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충북 유일의 마이스터고,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전문계고 장인이 또 다른 장인을 만든다
충북 음성 충북반도체고등학교
충북반도체고등학교 신경인 교장은 정장을 입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만난 그는 베이지색의 점퍼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만약 학교가 아니었다면 영락없는 회사원의 모습이었습니다. 점잖은 모습으로 양복을 빼입고 있는 여느 학교의 평범한 교장 선생님들과는 달랐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편해서입니다. 몸이 편해야 맘도 편하고 그래야 일도 더 잘 된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실용주의인 셈입니다. 사실은 여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제가 처음 신 교장을 보았을 때 느꼈던 그 인상, 회사원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반도체고는 언제나 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입니다. 학교 밖을 벗어나는 순간 그는 학생들의 이력서를 들고 기업의 문을 두드리며 구직활동을 마다하지 않는 취업 중매쟁이가 된다고 했습니다.
◆전문계고가 살아남는 단순한 원칙
충북 반도체고등학교(교장 신경인, 이하 반도체고)의 원칙은 단순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육성한다는 것. 인문계고가 지식을 요하는 인재를 육성해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 1차 목적이라면 전문계고는 기술을 연마한 인재를 육성해 기업에 취업시키는 것이 본질이다. 문제는 우리사회가 4년제 대학 중심의 단편적인 구조를 가지면서 출신 고등학교의 성격을 막론하고 모두가 대학 진학을 희망한다는 점에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단순하면서 명확한 것은 결국 대학을 나와야 쓸 만한 직장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7~8년이 걸리는 대학 생활의 최종 목적지가 결국은 좋은 직장이라는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중등 교육의 최종 지향점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반도체고는 이 점에 주목했다.
신경인 교장은 기업이 탐내는 인재를 만든다면 취업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문계고의 발전 방안도 그곳에서 찾는다면 해법은 간단했다. "전문계고를 만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회에서 원하는 기술 인재를 기르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한들 모두 대학 나와서 책만 보고 있으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모든 경제의 기초에는 기술이 버티고 있습니다. 기술 인재를 양성하지 않고서는 경제가 발전할 수도 없고 나라가 잘 살 수도 없습니다.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전문가, 바로 그곳에 전문계고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반도체고의 자랑 1+3+1 그리고 1+1 의 이원화된 교육 과정이다.
▲ 충북 반도체고의 목표는 산업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실무적인 이재를 기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현장과 동일한 환경과 장비를 갖추고 실습교육을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1+3+1의 첫 번째 1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의미한다. 가운데 3은 전문계 대학교에서의 세 학기고 맨 끝의 1은 기업에서의 현장실습 한 학기를 말한다. 1+3+1은 -9;진학-9;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택하는 -9;코스-9;다.
1+1은 좀 더 단순하다. 3학년 1학기까지 학교에서 교육 받고 7월 말 즉, 2학기가 시작되면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한다. 이것은 -9;취업-9;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밟는 -9;과정-9;이다. 진학과 취업은 다른 듯 하지만 결론은 두 과정 모두 -9;취업-9;이다.
물론 반도체라는 전문성을 살린 취업이고 대부분 현장 실습을 나간 곳에서 일정 기간의 인턴을 거친 뒤 연봉 2천500만원 안팎의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이렇게 진학반과 취업반으로 나눠지는 비율은 거의 50대50이다. 신경인 교장은 진학반도 결국은 취업을 위해 하나의 단계를 더 거칠 뿐 본질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이는 우리 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옥천상고의 경우, 특히 남학생들은 대부분 취업도 하지 않고 대학을 가더라도 상과 계열 학과로 진학하지 않는다. 전기, 전자, 자동차 등 자신이 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 배운 것과는 상관없는 분야로 진학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만약, 고등학교에서의 3년이 진정으로 의미가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 있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기업들은 교육 현장을 믿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저도 공고 출신입니다. 하지만 제가 교육 받을 때는 다 수동 작업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동화됐죠. 세상은 급박하게 변해 가는데 교육 현장은 늘 제자리 걸음이니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공고를 나오더라도 실제 산업현장에서 오퍼레이터로 제 몫을 하기까지는 6개월에서 3년이 걸립니다. 기업에서 완전히 재교육을 해야 비로소 쓸 만한 인재가 된다는 것이죠. 저희들은 그 3년의 재교육 과정을 학교에서 완전히 소화 할테니 우리 애들을 바로 투입해 달라고 했습니다." 신 교장의 말이다.
그의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반도체고의 수업 내용은 가히 여느 공과 대학과 다를 바가 없다. 반도체 기계과의 수업에는 생산자동화, 자동화 설비, CAD/CAM, CNC 선반, MCT 선반 이론이 등장하고 반도체 전자과의 시간표에는 전자회로, 디지털논리회로, 자동제어, 자동화설비, 컴퓨터 구조 등의 어려운 과목들이 즐비하다.
