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 - 사랑에 관한 사소한.
누군가를 마음에 담으면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뭘까?
아마도 나는 이 질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사람에게 무엇일까? 그 사람은 나에게 뭘까?"
중학교 1학년 도덕교과서 1단원의 '자아정체성-나는 누구인가'의 문제가 또다시 시작된다. 사랑은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나'가 '당신에게 있어서 나'로 그 정의항이 달라졌을 뿐.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속'에서 존재하는 걸로 인식되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게 정답이라는 게 있을 것도 아니고, 사랑의 시작과 흐름, 그리고 끝의 일련의 과정 속에서 계속 바뀌어 가겠지만, 멈출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그건 나도 알 수 없고, 그 사람도 알 수 없다.
몸은 묵직하고 마음은 들뜨는 오늘 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극히 보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본다.
나는 사랑에게 무엇일까, 사랑은 나에게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 앞에 늘 두렵다. 내 속엔 사랑을 믿지 않는 차가운 소년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시간의 흐름 앞에 무기력해지고, 세상의 무게 앞에 지독하게 비겁해지는 '사랑'의 실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내게 '사랑이 내게 무엇이냐'의 답은 '불확실성'이며, '사랑에게 나는 무엇이냐'의 답은 '두려움과 비겁함'이다.
세상엔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고, 난 비교적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사랑에 대해서만은 편협해지지 않고자 한다. 그런데 개인의 이런 마음과 상관 없이 세상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데 많은 장애를 갖는 사랑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런 사랑들은 조금은 위험하고, 그래서 조금은 더 애틋하고, 얼마쯤은 비참하다.
그런 사랑들은 보다 더 불확실하고, 사람에게 더욱 두려움을 느끼게 하며,
사람을 비겁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시작할 때 불꽃처럼 아름답고 화려할지라도, 그래서 꺼져갈 때 그을음도 많은 법일 테니까.그들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때때로 그냥 '욕망'이거나, '도피'이거나, '외로움'이거나, '그녕 그런 어떤 일' 일텐데도, '시대를 넘어서는 위대한 사랑'으로 포장되다가, 포장지가 벗겨지면서 너덜너덜한 현실만 나뒹구는 쓰레기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 아주 비관적이거나 보수적이나 냉소적인 사랑관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겠지만(나 자신조차도) 기실 그렇진 않다.
결론은 이런건데........'사랑'에 관한 고찰과 고뇌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몫은 아니라는 거다. 끝없이 떠오르는 '그 사람에게 나는 무엇일까', '그 사람은 나에게 뭘까?' 라는 질문의 답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사랑관'의 문제다. 무엇이면 어떻고, 무엇이 아니면 어떻겠는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된다. 상처 따위는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 따위는 접어두고, 그냥 사랑하면서 살면 된다. 물론, 책임도 져야하고, 고통도 나누어야 한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가되, 사랑을 한다는 이유로 세상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라고 나는 적절한 선에서 결론을 내려 보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우리가 사랑일까'를 다 읽고 나서일까, 가을의 무게를 느껴서일까..........쓸데 없이 생각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