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 오십시오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옷깃을 여미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아주 진정으로 기다리십니다. 따라서 지난 1년의 삶을 반성하면서 돌아가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는 주님을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유배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지난 잘못을 반성하면서 하느님의 새로운 사랑과 축복을 기원하는 일종의 탄원 기도문입니다. 기도문 자체가 매우 고상하면서 감동적이고 그리고 내용이 아주 풍부합니다.
"아,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십시오."
이스라엘의 애절한 그리움과 진실한 뉘우침이 그 기도문에 새겨 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일어설 수 없다는 절실한 믿음은 하나의 아름다운 꽃입니다. 실로 하느님께 믿음과 희망을 갖는 자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늘 깨어 있어라.'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즉 그 때가 언제 올 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때가 무엇이냐?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주님이 찾아 오시는 때를 말합니다.
세상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왜 사는지를 모르며 자기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그래도 거기엔 관심이 없이 그저 많이 벌어 잘살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10년, 20년 잘살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그래서 잘먹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허무밖에 없습니다. 눈물밖에 없습니다.
성찰을 통해서 자기 삶을 반성해 본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이 어딘 줄을 알고 올바르게 걸어가는 것은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때'가 언제인 줄을 알고 미리 준비하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일입니다.
미국으로 이민가는 어떤 형제가 부모님 산소를 지키지 못하고 그냥 떠나기가 죄스러워서 묘지기를 돈으로 사서 부탁해 놓고는 안심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고생을 하면서 5년 만에 제법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부모님 산소 생각이 났으며 고마운 묘지기 아들도 미국으로 불러 교육을 시켜 주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불쑥 서울에 갔습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는 묘지기에게는 미리 연락을 못했습니다. 그냥 김포에서 내리자마자 산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산소에 도착해 보니 부모님의 묘는 잡초로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그렇게 부탁을 했고 그렇게 돈으로 베풀었건만 허사였습니다. 그는 대성통곡을 한 뒤에 묘지기에게 그랬습니다. “일 년에 서너 차례만 산소를 돌봤다면 당신에게 백 배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뭐냐?" 묘지기는 그 날로 집과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약삭빠르게 살려고 하다가 결국은 미련하게 사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하고 우 리가 조금만 깨우치기만 한다면 아무 탈이 없이 오히려 큰 상을 받을 것인데 바보같이 살기 때문에 좋은 세상을 아주 망치는 불행을 만들게 됩니다.
진정으로 잘사는 것은 사업을 잘하고 병 없이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자신을 성찰해서 잘못되었으면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게 행복입니다. 아무리 재산을 많이 모으고 아무리 권력이 하늘까지 올랐다 해도 자기 성찰을 모르고 자기 잘못을 고치지 못한다면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진흙이요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코가 비뚤어졌다고 고백한다면 하느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우리 귀가 떨어졌다고 고백한다면 하느님께서 다시 붙여 주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고작 잘못이지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항상 새롭게 고쳐 주시는 사랑이십니다.
대림절은 은혜로운 시기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이며 또한 그분을 만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선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기다리시며 우리보다 더 큰 애정으로 우리를 만나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주님 만날 채비를 하면서 그분을 기다립시다. "아,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