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인구의 35%가 HIV보균자인 국가 케냐. 비단 이것은 케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극심한 기근과 질병, 내전, 부패는 어느덧 아프리카의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각각의 낯뜨거운 브랜드는 서로 밀접하게 촉매 역할을 해주며 악순환을 만든다. 아프리카 르포 기사를 접하면 간단하게 알 수 있는 검은 대륙의 현 주소이다.
『콘스탄틴 가드너 』는 이러한 주소에 직면한 아프리카를 대리하여 서양 자본의 침략을 고발한다. 실제로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는 아프리카를 상대로
"아프리카가 마크한 높은 수치의 에이즈보균률은 제약회사의 오리지널 약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약품으로 바꾸지 않으면 에이즈 지원기금을 축소하겠다"고 협박하며 비싼 약물의 강매를 촉구했다고 한다. 또한 수시로 제약협회는 약물가격의 인상을 수시로 요구하며 로비활동을 벌이는 건 음모도 아니다.
거대 제약회사와 연결된 부패한 아프리카 정부.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관의 칼을 휘두르는 영국정부. 위의 기사 내용들은 영화의 시놉시스 그 자체이다.
아마도 진실은 허구보다도 더 무서울 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머핀 하나를 나눠 주고 싶은 열정적인 혁명가 테사의 의문의 죽음. 아내의 비밀과 그로 쌓인 오해에 복잡해 하는 저스틴. 영화는 이 부부의 눈으로 아프리카 현실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아내의 진실에 다가가는 저스틴을 통해 현실을 고발한다. 스릴러를 놓치지 않으면서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강한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이다.
테사는 저스틴에게 진료 받기위해 먼 길을 걸어온 아프리카 아이를 도울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저스틴은 "그건 우리의 일이 아니다. 하나 둘 돕자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라고, "제도적 차원의 근본적 해결이 필요함을 주장하며 거절한다. 그러나 un조종사에게 큰 돈을 쥐어주며 아프리카 어린이를 구해 줄 것을 호소하는 저스틴의 변화는 조금은 숙연해진다.
난 소극적인 인도주의자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세계 어딘가엔 이러한 영화가 큰 의미로 다가올 누군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논외로 구세군 냄비에 손을 뻗어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올해는 주변의 어려움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도 의미라면 의미 일테다.
[홀로 영화 기억하기
다이프락사, 수단, 케냐, 제약회사, 동성애(아놀드), 샌디(위험한 사랑)
KDH, 쓰리비, 히포(약물인상저항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