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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배규상 |2008.12.06 09:45
조회 55 |추천 1

지은이:무라카미 하루키     역자:임홍빈      출판사: 문학사상사

 

줄거리: 2002년 『해변의 카프카』이후 2년 만에 발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신작. 하루키의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기도 하며, 일본에서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은 하루키의 종전 작품들과는 크게 다른 소설적 구조와 주제를 보여주며, 두드러지게 참신한 작품 분위기와 표현 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하루키 문학의 새로운 전환을 알리는 획기적인 작품이 되리라고 평가받고 있다.

대략 밤 12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백설공주 같은 미모의 언니와, 머리는 뛰어나지만 외모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동생이 중심이 되어 인간과 사회의 축소판과 같이 펼쳐지는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젊은 남녀, 자매 형제, 부부, 샐러리맨에서부터 암흑세계의 사람 등 갖가지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가운데 폭력의 공포가 도사리고 부조리가 휩쓸고 정이 메말라가는 현대사회를 집요하게 그리며 희망의 가능성을 묻는다. 제임스 조이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그린 하루 낮에 일어난 이야기 대신 하룻밤에 일어난 이야기로 명작들에 비견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메모:

때때로 나는 내 그림자하고 경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끝까지 도망칠 수가 없어. 자기 그림자를 뿌리칠 수 없는 것처럼."(233쪽)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억이 현실적으로 중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지. 단지 연료일 뿐이야. 신문의 광고전단지나, 철학책이나, 에로틱한 잡지 화보나, (...) 그저 연료일 뿐이지."(235쪽) 사람들의 감성이란 때로 섬뜩할 정도로 비슷하게 작동하곤 한다. 무라카미 하루끼의 신작 『어둠의 저편』(문학사상)을 통해 새삼 확인한 사실이다. 책을 읽으며 드문드문 밑줄을 쳐두었던 문장들이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감상노트'와 벌써 '부지런한 리뷰'들에서 고스란히 인용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한편 반갑고 한편 씁쓸하다. 무릇 소설이란 보다 다양하게 읽히고, 보다 다양하게 해석되어야 할 상징덩어리가 아니던가. 하물며 하루끼의 소설은... 뭔가 심오한 의미를 지닌 듯한 위의 두 인용문들은 뜻밖에도 소설의 주인공이나 주요 등장인물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아니다. 물론 이제 막 삶과 사랑의 의미를 모색하기 시작한 주인공 마리와 다카하시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오는 건 무리였을 테다. 그러나 그렇기로 굳이 인생의 실패자로 묘사한 러브호텔 종업원 '고오로기'(귀뚜라미)의 입을 빌릴 이유까지야 있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바로 하루끼 소설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작중 별반 비중없는 인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 화두를 던져놓고, 주인공들은 그 화두에 이끌려 시종 고뇌하고 방황하며, 숨차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끝부분에 다다라도 뚜렷한 결말이 없는... 마리와 에리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자매다. 대단한 미모를 가진 언니 에리에 비해 동생 마리는 보잘 것 없는 외모를 가졌다. 그러나 정작 둘을 갈라놓은 것은 그런 외견상의 대비가 아니라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둘은 특히 어둠 속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언니 에리는 그저 잠의 세계에 빠져 있을 뿐이다. 반면 동생 마리에게 어둠은 곧 삶의 의미를 모색하기 좋은 경험의 장이자 호기심의 천국이다. 그러나 잠과 일탈의 공간에 들어앉은 '일상의 어둠'은 마리와 에리가 한 때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던 '절대적 어둠'의 공간을 부각하기 위한 '보색'의 어둠일 뿐이다. 일상의 어둠 너머에 있는 절대적 어둠, 즉 생의 시원으로서의 어둠이 존재했던 것이다. 소설의 주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에리와 마리는 생의 시원始原, 즉 한 자궁을 통해 세상에 나온 근원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단순 관념과 편견이 지배하는 현실세계에서 서로의 일체감을 상실한 채 괴로워한다. 그러나 마리는 하룻밤 일상의 어둠 속에서 배회하며 이러저러한 삶의 군상들과 만나고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면서 비로소 '시원의 어둠'(고배 대지진 당시 고장난 엘리베이터 안의 절대적 어둠 속에서 느꼈던 일체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그것은 곧 언니 에리와 자신 사이에 놓여 있는 마음의 벽이 곧 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서두의 인용문들은 스스로 해답을 내놓게 된다. 인생은 과거의 기억을 연료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때때로 그 기억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결국 기억이란 삶의 연료이자 치유해야 할 상처이기도 한 셈이다. 에리와 마리는 상처이자 연료로서의 기억을 망각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질감과 결핍감으로 고민해 왔다. 그러나 마리가 어린 시절 느꼈던 일체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자매는 관계복원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무릇 현대 도시인의 삶이란, 무수한 기억의 실핏줄이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낸 혈관들의 관계망에 다름 아니다. 그 무수한 혈관이 도시의 어둠 속에서 흠잡을 데 없이 미끈한 몸의 구석구석까지 뻗어, 피를 순환시키고, 쉬지 않고 묵은 세포를 새 세포로 갈아넣음으로써 끊임없이 소모와 충전을 거듭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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