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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뉴요커가 말하는 뉴욕생활

주진영 |2008.12.23 16:24
조회 500 |추천 0

진짜 뉴요커가 말하는 뉴욕생활

뉴욕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 셀러브리티의 면면과 진짜 뉴요커가 말하는 그들의 행방.<STYLE type=text/css>  


NEWYORK
뉴욕은 블랙으로 빼입은 모델과 디자이너, 아트 딜러와 영화인의 도시이다. 맨해튼이라는 작은 섬은 그들이 내뿜는 창작의 에너지로 들끓는다. 그래서 뉴욕에 살다보면 누구라도 유명인이 되는 행운과, 그들과 마주치는 행운, 둘 중 하나는 얻게 된다.

셀러브리티와의 최초의 만남은 언제나 드라마틱하다. 문득 횡단보도에서 고개를 들면 게스의 청바지 모델이 길을 건너고 있다. 90년대의 케이트 모스나, 2000년대의 지젤 번천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엔 모델 출신의 건장한 라틴계 남자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 목격되고, 다음엔 디카프리오의 리무진을 오르내리는 장면이 잡지에 도배되다가, 마침내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섹시 걸이 되어 대형 광고판에서만 존재하는 스타가 된다.
하지만 지의 단골손님인 할리우드 스타들은 이스트 빌리지나 소호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소호에서라면 패리스 힐튼을 쫓는 파파라치의 틈에서 디카를 누르는 기회도 종종 포착하게 된다(패리스 힐튼은 요즘 파파라치의 가장 큰 표적이다. 그들 틈에서 경쟁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짜릿함이란!).

그날, 내가 매일 들르는 소호의 올리브 베이커리에서 막 커피와 빵을 사들고 나왔을 때, 항상 조용하기만 하던 옆 가게의 뮤직 포토 숍이 유난히 웅성거렸다. 내 머릿속엔 ‘누가 떴구나!’ 하는 직감이 스쳤다. 아무리 큰 고글 선글라스와 깊은 모자로 얼굴을 가려도, 창문 너머 비치는 그녀의 갸우뚱한 표정과 잡지 포즈의 특이한 걸음걸이는 영락없는 ‘패리스’였다. 커다란 흰색 고글과 레깅스처럼 착 달라붙은 청바지, 화려한 액세서리에 샤넬 핸드백까지 모두 그녀 스타일이었다. “저거 패리스 아냐?” “뭐, 누구? 패리스?” 나도 얼른 디카를 꺼내 줌을 맞추려는데, 순간, “비켜요, 비켜!” 앰뷸런스보다 더 크고 긴박한 목소리가 우르르 몰려오더니, 번개처럼 터지는 카메라 세례와 몸싸움에 밀려 순식간에 자리를 뺏기고 말았다.




소호에는 매일같이 골목을 뒤지는 파파라치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서로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일단 스타가 떴다 하면 대여섯 명의 카메라 군단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 즉각적인 포위망을 구축한다. 그렇게 해서 과 를 비롯한 수많은 타블로이드 신문과 잡지에는 매일 똑같은 장소에서 찍은 스타 사진이 실리게 된다. 소호의 프린스 스트리트에는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스타 사냥꾼들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내가 6개월째 보아온 어느 파파라치는 매일 소호를 헤집고 다니며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미리 가게 주인들을 꼬드겨 놓고 스타들이 뜨자마자 제보를 받는 식이었다.

