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오는 생활 속 우울증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특수한 타입의 우울증이 있다. 학문적으로는 우울증으로 분류되어 있진 않지만, 생활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병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좀 우울하긴 해도 우울증은 아니야' 라고 생각하거나 '여기저기 아픈데 왜 멀쩡하지?' , '겨울만 되면 우울해' 라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의 병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 1. 분명히 아픈데 멀쩡하다니, 우울증으로 보이지 않는 우울 = 가면 우울증 >
: 자주 듣는 말인데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가면'이라는 것을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얼굴이 마치 가면처럼 무표정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면 우울증'의 '가면'은 정확히 얘기하면 '덧씌워진' 우울증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정말 우울증인데, 겉으로 봐서는 우울증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가 '우울증으로 보이지 않는 우울증'일까? 우울증에 걸리면 권태, 두통, 손발 저림이나 통증, 미열 같은 막연한 몸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심해지면 우울한 기분보다는 오히려 건강의 문제가 더 두드러진다. 이때는 정신과보다 내과 같은 곳에서 먼저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가지 검사를 해도 전혀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이런 유형 환자 대부분은 '원인 없는 병' 때문에 더 큰 병원을 찾아다니며 오랫동안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나중에 보니 '그 환자는 처음에 전혀 우울증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사실은 우울증이었다'고 생각해 '가면 우울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신과 전문의가 이런 환자를 진찰했다면 '가면'이라는 말은 붙이지 않고 바로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면 우울증은 특별한 우울증이 아니라 '알아차리지 못한 우울증' 이라고 나중에 붙인 진단명일 뿐이다. 의사의 처지에서 본 '업계 용어'에 지나지 않으며, 환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개념은 아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지만, 특히나 이 유형은 자신의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전달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강하고, 그런 생각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의사 앞에서도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신과가 아닌 다른 과에서 정확하게 우울증을 진단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 2. 학교에 가기 싫은 아이 = 어린이 우울증 >
: '등교거부'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거부'라는 말에는 학교가기를 적극적으로 거절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사실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는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으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학교를 가지 않는' 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울증은 자아가 확립된 어른한테만 생기는 병이고 어린이한테는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울함의 심리 속에는 '자신의 과거가 후회스럽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 지배적이므로, 이런 것은 어른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직감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어린이한테도 심각한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 우울증은 활발하게 놀던 아이가 갑자기 집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거나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말 없이 집에만 있는 등 예외의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짐작 가능한 일이다. 물론 어떤 병이든지 호발연령, 즉 어떤 병이 발생하기 쉬운 나이가 있다 우울증은 중년 이후이다. 우울증의 경계는 어디일까? 어떤 상황에 부딛쳤을 때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괴로움이 생기고, 그 괴로움 때문에 불안, 우울, 자율신경증상이 생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신경증이다. 이런 상태는 아주 인간적인 것으로, 어느 연령대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아이에게는 학교에 가는 것이 가장 요구되므로, 아이의 신경증은 학교에 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기가 가장 쉽다. 몇가지 이유 때문에, 이를 테면 과잉보호로 가정 이외의 세계에 접할 기회가 적었다거나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성격이 아닌 경우, 아이는 신경증 상태가 되어 학교에 가지 않게 된다.
< 3.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할지 겁이 나, 후회와 불안 속의 나날 = 산후 우울증 >
: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에 발생하는 일시적인 우울증을 말한다. 까닭 없이 슬프고 눈물이 나오는 것, 걱정스러운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비관적이고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은, 우울 그 자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산후 우울증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우울증 진단 기준에 들어맞을 정도로 중증이 아니며, 우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하다' 거나 '아마 괜찮아질 거야' 라는 생각을 하는 등 어딘가에 희망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우울증과는 다르다. 호르몬 분비 이상과 출산이라는 큰일을 마친 후의 심리적인 부담 때문에 생긴 반응으로 볼 수 있으며 우울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산후 우울증이 진짜 우울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조사 결과에서는 산후 우울증의 15% 정도가 우울증으로 이행한다고 한다. 산후 우울증이 두 주 넘게 지속되고, 우울해하는 정도가 더욱 무거워진다거나, 자살하겠다는 말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고집스러워지면 주의를 해야 한다. 제대로 치료만 하면 산후 우울증의 경과는 결코 나쁘지 않다.
