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태백산맥의 우렁차고 담대한 지맥은 한반도의 남쪽을 기운차게 뻗어 내리며 설악산과 오대산, 그리고 속리산 같은 명산을 잉태시켰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지니고 있는 기백과 탄력이 소진되지 않아 내륙으로 줄달음치다가 문득 엎어질 듯 멈추면서 산맥의 속살을 격렬하게 드러낸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경북 청송과 영덕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주왕산이다. 본래의 이름은 석병산이었다. 혹은 세상을 등진 선비들이나 참선하려는 선사들이 들어와 살았다 하여 대둔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대전사 같은 사찰도 있지만 그 자취나 흔적이 남아 있는 절터들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신라 왕족이었던 김주원이 여기서 은거했다고 주방산으로 부르기도 했다.
주왕산이 품고 있는 정기는 헤아리기 손쉽지 않은 수많은 전설과 기암괴석의 오묘하면서도 화려한 배열과 가을 단풍의 화려함에 있다. 특히 계곡 양편으로 배열돼 있는 바위 병풍들을 올려다보노라면, 그 아찔한 절경이 탄성을 자아낸다.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지금 당장 앞으로 무너져 내릴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벌였다는 기암. 주왕이 달구경을 했다는 망월대. 주왕이 은거하다가 숨졌다는 전설의 주왕굴. 그리고 3개의 폭포. 모두가 주왕산을 찾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절경이다. 조선 인조 때 성리학자였던 장현광의 글에서도 주왕산의 바위 병풍들에 대한 예찬론이 길게 이어진다.
“이른바 부암이라는 바위 위에 이르면 좌우의 여러 바위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천 가지 모습과 만 가지 모양이 모두 갖춰져 있다. 네모진 것이 있는가 하면, 둥글며, 쭈그러들고 혹은 삐쭉 나왔으며, 좌우가 서로 맞이해 마치 손을 잡고 읍하는 듯한 것이 있다. 그런가 하면 피차가 서로 높아 마치 누가 더 큰가를 다투는 듯한 것도 있고, 부부처럼 배합한 것이 있고, 형제처럼 나란히 자리한 것이 있으며, 원수처럼 서로 등진 것이 있고, 친구처럼 서로 가까이한 것도 있다. 혹은 한 바위가 우뚝 솟고 나머지 여러 바위는 함께 낮으니, 높이 있어 우러러 받드는 것은 군주와 스승과 같고 낮아서 압도당하는 것은 신하와 첩과 같으며, 동쪽 벼랑의 바위가 서쪽 벼랑에 연하지 않고 서쪽 벼랑의 바위가 동쪽 벼랑에 이어지지 아니하며, 마치 문을 나누고 진을 구별해 진법이 서로 뒤섞이지 않는 듯하다. … 머리를 숙이고 감추어 마치 시세를 두려워하는 듯한 것이 있고, 모서리를 드러내어 마치 세상의 어지럼에 분노하는 듯한 것이 있으니, 이것이 그 대략으로 그 형상을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배열된 바위마다 전설이 주절주절 열려 있고, 그 형상이 또한 평범하지 않아 발길을 멈추고 전설을 음미하자면, 반나절이 꿈처럼 지나간다. 계곡을 둘러싼 바위병풍들은 등반길에서 멀지 않아 쳐다보자면 고개가 아플 정도고, 등산길이라 하지만 가파른 곳이 없는 흙길이어서 3대 가족이 함께 걸어도 낙오가 걱정되지 않는다.
이 주왕산 기슭이 품고 있는 보배로운 저수지가 바로 주산지다. 주왕산에서 청송시내 쪽으로 나오다가 왼편 오르막길로 오르면 신비하기로 소문난 저수지가 나타난다. 주위는 주왕산 영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마치 별유천지에 당도한 것처럼 한적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라 속세의 혼돈과 마음속의 갈등과 저주를 삽시간에 씻어낼 수 있는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청송군은 북서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그 때문에 청송 일원에서 생산되는 청송 꿀사과는 전국에서 당도가 가장 높은 명품 사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므로 계통 출하가 되는 구입처가 아니면 진품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사과와 곁들여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청송 고추는 영양 고추와 함께 전국 제일의 품질을 자랑한다. 흔히 매운맛이 진한 청양 고추를 충청도의 어느 지방에서 생산되는 고추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와전된 것이다. 청양 고추는 지금의 세미니스코리아의 전신인 중앙종묘에서 열대지방 고추를 모계로 해 소과종에 적합한 품종을 육성했다. 그래서 국내 최대 고추 산지인 청송과 영양에 재배시켜 청양 고추라 명명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