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지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 두는것이 좋다. 기억이 퇴색하기 전에 기억해 낼수 있는 생생함을 담아두는것이 좋으리라. 하기야 우리가 기억하고 사진으로 남겨두는 일도 우리가 가진 모든 시간과 공간들의 한부분, 아마도 빙산의 일각이지만 말이다.
난 이번 십일월을 너무나 바쁘게 보내서 잠시 내가 가졌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을 잠시 소홀하게 했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쏟아내고 쏟아내는 일을 반복하면, 그 일이 아무 의미없이 기계처럼 반복되는 말의 유희가 되는것처럼 가끔은 내속에 내가 다시 채워질때까지 기다려보는 것도 좋으리라. 어찌 매일 매일이 너무나 하고싶은 애기만으로만 계속되겠는가. 때로는 말없이 느끼고 그냥 흘려보내고 싶은때도 있다. 하여간 난 이렇게 뉴욕에서의 Thanksgiving Day 를 보내게 된걸 기쁘게 생각한다.
작년을 생각해 보건데, 분명 작년에도 난 이 퍼레이드가 있다는걸 알았었다. 하지만, 할로윈 퍼레이드와 달리 이 Thanksgiving Parade 는 이른 아침에 시작된다. 항상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뉴욕커는 Thanksgiving Day 에 누구도 잠을 설치고 일찍 일어나기 힘든법이다. 난 내가 뉴욕커는 아니지만, 적어도 작년에는 내년에도 이 행렬을 볼 수있다는 생각에 이른 아침 단잠을 떨치지 못했었다. 그 대신, 퍼레이드가 끝난뒤, 아직 치우지 않은 계단식 관중석을 봤었고, 센트랄 파크를 가로지르며 아직도 단풍을 간직한 센트럴 파크를 사진에 담았었다. 작년의 Thanksgiving Day는 올해보다는 따뜻했었다. 난 비교적 가며운 외투를 입고서 공원 여기저기를 산책했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어떤 남미의 가족이 초대한 Thanksgiving Dinner 에 음식을 준비해서 갔었다. 내가 아마도 잡채를 가져갔던 기억이 난다. 그들에겐 잡채가 색다르고 맛있었나보다.
이 행사는 시기적으로 경제적 침체에 있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계속되었다. 이 행렬은 보통 77th st. West 에서 시작되어 그길을 쭉 따라서 내려온다. 그리고 Central Park 남단인 Columbus Circle 에서 다시 Broadway를 따라 34th st. Broadway 와 7th ave. 에서 끝난다. 이 행사는 1924년 Macy's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의 행렬로 준비한 것이었다고 한다. 백화점의 직원들이 Central Park 의 동물을 이용하서 행진하는 행렬이었다고 한다. 그 행사가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Macy's 백화점에서는 이 행사를 해마다 결정했다고 한다. 그것이 이 행렬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1927년에 헬륨가스를 이용한 풍선을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행렬의 마지막에서 그 풍선이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고 한다. 그후 이 행렬은 안전하게 시험을 거치고 많은 준비를 거치며 계속해서 발전하고 그때 그때마다 인기있는 캐릭터를 이용하서 모형을 만들고 초창기엔 주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이용한 풍선을 만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행로를 이영한다고 한다. 지금은 해마다 300만 명이 거리에 나와서 이 행렬을 관람한다고 한다. 이날의 행렬은 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생방송된다. 내가 살았었던 버지니아에서 어떤 미국인 할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서 네가 뉴욕에 있으니 그 퍼레이드를 꼭 보라고 하셨었다.
