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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프레디머큐리의 삶

최재훈 |2008.11.23 22:38
조회 1,596 |추천 2

 

 

프레디 머큐리(본명 : Farrokh Bulsara)는 1945년 9월 5일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에서 출생했다.

잔지바르는 코브라와 정향 등으로 유명하며 '노예무역의 거점지'라는 아픈 과거를 지닌 섬이다.

 

'프레디'와 그의 부모는 파시족(Parsee)에 속하는데


(때문에 인도출신 Bulsara 부부는 인도가 고향일 뿐 페르시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미교포가 비슷한 예.)


그는 '잔지바르'에서도 영국 국교회에서 가르치는 학교를 다닌적이있으며 산수 등 학교성적도 좋았고 미술에도 소질을 보였으며 항상 웃음을 머금은 섬세하고 내성적이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인도에서의 학창시절...... 인도 봄베이 근교의 St, Peter's에 다니며


프레디는 금방 자립하며 성숙해졌고 'Farrokh'이라는 페르시아식 이름은 'Frederick(애칭 Freddie)'이라는 영국식 이름으로 바뀌고

Bucky(뻐드렁니)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는 그 때 스포츠, 음악, 미술, 웅변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드러내며 만능상을 받기도 하고 7학년 때는 우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주로 개인종목을 좋아하고 잘 했다고 한다. 그는 정열적인 면도 많아 연극부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는데 여자역할을 맡기도 했고 모든 이들을 달링(Darling~)이라 부르며 어딘지 모르게 여성스러운 면을 많이 드러내기도 했다.

 

밴드도 조직하여 활동했는데 프레디는 이 때 Mr. Davis라는 교사에 의해 실력을 인정받아 따로 일대일 교습을 받으며 음악적 소양을 쌓아갔으며(그는 나중까지도 이 부분에 대해서 그에게 감사하는 맘이었다 함)


영국으로 이주한 후에는 인도와 잔지바르를 개인적으로 다신 찾지 않았고 자신의 출신과 성장배경을 철저히 숨겼는데, 이는 그가 세련되고 편안한 생활을 좋아한 탓도 있겠지만 유서에서 밝혔듯이, 영국인들이 백인과 다른 자신을 차별하고 깍아내린다는 생각에서 그들과 차별 당하지 않고 평등한 대우를 받으려는 심리가 많이 작용했던 듯하다. 때문에 그는 고향 '잔지바르'나 '인도'에서의 생활을 소중히 여기면서도(프레디는 고향을 싫어한 것처럼 알려졌는데 어떤 인터뷰에서 소중한 고향이라 표현한 적이 있슴) 그에대한 얘기가 나오는걸 극도로 꺼렸고 그런 핸디캡은 그를 완전한 영국인으로 최면을 걸며 살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1966년에 드디어 그래픽, 일러스트를 전공하게 된다. 이 때부터 그는 집에서 독립해 켄싱턴 거리에 살기 시작했는데, 거기에는 유행이 빠르게 시작되는 켄싱턴 시장과 레코드점, 술집, 서점 등이 즐비했고, Ealing 미술대학을 다닐 당시부터 남다른 패션감각이 있었던

그는 졸업 이후에 로저 테일러와 함께 그 곳에 옷가게를 차리기도 한다.


(60~ 70년대에 이 시장은 매우 활기를 띤 곳으로 각 방면의 스타들이 잦은 출입을 하던 곳이었는데 여기서도 그는 'Darling'이란 호칭으로 눈에 띄었고 여기 저기 다니며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떠들기를 좋아했고 매우 여성적이었다고 한다.)

 

'팀 스타펠'이라는 친구와 친해진 것도 대학 시절인데, 당시에 아마츄어로 유명했던 그룹 'Smile'의 멤버였던 그로인해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를 처음 알게 되어 훗날 'Queen' 을 결성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퀸' 활동을 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 '프레디'는 켄싱턴 시장에서

'메리 오스틴'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된다. 그녀는 모델 지망생이었던 키가 작고 얼굴이 예쁜 아가씨였는데, 처음에는 '브라이언 메이'와 만나던 사이였지만 그와는 별 진전이 없었고 그 후 '프레디'는 그녀를 6개월 동안이나 바라만 보다가 교제를 시작하고 6년이나 같이 살다시피하게 되었다.


그들의 관계는 프레디의 계속된는 양성애 기질(그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안 건 24~25세 정도였다)로 인한 것인데 그 때에도, 그 이후에도 '메리'는 '프레디'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남아있게 된다. 프레디가 그녀를 오랜 충신으로 표현할만큼.....

