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에는
항상 눈앞에 시간이 무진장으로 남아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마당에 널어 햇볕을 쪼인 이불의 보송보송한 단내.
지금부터 무슨 일이든 적어넣을 수 있을 것 같은 달력의 여백.
아직 펼쳐보지 않은 하얀 페이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가져다줄 행복한 예감으로 가득하다.
한 달만 지나면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되겠지만
해마다 똑같은 행복한 예감으로 가득한 것을 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진보가 없는 생물인가.
여름방학의 시작이 행복한 것은, 뭔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온다리쿠 / 굽이치는 강가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