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진행됐던 한국과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VWP, Visa Waiver Program)이 11월 17일부터 시작됐다. 이에 따라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한결 편하게 미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됐다. 여행사들도 이러한 조치에 발맞춰 여행 상품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비자면제프로그램으로 인해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 앞은 항상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사관 인터뷰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섰던 것이다. 사람들은 복잡한 신청서를 작성하고 다양한 서류를 구비한 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장했다. 미국을 가려는 사람이면 목적이 관광이든, 유학이든, 사업이든 상관없이 모두 이러한 과정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90일 이내의 여행이 목적이고 전자여권을 소지한 사람이면 비자 없이도 미국 여행이 가능해졌다. 비자면제프로그램의 시행에 따라 전자여행허가제 웹사이트(ESTA, https://esta.cbp.dhs.gov)에 간단한 신상 정보를 입력하고 허가를 받으면 입국 준비가 끝난다.
ESTA에 필요한 정보는 성명, 생년월일, 국적, 성별, 전화번호 등 다른 나라의 입국 신고서와 유사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정보를 입력하면 72시간 이내에 입국 허가 여부에 대한 최종 답변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최소한 입국 72시간 전에는 ESTA에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좋고, 한 번 '허가' 판정을 받으면 향후 2년간은 다시 신청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입국 목적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유학, 취업인 경우와 90일 이상 체류하려는 경우, 미국 비자 발급이 거절됐거나 미국에서 추방된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예전처럼 비자를 받아야 한다. 물론 미국 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전자여권으로 교체하지 않고, 만료 기간까지 비자를 이용할 수 있다.
올해 10월까지 비자면제프로그램에 가입된 나라는 유럽 22개국과 일본, 싱가포르, 브루나이, 호주, 뉴질랜드 등 27개 나라에 불과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10월 17일 한국을 비롯해 헝가리, 체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등 7개국을 신규 가입국으로 발표하면서 무비자 여행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인들도 비자를 받지 않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종전에는 30일이던 최대 체류 기간이 11월 17일부터는 90일로 늘어났다.
비자면제프로그램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어서, 미국 국토안보부가 2년마다 행하는 평가에서 불법 체류자의 비율이 증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시행이 정지될 수도 있다. 또 미국 체류 중 비자의 형태를 관광에서 유학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인접한 나라인 캐나다나 멕시코로 갔다가 미국으로 재입국하는 경우에는, 90일 중 이미 사용한 일수를 제외한 남은 날짜만큼만 체류할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한편 비자면제프로그램에 필요한 전자여권은 개인 신원 정보와 바이오 인식 정보를 전자적으로 수록한 전자 칩이 내장된 여권이다. 바이오 인식 정보에는 얼굴 정보와 지문 정보가 수록된다. 전자여권이 도입되면서 대리 신청 제도도 폐지됐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지방자치단체의 접수 창구를 방문해 만들어야 한다.
현재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의 숫자는 연 80만 명 내외로 추정된다. 정부와 여행업계는 비자면제프로그램의 시행으로 미국 입국자의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1년 방미 한국인 숫자가 12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관광협회와 국내 여행업계에서는 3년 뒤에 지금의 2배인 160만 명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을 하고 있다. 일본도 1986년 무비자 미국 입국이 가능해지고 3년 뒤에 입국자가 2배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비자 면제 이후 미국 여행에 대한 관심은 크게 높아졌다. 모두투어가 리서치 전문기관인 엠브레인과 함께 10월 24일부터 11월 4일까지 성인 남녀 1천5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3.7%가 '미국 여행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 답했다.
관심 증가 이유는 비자 발급에 대한 비용과 시간 감소가 72.5%를 차지해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비자 문제로 미국 여행을 꺼렸음을 입증했다. 또 웹투어가 10월 31일부터 열흘 동안 미국 항공권 예약과 문의 건수를 조사한 결과, 평소 같은 기간에 비해 예약은 5%, 문의는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기대감을 바탕으로 많은 여행사들이 미국 여행 상품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투어는 '미 서부 Vs 미 동부'와 함께 전자여권 발급 비용을 지원하고, 1만 원권 상당의 전화카드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12월 15일까지 미국 여행 상품을 환율이 올라가기 전인 2007년 가격으로 판매하는 '고고07'도 실시한다. 자유투어도 하와이, 미국 서부, 뉴욕 등 인기 여행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출시했다. 꿈꾸는여행 역시 개별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뉴욕 자유여행' 홈페이지를 새로이 개설했다.
한편 항공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항공기를 가장 많이 띄우고 있는 대한항공은 운휴 상태에 있던 인천-라스베이거스 노선을 오는 16일부터 주 3회 운항하고, 중순에는 샌프란시스코와 워싱턴 노선을 주 4회에서 7회로 증편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오는 11일부터 시애틀 노선을 주 3회에서 4회로, 16일부터는 로스앤젤레스 노선을 주 11회에서 14회로 운항 횟수를 늘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