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 코미디 / 111분 / 감독: 하기호
(★★★★☆)
1930년대, 경성. 일제강점기지만 조선 유일의 라디오 방송국 경성방송국 스튜디오엔 나른한 분위기가 감돈다. 아버지의 힘으로 PD 자리를 꿰차고 있는 '로이드-류승범'는 가끔씩 들려오는 뉴스나 짜투리 방송에 마이크 전원을 켤 뿐 방송 일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아나운서 '만섭-오정세'이나 가끔씩 스튜디오에 와 풍월을 읊는 기생 '명월-황보라'이 이따금 방송국의 정적을 깨는 돌출 행동을 하지만 시대와 벽을 쌓은 듯 심심하게 굴러가는 방송국에 별일은 없다.
1930년대 경성, 는 역사의 아픔을 싹 거둬낸 뒤 남겨진 피곤함과 공허함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방향을 찾지 못한 인물들이 모두 한량이 되어 방송의 주파수를 돌리고 이야기는 나른한 리듬을 타고 천천히 흘러간다.
시작부터 끝까지 별다른 기복이 없는 영화 의 사건은 '로이드'가 시나리오작가 '노봉알-김뢰하'을 만나면서 벌어진다. 봉알의 글을 보고 라디오 드라마를 떠올린 '로이드'는 방송국 기존 멤버였던 '명월', '만철'에 재즈 가수 '마리-김사랑', 칼피스 배달 소녀 '사환-고아성', 독립투사란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음향 담당 'K-이종혁'등을 더해 드라마 팀을 구성한다. 조선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란 타이틀을 걸고 시작된 프로그램. 방송이 의외의 성공을 거두면서 평소엔 무관심이던 방송국장이 '로이드'를 압박한다. 국장은 국민들을 고취시킬 수 있는 엔딩으로 드라마를 종결하라고 명한다. '로이드'는 극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갈등에 처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별다른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
에는 두축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나는 '로이드'가 이끄는 창작과정이고 또 하나는 'K'가 숨기고 있는 도시락 폭탄 투하 작전이다. 하지만 는 정작 두 번째 이야기의 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K'의 이야기를 단지 영화의 판타지적인 엔딩을 위해 단순하게 사용한다. 다이너마이트를 던져 불꽃축제를 즐기는 의 엔딩은 의 팝콘장면을 연상케 하는데 그 판타지가 별로 쾌감을 주지 못한다. 역사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모두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는 스스로 취사 선택한 역사적 에피소드를 소홀히 한다. 'K'의 드라마가 사라진 채 달콤한 결말만이 하늘에서 빛날 때 영화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