이스트 빌리지에서는 낡은 티셔츠와 허름한 카키 바지 때문에 자칫 배우 지망생처럼 보이는 에단 호크와 휴 잭맨을 만났다. 옷차림만 봐서는 죄다 아티스트인 이 동네에서 벙거지 모자 하나만 있으면 누구라도 쉽게 변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스트 빌리지의 세인트 마크 플레이스에 있는 작은 액세서리 가게에서 쇼핑을 하던 맷 데이먼은 내 앞에서 은팔찌 하나를 놓고 서슴없이 물건 값을 흥정했으며, 주인은 그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그는 작은 키에 그 흔한 하버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어서, 나 또한 그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갑자기 디카를 들고 들이닥친 일본 여대생들에게 포위되자, 황급히 20불짜리 지폐를 던져 놓고는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세계 어디에서든 디카로 무장한 종족은 일본인 아니면 한국인이다). 물론 그들이 혼자 다니는 법은 없다. 언제나 자신의 보호막이자 대변인으로서 소속을 알 수 없는 친구나 에이전트 매니저, 무명 영화감독 등을 하나씩 ‘달고’ 다닌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맨해튼의 셀러브리티 천국은 보통 사람들의 출입이 자연스럽게 제한되는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들이다. 다니엘(Daniel's;-뉴욕의 유명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는 오프라 윈프리나 다이안 소이어의 옆 자리에 앉아 그녀들의 토크쇼에 얽힌 오프 더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데, 일단 방송인들은 화면에서보다 훨씬 더 두꺼운 화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내가 만나본 오프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3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두꺼운 청색 아이섀도와 평생 요리 한 번 안 해본 듯 긴 손톱의 매니큐어가 그녀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웃을 때마다 진한 화장 아래로 드러나는 깊은 주름살은 50세를 넘긴 여자의 자연스런 나이테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간 잡지 (오프라 윈프리 자신이 매달 표지 모델로 등장하는 그녀 소유의 잡지)가 얼마나 많은 컴퓨터 작업으로 완성되는지, 그 실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조카를 픽업하러 학교에 갔다가 우연히 수전 서랜든과 함께 학부형이 되는 재미를 맛보고 돌아온 나의 남편은 상당히 친밀한 관계로 그녀를 회상한다. 부스스한 퍼머머리에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로, 두툼한 파카 위에 목도리만 칭칭 감고 나타난 그녀는 나의 남편과 함께 학교 공터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들이 공차기를 하는 1시간 내내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모든 뉴요커들이 그렇듯, 그녀도 날씨 얘기로 말문을 튼 다음 자기 아이가 요즘 무슨 책에 푹 빠졌는지, 그건 어느 서점이 젤 싸다느니, 다음 필드 트립 장소는 어디가 좋겠다느니, 하는 식으로 줄곧 학부형끼리의 대화를 즐겼단다. 이럴 때 “저 당신 팬인데요. 이번엔 어떤 영화 찍으세요?” 라고 묻는 건, 정말이지 예의가 아니다.

그 어느 도시보다 커뮤니티 의식이 강한 뉴요커들에게 셀러브리티는 오랜 세월 같은 뉴욕 땅에 거주하는 동시대의 주민으로 인식되었다. E.B. 화이트의 에세이 에서 로저 앤젤이 언급한 것처럼, 뉴요커들은 맨해튼 거리를 걷다가 커다란 모자 아래로 내비친 가르보의 얼굴을 알아보는 일이나, 폴 뉴먼이 바로 옆 자리에서 멜론 주스를 따르던 시절을 여전히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그는 현대의 뉴욕이 싸구려 스트리트 문화와 파파라치에 의해 오염됐으며, 그래서 모든 셀러브리티들은 이제 다 죽고 없거나 햄튼(Hampton;-뉴욕의 롱아일랜드 섬에 있는 유명한 휴양지로 할리우드 스타와 셀러브리티들의 별장이 가득한 곳)으로 도망갔다고 개탄했다.