< 4. 과연 성격 문제일까?, 의외로 많은 = 비정형 우울증 >
: '비정형'이란 '전형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전형적인 우울증에 대해서는 우울증 진단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비정형 우울증은 기존의 우울증 진단 기준과는 다른 '독특한' 점을 보인다.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특색을 갖춘 경우를 비정형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다.
① 보통 우울증은 좋은 일이 생겨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데, 아주 작은 좋은 일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등 주변의 상황에 따 라 기분이 달라진다.
② 거의 모든 우울증에서 보이는 심한 불면이나 식욕부진이 없고, 오히려 과수면과 식욕과다를 보인다.
③ 우울증에 걸리기 전부터 인간관계에 매우 민감하며 주위 사람들이 치켜세워주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매우 불안해한다.
④ 몸에 납덩이라도 들어 있는 듯 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일이 잦다.
위의 사항들이 전형적인 비정형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비정형' 이라는 말이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렇게 생물학적으로 이질적인 타입도 존재하는 것이다.
< 5.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니, 스위치를 켰다 끄는 것처럼 = 경증 우울 >
: 요즘 흔히 쓰고 있는 '경증 우울'이라는 말은 단순히 병증의 무게나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증 우울'이라는 특정한 병이 있는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의 '경증 우울' 이란 병증의 무게가 약하다는 '경우울장애(minor depressive disorder)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울장애, 기분저하장애, 반복성 단기우울장애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여기에는 '뇌보다는 심리적인 요소가 크다'. '성격 탓이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여러 가지 경우에 사용되었던 '경증 우울'은 3가지가 있다.
① 주요우울장에는 해당하지 않는 정도의 심하지 않은 우울함이 오랫동안(2년 이상) 이어지는 증세
- 기분저하장애
②우울증 진단 테스트를 해보면 우울증에 해당하는 증상을 갖고 있으나 지속기간이 두 주보다 짧은 증세(이 자체만으로 정신과적 진단이 이루어지지는 않으나 이런 에피소드가 1년 이상 매달 반복되는 경우) - 반복성 단기우울장애
③우울증 진단 테스트를 했을 때 아슬아슬하게 우울증에 해당되지 않고 2년이나 지속되지도 않는 증세 - 경우울장애
결국 경증 우울이란 단순히 우울증세가 가볍거나 지속 기간이 짧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치 스위치를 켰다 끄는 것처럼 일정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우울해진다거나 어떤 사건이 분명한 계기가 되어 우울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우울증은 여행이나 기분 전환 활동이 효과를 보기는 커녕 오히려 더 악화를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용히 쉬는게 원칙인데, 경증 우울은 상식적인 기분 전환 활동이 회복을 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일이 많다.
< 6. 겨울만 되면 우울해, 멜라토닌 분비의 문제? = 계절성 우울증 >
: 겨울에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봄이 되면 좋아지는 유형을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특정한 계절과 우울함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유형이다. 이 증세는 주로 핀란드, 아이슬란드, 알래스카 같은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나타난다. 계절성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어떤 나라든지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특수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특정한 계절에 우울증에 걸리는 걸까? 사실 일조 시간이 짧을수록 계절성 우울증의 발병률이 높다. '햇빛을 쬐지 않아 생기는 손실' 탓으로 생각할 수 있다.
햇빛을 쬐면 뇌 속의 멜라토닌이라는 물질이 생산되는데, 멜라토닌은 밤에 잠이 잘 오게 한다. 그래서 밤에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낮에 햇볕을 쬐는 것, 그것도 오전 햇볕을 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계절성 우울증에서는 불면보다는 과수면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멜라토닌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계절성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치료법은 분명하게 확립되어 있다. 빛이 부족해 생기는 병이니 빛을 쪼이게 하자는 것인데, 이것을 광 치료 또는 광선요법(정확하게 말하면 고조도 광조사 요법)이라고 한다. 3,000룩스 정도 되는 매우 밝은 빛을 이른 아침에 두 시간 정도 쐬는 단순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부작용이나 위험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햇빛이 별로 들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방안에만 틀어박혀 더욱 빛을 못 쬐게 되면 우울증은 더 오래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