이른 아침에 전철을 타고 콜룸부스 써클에서 내렸다. 난 이곳이 이 행렬을 관람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전철에서 내리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행사를 보기위해서 내리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어린이를 낀 가족동반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행렬을 보기위해서 먼곳에서 뉴욕까지 온 사람들이었다. 전날 도착해서 애들이 너무나 보고싶어하는 이 행렬을 보기위해 또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이곳에 온 사람들이다. 퍼레이드가 계속되는 내내 새로운 풍선이 나타낼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만화에 나오는 노래를 장단에 맞추어 불러보기도 한다. 내 바로 옆에 서 있던 꼬마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따라서 이 행렬을 보려고 미네아폴리스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틈을 이용해 앞줄을 맡았고, 그 전에는 큼 형의 무등을 타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 앞줄에서 환호를 지르며 흥분했었다. 그는 내가 카메라로 계속 찍어대는걸 보더니 기자냐고 물었다. 난 아니라고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기자인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을 위한 저널을 위해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는. 관광객 일수도 있고, 뉴욕커일수도 있는 나 자신을 기록하는 한 사람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래도 이렇게 나를 기록하는 일이 재미있을 때까지 할 뿐이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9시쯤, 우린 한참을 행렬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행렬이 콜룸부스 써클까지 오려면, 한 시간은 걸리나보다. 이 행렬은 9시에 시작해서 12에 끝이 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한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그 행렬은 한시간 반 정도가 계속되었다. 난 Time Warner 빌딩 바로 앞에 서 있어서 추울때마다 들어갔다 나왔다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넓은 콜룸부스 써클을 감싸는 길목인 이곳은 관람하거나 사진을 찍기에 그렇게 썩 좋은 위치는 아니었다. 행렬이 너무 멀었다. 그리고 많은 장애물들이 있어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가 곤란해서 속상했다. 이곳에 올린 대부분의 사진이 사실은 갔이 갔던 친구의 사진임을 고백한다. 사실 그녀가 약속장소에 늦게 도착해서 거리를 바리케이트를 쳐서 다른곳에 서 있게 되었지만, 사실은 그 친구가 좋은 사진을 많이 건져냈다. 그래서 이쉬움을 달랬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벌써 아주 이름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이 장소에 나와서 기다렸다. 어떻게 그 추위를 견디며 어린아이들까지 있는데 그렇게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사람들은 무슨일이 있을때마다 이렇게 줄을 서는 극성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이제 싼타가 나타날꺼야 그럼 이 행렬이 끝나게 돼. 그렇게 말하고 친구에게 전화하고 이제 싼타가 출현하면 행렬이 끝난대. 그래서 난 사실 싼타의 출현을 눈빠지게 기다렸었다. 드디어 싼타가 루돌프와 많은 사슴들을 이끌고 캐롤과 함께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 가을은 온데간대 없고 겨울의 눈송이와 함께 이 행렬이 끝이 났다.
한동안 몸이 얼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타임워너 빌딩 안에 있는 Whole Food Market 에 들어가 간단히 식사를 했다.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 이날 그나마 이곳이 문을 열어서 다행이다. 미리 Thanksgiving 장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장을 보기도 했다. 나도 전날에 닭이라도 사려고 동네 레스토랑에 들렸는데, 아무것도 없었고 돼지고기 멸쪽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돼지고기라도 사 두었는데, 마침 이 Whole Food Market에 닭이 있었다. 금방 구워낸 아주 따뜻한 닭 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빼앗기지 않으려고 금방 집었다. 사실 이번 Thanksgiving 에는 뉴져지에 사는 친척짐에 가기로 했다가 어떻게 취소되었다. 그래서 난 가까운 친구들, 고향에 가지못한 친구들을 몇몇 모아서 순식간에 저녁을 초대하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레서 난 요리를 해야했다. 그리고 그 이전 리치몬드에 살때에 날 위해 터키를 요리해주던 고마웠던 친구와 Thanksgiving Dinner를 초대해주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땐 잘 몰랐었다. 그게 그렇게 고마운 일 이란것을. 거기에 비하면, 뉴욕생활이 그렇게 정겹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이 미국의 명절을 같이 보내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퍼레이드를 또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좋은것도 있는것 같다.
우리 건물의 많은 사람들이 이 Thanksgiving Day 를 맞아 고향으로 떠나고 이 건물안에 썰렁하다. 대부분 이번 Thanksgiving Day는 Black Friday를 끼고서 있어서 그들은 이번주 일요일이나 월요일까지 고향에 머물다 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덕에 난 이웃집의 고양이 봐주기를 하고있다. 난 Whole Food Market에서 준비해온 재료로 몇가지 요리를 했다. 닭과 돼지고기, 그리고 맥쉬 포테이토, 크렌베리, 커리밥, 스파게티, 등등 아주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미국의 요리가 그렇게 크게 어렵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너무나 다행인건 이렇게 항상 함께할 이웃이 있다는 것이다. 난 이미 너무나 알찬 Thanksgiving 연휴를 보냈다. 그리고 이 연휴에 대해서 이렇게 적을 수 있어서 흐믓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