으며 이십 년도 더 전에 자신이 어떻게 그 비행기를 타려다가 계획이 헝클어지는 바람에 타지 못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나에게 들려주었다. 수미와 얼의 이야기는 이제 나에게 관심 밖의 일이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열심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수미가 나에게 왜 그 당시에 에스페란토어 학원의 클래스에서 자신에게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내 눈길만 보아도 내가 자기에게 매혹되어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클래스의 다른 몇몇 사람들이 내가 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들었다면서 수미에게 일부러 말해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수미의 생각으로 는 그런 감정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떠들어댄다는 것은 경솔한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며, 그렇기에 자심은 그 말들을 그대로 다 믿지는 않는다고, 수미는 이런 것들을 전혀 오만하지 않은 말투로, 성급하지도 흥분하지도 않으면서 태연하고도 마치 지극히 당연한 것에 대해서 말하듯이 했다. 그리고는 내 대답을 기다리거나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수치심에 휩싸인 채 그 자리에서 단숨에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격렬한 충동이 일었으나 나는 그것을 억제했다. 아마도 그 순간 일어난 강한 유혹에 따라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너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때 나는 나보다 나이 어른 다른 소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소녀는 마치 동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처럼 어여뻤는데, 아쉽게도 그 감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좀 혼란되어 있었고 어느 정도는 상처받았기 때문에 그 이후로 내가 마음을 빼앗긴 소녀들과는 특히 거리를 두려고 하며 살아왔다.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는 것은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는 것과 같았다. 그곳에서 손이 무척 길고 날씬한 피아노치는 여자, 그곳에서 그런 여자들을 그렇듯 멀리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즐기게 되자 내 생활은 그림속으로, 책 속으로 그리고 음악 속으로 그대로 옮겨간 듯해졌다. 나는 멀리서 나를 감상했다. 그 행위를, 그 모든 시선을,피아노 치는 달 속의 여자들과 거리를 두고 멀리 앉아 말없이 있는 나를. 나는 지금도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르처주고 의도하지 않게 나를 훈련시킨 그 최초의 소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비록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소녀지만 말이다. 그때 누군가가 너에게 내가 생각하는 그 소녀가 수미, 너라고 짐작하고 그렇게 말해주었다면, 그렇다 한들 그것이 지금 과연 무슨 대수란 말인가. 나는 그 소녀의 이름도 얼굴도 잊었다. 네 말대로 그것이 눈앞에 있는 바로 너라고 해도, 나는 전혀 기억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고 대답했다면, 적어도 그 순간만은 긍지의 회복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짧고 간단한 문장으로 내가 당시 그녀를 좋아한 것은 사실이며, 클래식의 몇몇 사람들에게 그 기분을 말 그대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말했기 때문에 그들도 알고 있으며, 그래서 아마도 그들이 수미에게 가서 재미있어하며 알려주었을 것이고 그런 알려주는 행위들은 그 당시 유희로서 행해졌을 뿐이니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최초의 마음을 억누르고 정직하고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나자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수미에게 진심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혹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내 태도는 일관되게 왜곡된 것이고 투명하지 못한 것이고 행위 이전이나 혹은 이후에 계산된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미의 질책 어린 질문에 대해서, 그 답변만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것은 교활하게 미리 생각된 것이었는데, 수미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수미는 내 태도 전부를 사실로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며, 혹은 수미가 그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수미에게 보내는 내 호의가 겉치레뿐이며 나아가서 속마음고는 완전히 대치되며 하나하나가 모욕을 목적으로 꾸며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과가 어느 편이든 나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며 또한 어느 편이든 나에게는 유쾌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수미의 항변이 이어졌다. ‘개인적인 감정이란, 더구나 다른 사람이 개입되어 있는 경우에는 침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품위없고 경솔한 것이 되어 버린다. 나 자신은 일생 동안 사람들의 입소문에서 가십처럼 불려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여 나뿐 아니라 내가 알게 된 타인의 일도 결코 경솔하게 남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때 너와 나는 아무런 접촉이 없는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믿지 않는 눈치였다. 네가 우리들의 일에 대해서 과장되게 상상을 심어준 탓이다. 나는 소문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그 대상이 되는 것 자체를 항상 불결하게 느껴왔다. 그래서 마음이 불쾌하여 더 이상 그 클래스에 가지 않았다.’  수미의 생각은 완벽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수미는 입을 다물고 다시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는 먼 자세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때 수미를 멀고 낯설고 느꼈고 수미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미가 지금보다 더 나에게 낯설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일생 동안 살면서 지금의 수미보다 더 멀지 않게 느낀 사람 또한 한 명도 없으며, 수미 역시 그럴 것이란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수미는 결국 나를 비난하고 내 오류를 지적하면서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수미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타인들의 소문을 경멸했다. 수미와 다른 점이라면 수미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소문의 영역에서 제외시켰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미에게는 자신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타인이었으나 나는 바로 나 자신이 타인일지도 모름을 의심했다. 나는 어디에서나 진심을 말하면 그것이 곧 하찮은 소문이 되어 떠돌 것을 의심했다. 