때로 뉴요커들은 외지인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자만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며, 첨단의 세련됨으로 겉치장을 한 채(유니폼이라도 되는 양 모두가 검정색 옷을 입고서) 열띤 목소리로 돈과 셀러브리티만을 얘기하는 종족으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뉴욕은 생각보다 작은 공동체로 구성돼 있으며, 여전히 문만 열고 나가면 정겨운 분위기의 레스토랑과 작은 베이커리, 단골 세탁소가 가득한 곳이다. 카페에는 한결같이 나 를 읽는 주민들로 북적이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오늘자 뉴스와 이벤트, 맨해튼 구석구석의 정보를 듣는다. 의 필자들은 이미 뉴욕에서 알아주는 유명인사이며, 그들이 쓴 레스토랑 크리틱은 한 요리사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권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뉴요커는 를 보고 찾아온 관광객들처럼 카페 파스티스(Pastis)나 레스토랑 타오(Tao)에 앉아 막연히 셀러브리티의 행방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파바로티를 만나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로 달려가고, 에단 호크의 연극을 보러 타임스퀘어에 나가며, 전시 첫날 매튜 바니를 만나기 위해 구겐하임의 멤버십에 가입한다. 때로 강연회 일정을 훑어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셀러브리티를 만나 함께 토론할 기회를 찾는 것도 뉴요커들의 일상이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체인 서점인 ‘반스 앤 노블’에 가면 매달 새로 나온 책의 작가들과 만날 수 있는 행사 스케줄이 가득하다. 그곳에서는 말로만 듣던 당대 최고의 문필들과 함께 스타벅스 커피 한잔을 놓고 담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우디 앨런이 왜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는지, 뉴욕 필하모닉의 새로운 지휘자가 누가 될 것인지, 새로운 무역센터 빌딩은 누가 건축할 것인지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인다. 진정 뉴요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이며,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닌 문화적 가치인 것이다.

 

 




NEWYORKER
뉴요커와 셀러브리티의 교류를 체험하기 위한 나의 계획은 해마다 에서 개최하는 문화 강연회인 와 유태인들의 커뮤니티 센터 의 강연 스케줄을 뒤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신문에 난 행사 스케줄에는 올해의 게스트로 미술가 척 클로스와 제임스 로젠퀴스트, 작가 애미 탠, 건축가 렘 쿨하스, 발레리나 팔로마 헤레라 등의 당대 아티스트를 비롯, 아네트 베닝, 빌 머레이, 우피 골드버그, 수전 서랜든, 키퍼 서덜랜드 등의 영화배우와 다이안 본 퍼스텐버그, 질 스튜어트, 노마 카말리 등의 패션 디자이너, MTV의 VJ 존 카메론 미셸과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까지 각계각층의 스타들이 초대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을 만나는 일은 인터넷으로 구입한 25~35달러짜리 티켓 하나로 단숨에 가능했다. 이 문화의 현장은 한마디로 전율이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두 눈으로 생생히 관찰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는‘뉴요커’라는 종족이 나에겐 더 큰 충격이었다. 여지껏 거리에서 셀러브리티를 목격하던 순간과는 확실히 다른 감흥이었다. 토론회장은 여느 오페라 극장 못지않은 지적인 아우라로 넘쳐흘렀으며, 거기엔 그 어떤 부산함도, 요란한 카메라 플래시도, 사인공세도 없었다. 사내가 사는 집 앞의 허름한 예술전용 극장 필름 포럼(Film Forum)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페이즐리 문양의 반다나를 머리에 두른 사진가 브루스 웨버를 마주쳤을 때나, 그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러 온 버버리 트렌치코트 차림의 영화배우 이자벨라 롯셀리니를 목격한 날처럼, 나는 또다시 충동적으로 카메라를 꺼내들었지만 그런 우매한 짓을 저지르기엔 청중들의 매너가 압도적으로 우월했다(여기선 그 어떤 ‘기자 정신’도 용납되지 않았다).