 

그러고보면 둘의 관계는 참 특이하다고 보여진다. 한 인터뷰의 내용을 빌자면, 프레디는 "제 연인들은 왜 자신들이 메리를 대신할 수 없는지를 묻곤합니다.

그치만 그건 불가능하죠. 메리는 저에게는 유일한 친구이고 다른 누구도 필요하지 않거든요.


저에게 있어 그녀는 제 아내이고 우리는 결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린 서로를 신뢰했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전 남자와는 메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에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유산상속도 메리에게 거의 반이상을 주었고 나머지는 가족과 그의 애인들과 측근에게 줌).라고 했고 자신이 양성애자로 보여지는 것은 이미지일 뿐이고 자기의 복잡한 상황을 편리하게 설명하는 명분이었다고 했는데 그만큼 그의 동성애 행위는 진정한 감정의 사랑이기보다는 쾌락을 위한 사랑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는 '메리'가 아이를 원했을 때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없어 거절했다는데 결혼에 대한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수 없는 자신의 기질과 남들과는 다른 성적인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메리'를 사랑하면서도 'Soul mate'로 만족하며 산 것이 아닐까?

 

한 때 '퀸'의 프로듀서였던 'Mack'이란 사람에게 '프레디'는 "아마 조만간 게이생활도 그만두게 될꺼야"라는 말을 몇 차례나 했었고

그의 가족의 모습을 부러워하며 기존의 생활을 바꿀 의지까지도 보였었다고 한다.


천성적으로 아이를 무척 좋아해 걷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들과도 잘 어울렸는데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는 젊은 시절

한 때의 성적인 쾌락을 이기지 못하다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된 것 같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우리는 어쩌면 게이생활을 청산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룬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Killer Queen'을 한시간 안에 써내려갔을 정도로 음악에 관해 천재적인 면을 보여주었던 그가, 한 때는 음악 작업을 굉장히 지루해한 적이 있는데 1981년 뮌헨에서 스튜디오 작업을 할 때이다. 그 때 그는 동성 애인 두 명, 여성 애인 한 명과 향락에 빠졌고 뮌헨이란 도시에서 방황(?)을 하며 다른데는 관심을 잃은 듯 해 멤버들의 걱정을 자아내기도 했다.


'프레디'는 가끔 심하게 아팠고, 우연히 '프레디'가 뉴욕에 있을때

사귀던 애인 두명이 에이즈로 죽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에이즈 검사'를 받는데 그 후 '프레디'가 손을 베어 '바바라'가 도움을 주려하자 만지지 말라고 소리친걸로 보아 그는 그 때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고 얼마가 지나서는 얼굴에 생긴 반점을 바바라가 직접 화장으로 커버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1985년 뮌헨생활을 정리하고 떠나기 전, 바바라와의 마지막 날에는 침대에 누워 말없이 울었다고....

런던의 '로지가든'으로 옮기며 '짐 허튼'과의 생활을 하는 '프레디'는 '짐'에게 에이즈 사실을 고백했고 떠나려면 떠나라고 했지만 '짐'은 끝까지 그의 옆에 머문다.(짐도 1990년에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음)


그의 성격을 다 받아주며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의지한 몇 안 되는 사람으로...

 

성장배경에 대해 언급하기 싫어했던것 처럼 그의 평범하지 않은 종교(영국 내에서)에 대해서도 그냥 함구하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후에 평론가들은 이런 이유를 들어 그는 자신의 노래 The Great Pretender - Freddie Mercury 처럼 '대단한 위선자'였다라는 비평을 한다.

 

자신도 인정하는 바대로, 그는 상당히 감정적이어서

기복도 심한 편이었고 주위 사람을 당황하게 할 때도 많았지만 그의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걸 견디지 못했던 그는 늘 주위에 사람이 가득했는데

그 중에는 팬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누군가의 칭찬에 "내 목소리의 힘은 관객들의 에너지에서 나오는거야. 관객이 잘 할수록 나도 잘하지" 라고 말했으며

유서에서도 어쩌면 자신은 음악보다도 팬들을 더 사랑했는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이렇게 팬을 사랑한 그였지만 지금은 가족과 측근 외에는 무덤의 소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곁에는 그가 팬들을 사랑한 이상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의 능력 (관객을 사로잡는 완벽한 쇼맨쉽과 가창력,작곡 능력 등)을 인정하는 팬들이 남아있다. 그의 묘지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 가족의 처사는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너무도 떠들석한 삶을 살다간 그에게 '가족들이 주는'마지막 안식'이라 생각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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