그 결과 반도체고 졸업생들은 동부하이텍과 하이닉스 반도체를 비롯해 세미텍, 테스, 러셀, 유라엘텍, 이레비젼, ST&I 등 유수의 반도체 관련 기업으로 속속 취업했다. 현장에서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인재가 갈 곳은 많고도 많았다.
입소문은 금방 퍼졌다. 입학생 미달 사태를 빚던 학교가 300점 만점의 입학시험에서 평균 240점대의 합격생들이 들어오는 -9;인기공고-9;로 변신하는 데는 2~3년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결과 2008학년도에는 한 학급이 늘어나는 이변이 탄생했다. 같은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도 감히 달성하기 어려운 변화였다.
▲ 반도체기계과 학생들이 자동화 장비를 작동하고 있다. 학생들은 실무 중심의 알짜베기 교육을 받으며 반도체장비 마이스터로서의 꿈을 차고차곡 이뤄가고 있다.
◆교사들이 잘해보자 -9;합의서-9; 쓰기도
반도체고가 밟아온 역사는 지난 주 소개한 한국뷰티고등학교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학교는 학생들의 외면을 받았고 학생 모집이 미달되는 사태를 빚었다.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구성원들은 밤샘 토론과 격론 끝에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고 새로운 학과와 교재를 개발하고 수업 내용을 변화시켰다. 사회가 원하는 인재의 구체적인 그림을 얻기 위해 교사들이 직접 현장으로 들어갔고 실습실을 하나, 둘 갖춰 나갔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구걸하는 심정으로 외자유치를 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녔다.
그 과정에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 떠나는 교사도 있었고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제 몫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교사 간 의견 대립이 지나쳐 경찰서에서나 볼 법한 -9;합의서-9;를 만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 더 이상 서로의 몫을 욕심내지 않고 오로지 학교와 학생의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한다는 요지의 합의였다.
그렇게 혹독한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반도체고는 2006년 드디어 반도체 특성화 학교로 지정받는데 성공했다. 1969년 무극종합고등학교로 개교해 1991년 기계과와 전자과로 출발한 금왕공업고등학교가 2006년 반도체 기계과와 반도체 전자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송길용 전문교육부장 겸 산학협력총괄은 "음성에는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해 반도체 관련 기업이 여럿 입주해 있습니다. 또 반도체라는 분야 자체가 정부에서 지정한 10대 성장 동력 중 하나이고 충청북도가 추진하는 지역의 4대 핵심 전략산업이기도 하구요. 모든 전자·전기 제품에 반도체는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죠. 우리 학교가 그간 기계과와 전자과로 어느 정도 기반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고민한 끝에 국가와 지역사회에서 동시에 지원하는 반도체라는 분야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학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 지역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반도체고의 가파른 비상이 시작됐다.
▲ 신경인 교장은 구태여 정장을 입지 않는다. 베이지색 점퍼를 입은 그는 학생들의 이력서로 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충북 유일의 마이스터 고교 선정
반도체고가 달성한 최고의 정점은 현재로선 아마도 충북에서 유일하게 마이스터(Meister: 독일어로 전문 기술인인 -9;장인-9;을 의미) 고교에 선정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마이스터 고교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으로 침체된 전문계고를 살리기 위해 그야말로 전문화된 전문계 고교를 발굴해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10월 초 발표된 결과는 충북에서는 반도체고가 유일하게 선정됐으며 전국적으로 단 9곳만이 대상이다.
반도체고의 경우 앞으로 3년 간 국가와 지자체 등으로부터 최소한 112억원을 지원받는다. 이 종자돈을 바탕으로 반도체고는 한국 최고의 반도체 장비 전문가를 육성하게 된다. 신경인 교장은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반도체 장비 전문가 육성 고교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장비와 기술이 필요합니다만 저희들은 고교 수준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현장의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그 결과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여기에 중점을 둬 마이스터 고교 계획을 세웠습니다. 현재는 전문대 졸업생들이 주로 투입되고 있는데 기술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집니다. 우리는 산업체 현장에서 쓰는 장비를 그대로 들여와 동일한 환경, 동일한 기술을 연마시켜 내보내게 됩니다."
이제 반도체고는 어떻게 국내 유일의 반도체 마이스터 고교를 만들어 갈 지 또 다시 시작점에 서게 됐다. 바로 이 순간 신 교장이 가장 걱정하며 역점을 두는 분야는 바로 교사의 재교육이다. 반도체를 전문으로 하는 교사는 현재로선 없다. 마이스터는 장인이 또 다른 장인을 기른다는 의미다. 학생들을 반도체 전문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가 먼저 전문가가 돼야 한다. 그의 다음 한 마디가 반도체 마이스터 고교의 지향점을 가리키며 동시에 옥천상고가 고민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