대신, 나는 맨 앞줄에 앉아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을 지켜봤다. 뉴욕의 명성 있는 평론가들이 진행하는 인터뷰 방식에서 한 수 배웠으며, 학생부터 노인까지 를 능가하는 다양한 관객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들이 나누는 애정 어린 질문과 대답은 한국에선 보기 힘든, 진화된 문명 자체였다.
아네트 베닝은 영화 에서처럼 여전히 짧은 커트 머리로 무대에 등장했는데, 브라운 가죽 재킷과 에르메스 스카프를 두른 모습이 아침 생방송 때와 같은 옷차림이었다(아마도 LA에서 날아온 후 줄곧 바쁜 스케줄이었나 보다). 그녀는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답게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며 뉴욕 아줌마들의 수다에 기꺼이 대응했고, 마이클 더글러스와 함께 출연한 영화 을 1백 번도 넘게 봤다는 어느 40대 남성 팬의 찬사가 이어지자 청중들은 기립 박수를 선사했다(칭찬만큼은 언제나‘넘치도록’하는 게 뉴요커의 방식이다).

디자이너 다이안 본 퍼스텐버그는 뉴욕 사교계의 거칠고도 세련된 입담으로 패션 피플들을 압도했다. 그의 남편이자 미디어 재벌 빌리 딜러와의 결혼 이야기를 비롯, 뉴욕 사교계를 주름잡는 여러 셀러브리티들의 뒷얘기가 디자인 강연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고, 핑크 스웨터에 꽃자수가 놓인 카키 바지를 매치하는 세련된 게이 스타일리스트 칼슨 크레슬리는 남성 패션에 대한 달변을 늘어놓았다. 마리오 바탈리는 푸드 TV에서처럼 연신 자상한 해설과 함께 이탈리안 요리법을 전수했는데, 사실 그의 스케줄대로라면 그가 언제 요리할 시간이 나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실제로 그가 소유한 뉴욕의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보(babbo)’에서 그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화가 척 클로스는 줄리앙 슈나벨과 루카스 사마라스 같은 동료 작가들을 화제로 자화상에 담긴 인생과 예술을 얘기했다. 그는 40대 이후 내내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강연이 끝나자마자 그에게 달려갔고, 평생 처음 셀러브리티의 사인을 받았다. 내가 명함을 건네며 “작년 메트로폴리탄 전시를 직접 취재한 바 있는 한국의 기자인데, 당신 같은 위대한 예술가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다”라는 인사를 건네자, 그는 슬쩍 미소로만 답을 했다. 50년쯤 후, 앤디 워홀보다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을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반면 내가 그렇게도 기대했던 건축가 렘 쿨하스는 다소 냉정했다. 훤칠한 키에 프라다로 보이는 블랙 수트와 블랙 셔츠를 입은 그는 말끔한 옷차림만큼이나 청중을 긴장시키는 묘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 플리츠커 프라이즈 수상자들의 최근 건축 경향에 관한 그의 크리틱은 전문 용어와 시니컬한 네덜란드식 발음 때문에 솔직히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는 길게 늘어지는 청중의 질문에 “짧게 해 달라”고 잘라 말했고, 역시나 사인회도 취소한 채 바쁘게 사라졌다. 마치 진정한 셀러브리티는 그래야만 한다는 듯.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소호와 첼시를 거닐며 셀러브리티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유명인을 보고도 더 이상 호들갑을 떨지 않아야 진짜 뉴요커가 된다는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관광객의 눈에는 절대 띄지 않는 게 뉴욕 셀러브리티이다. 일명 ‘섹스 앤 더 시티 투어’라 불리는 관광 코스가 매일 케리의 단골 숍과 레스토랑을 훑고 지나가지만, 장담하건대 거기엔 뉴요커다운 면모라곤 하나도 없다.
뉴욕은 이방인에게 냉담한 도시이다. 브로드웨이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홀려 언제라도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관광객들에게 뉴욕은 언제나 멋진 상품일 뿐이다. 뉴욕의 셀러브리티가 다 어디로 갔는지, 진짜 뉴요커들만이 알 일이다.

글 | 지유정(뉴욕 통신원) 편집  | justi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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