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은 '부를 소(召)'와 '목숨 명(命)'자로 구성된 글자로 국어사전적인 의미는 '왕의 명령으로 부름 받는 것'입니다. 철학자 니체는 인간은 2가지 길로 인생을 산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자기 스스로 인생의 목적을 찾고 살아가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인생의 길을 찾지 못해서 다른 사람이 발견해 놓은 인생의 목적을 종속적으로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창조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사느냐, 종속적인 인생을 사느냐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며, 젊음과 땀을 받치며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상가와 종교가들이 이 인생의 문제를 연구했고 이들의 사상과 학설들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인생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확설이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은 인간이 단세포로부터 세포 분열과 진화의 단계를 거쳐 인간이 되었다고 하는 주장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을 믿지 않습니다. 다음은 나의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서 계획 되었고 주어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사는 목적과 할 일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좀 더 분명하게 그 분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기 전에 이미 나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때에 따라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인생은 결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닌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뜻과 섭리를 가지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챤'이라고 하는데 본래의 이름은 '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는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의 사건을 네가지 특징으로 요약하는데, 첫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부르는 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는 것으로 내가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을 통하여 어떻게 감동시켜 주시는지, 찬양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어떤 영감으로 다가 오시는지, 말씀을 통하여 내 마음에 어떤 감동과 도전을 주시는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부르심의 특색입니다. 둘째는 존재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부르실 때 그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존재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구원과 거의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도 바울을 부르실 때, 삭개오를 부르실 때 이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직 죄인 가운데 있을 때 나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큰 차이입니다. 세상에 있는 다른 종교는 인간이 수고하고 노력하여 그들의 신에게 나아가지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눈물과 죄악을 보고 먼저 달려 오신 것입니다. 넷째 성경의 부르심의 특징은 '예'와 '아니오'로 대답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 많은 소명의 사건들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지으신 분으로 생명 역시 내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백성을 돌보기 위해서 선지자를 세워야겠다는 음성에 즉각적으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즉각적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응답하지 못하고 고민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이사야는 죄인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스랍 중 하나가 단의 숯불을 취하여 입에 대고 죄를 사해줍니다. 그러므로 잘못과 죄로 인하여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결케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소명에는 두가지 단계가 있는데 일단계는 소명을 발견하는 단계로 구원안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명은 예수 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는 콜링(calling)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둘째 단계는 1차 소명에서 받은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 나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직업은 삶의 방편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직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실천의 장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1차의 소명에만 만족하고 머물러 있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님과 전혀 관계 없는 삶을 삽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1차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즉, 주일날 1차 소명을 확인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2차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2차 소명은 완전한 소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소명을 가지고 사는 삶과 소명이 없이 사는 사람은 그 종착역이 다릅니다. 소명이 있는 인생은 생명의 길이고 소명이 없는 인생은 죽음의 길입니다. 그렇지만 소명을 가지고 사는 삶과 소명 없이 살아가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실체는 다릅니다. 소명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에로스' 사랑으로 이 사랑은 자신의 욕망 가운데 만족을 취합니다. 에로스 사랑의 본질은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카페'의 사랑으로 이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이 사랑의 본질은 진리안에서 만족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나의 소유가 아니라 내 것을 나눔으로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