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지구온난화로 위험에 처한 것은 북극곰만은 아니다. 기후변화에 따라 세계각지의 식물들도 빠르게 사라져 간다. 영국 런던 남부의 큐 왕립식물원 내에는 이렇게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의 종자를 보관하는 종자(種子)은행이 있다. 지난 2000년부터 식물원의 특별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된 밀레니엄 종자은행(the Millennium Seed Bank)가 그것. 최근 AP 등 해외언론은 밀레니엄 종자은행의 업적을 소개하며 지구온난화가 진행함에 따라 이곳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 세계 15억개 식물종자 보관…2020년까지 전체 식물의 4분의1 보관이 목적
전 세계 종자은행 1000여곳 가운데 밀레니엄 종자은행은 가장 규모가 크고 그 업적 또한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이곳에 보관된 전 세계 식물 종자는 약 2만5000개 식물종의 15억 개가 넘는 종자가 보관돼 있다. 폴 스미스 대표는 “이곳은 세계 식물의 다양성이 결집된 핫 스폿”이라며 “2020년까지 전 지구 식물의 4분의1가량을 저장해 그중 반을 온실에서 기르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종자은행 측은 ‘남아프리카 파우카리아’ 등 멸종위기 식물을 우선대상으로 전 세계에서 종자를 공수해 온 후 나중에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저온저장고에 보관한다. 따라서 은행의 전반적인 실내온도는 매우 낮다. 사람이 들어가 있을 경우 15분 이내 심부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해 저체온으로 사망위험에 놓일 수 있어 항상 감시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저온저장고에서 종자들은 1000년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이렇게 보관된 종자들은 필요할 때 발아시켜 식물의 멸종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종자은행 연구팀은 200년이 넘는 씨앗도 발아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은행 측은 1803년 한 네덜란드 상인으로부터 수집한 핀쿠션 꽃(레우코스퍼뮴 속)을 발아시켜 꽃을 틔우는 데 성공한 바 있다.
▶200년된 씨앗도 싹 틔워…멸종식물 복원에 결정적 기여

또한 종자은행은 씨앗을 수집하는 것뿐 아니라 각국으로 보내기도 한다. 사막화가 심화되고 있는 파키스탄이나 이집트, 바닷물을 막아 만든 호주 간척지, 훼손된 마다가스카르 섬의 숲 등에 필요 종자를 보내 각종 실험이나 복구를 돕는 것이다. 이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중요 환경 및 인권 운동으로 그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어 세계 50개국 120개가 넘는 기관들이 밀레니엄 종자은행의 활동에 협조하고 있다.
이밖에 종자은행에 보관된 수십억 개의 씨앗들은 앞으로 의학?과학 연구에 귀중한 자원이 될 귀중한 보고로 여겨지고 있다. 스미스 대표는 “20년 전 인류는 ‘로지 페리윙클(Rosy Periwinkle)’이란 식물이 소아 백혈병 치료에 쓰일 줄 전혀 몰랐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이곳에 보관된 종자들의 의학적 이용 가능성은 상당히 큰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세계 식물이 멸종되기 전 종자은행에 보관해야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세계 과학자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활동” 극찬
그러나 지구온난화 외에도 종자은행의 활동을 위축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전 세계를 위협하는 경제난이다. 종자 하나를 운반 데만 해도 3000달러 이상이 들어가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종자들을 보관ㆍ연구하는 데 연간 150만 달러 이상이 들어간다. 스미스 대표는 “다음 10년간 1500만 달러가량이 필요한 데 자금상황이 악화되는 상황”이라며 “현재 금융위기로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 것으로 보여 더욱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2000년 7200만 파운드 규모로 시작된 종자은행은 현재 영국 정부 및 기업, 개인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밀레니엄 종자은행의 활동 가치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영국 워윅 대 데이비드 애스틀리 교수는 “이 프로젝트의 무궁무진한 응용가능성을 생각할 때 돈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귀중하다”면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 식물 종을 지키려는 노력도 소용없어지므로 전 세계가 협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전 세계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의 종자를 수집ㆍ보관해 싹을 틔우는 영국 밀레니엄 종자은행. 이곳에 보관된 15억개의 종자들은 멸종식물 복원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진=큐 왕립식물원/www.kew.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