사람의 진심이란 곧 하찮은 소문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하찮은 소문을 위해서, 반드시 진심이어야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순간에 내가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서 뭔가 해명한다면, 그것은 곧 세계의 실체를 이루는 거대한 소문의 일부가 되어 결코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빠르게 사라져 갈 것이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면으로 본다면, 이십 년도 더 이전의 과거에 내가 수미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한 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은 남에게 말해지거나 혹은 비밀로 해야 할 어느 쪽으로도 하등의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수미의 세계는 세탁소 다림질대 위에서 바싹 눌려 있는 셔츠처럼 단순하고 평이해서 누구에게나 금방 들통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고고한 흰빛만을 변함없이 뽐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수미에게 변함없는 감탄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수미는 나에게 아무런 작별의 인사를 건네지도 않은 채 양아들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수미의 뒤를 따라갔다. 수미는 일정한 보폭으로 천천히 걸었고 내가 따라감을 알고 있었으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이후로 우리는 어디에서나 함께였다. 내가 수미의 뒤를 따르지 않으면, 수미가 내 뒤를 따라왔다. 비록 언제나 서너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는 있었으나 나는 내 생애 동안 유일하게 진정으로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남몰래 빠져들어갔던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들과 나는 단 한 번도 이렇게 가까이서 지내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수미를 예전처럼 그렇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음은 이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내가 수미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며, 추하다고까지 생각하는 것조차도 의미가 없었으며 수미가 나를 하찮게 생각한다는 사실에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기회가 닿으면 기꺼이 수미에게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어느 순간에는 문장을 선택함에 있어서 내가 수미를 보고있다, 라고 표형해야 하는지 아니면 수미가 나를 보고 있다, 라고 해야 하는지 반사적으로 어리둥절해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나는 자신에게 그러는 것처럼 수미 또한 물질인 것처럼 인식했다. 수미는 언제나 어린 양아들과 함께 다녔다. 그 아이는 외모가 기형적일 뿐 아니라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듯 했다. 수미는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갔으므로 다리 위에서 갑자기 나타난 수미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가 많았다. 내가 나의 채식주의자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앉아 있을 때면 수미가 나타나 말없이 테이블에 와 앉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나는 아직 수미를 다시 만나지 못했으나 이 모든 일들을 비행기 격추사고 소식을 들었던 1983년 가을날의 아침처럼 잘 기억했다. 나는 앞으로 몇 년 뒤 수미를 만나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서 쓰게 되었을 터였다.
나와 수미와 채식주의자, 세 명은 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우리들 세 명의 노인은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식탁에는 격자무늬의 노란 식탁보가 깔려 있었고 빵 바구니는 비어 있었다. 식탁은 창가에 자리잡았고 창문은 활짝 열려서 늦여름의 저녁바람이 불어왔다. 자동차의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와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바람 속에 섞여 돌아다녔다. 우리는 각자 고독하게 늙어갔으며 차가운 천성 때문에 주변에 가까운 사람을 남겨두지 못했다. 아니, 우리는 지금 각자 혼자 있는 것이다. 혹은 우리들, 우리들 세 사람 중의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이 이곳에 앉아 있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의 기억속에서 우리의 의식이 노래하고 있으나 그것이 누구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으며 중요하지 않았다. 혹은 그렇지 않다면 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비어 있는 빵 바구니와 바람의 영혼뿐이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불어와 식탁보를 흔들고 주방에서 기름과 마늘 냄새가 풍겨오고 마치 영원히 그러할 것처럼 사이렌 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멀리서 지속적으로 나지막하게 땅과 마음을 흔든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기억 속에서 부유하는 환영을 느낀다. 혹은 그런 표정과 무게감이 없는 그림자들이 지금의 우리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 개인의 역사 중에서 타인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타인은 과연 실재적인 것의 이름인가.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토록 비밀스럽게 존재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타인이 존재하며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아왔다고 하는 것은 텔레비전의 선전이거나 종교의 광고문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그들 타인을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실제로는 만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녕 타인과 손을 잡고 인사를 했으며 그들과 결혼하고 그들과 가족을 이루고 혹은 그들과 이별한 것인가. 설사 그 모든 것이 소문이 아닌 사실이었다고 해도 타인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그들은 아파도 울지 않고 총알이 뚫고 지나가도 피가 흐르지 않으며 공중에서 폭탄을 맞아도 진정으로 죽음을 경험하지 앟고 공기처럼 흘러다니며 밤에도 잠들지 않는다. 혹은 그들이 피 흘리고 울부짖고 만원 지하철에서 바로 곁에 선 한여름 돼지처럼 땀을 흘리며 냄새를 풍기는 실제적인 존재라고 해도,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본 것이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고 해도, 그들이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타인이 정녕 애증의 대상이기나 한 것일까. 타인은 회색빛 옷을 입고 기묘함 모습으로 식탁 곁에 서 있으며 명령을 기다리고 주문을 받아적은 다음 음식을 날라올 것이다. 나는 허기와는 상관없이 많이 먹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묹에 으깬 감자와 야채구이에 세 개의 달걀 프라이가 얹힌 것에 매운 소스로 볶은 국수가 추가된 요리를 주문했다. 수미는 아무런 추가 주문 없이 빵과 병아리 심장 수프를 시켰고 채식주의자는 쌀밥과 야채 커리를 먹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윽고 사람들은 아주 다른 것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으나 우리들은 아직도 주문한 저녁식사가 날라져올 것을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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