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민 여러분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탈북여성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 문제는 저희 북한해방동맹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인데요.
어느 정도 알고 계시겠지만, 김정일 정권의 폭압(暴壓)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朝中국경을 넘어 자유를 찾아 나서지만, 탈북민은 不法체류자 신세로 인신매매, 폭력, 임금未지불 그리고 강제송환의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탈북민의 60~70%가 여성이고 그 중 70~80%가 인신매매를 당했으며, 이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폭력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에서 인신매매된 여성은 나이, 미모, 결혼 유무 등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0위안 ~ 5,000위안 정도에 팔려나갑니다.
2006년 12월7일, 美國의 북한인권위원회는 탈북민 1천346명을 인터뷰한 「新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여기는 탈북여성의 「인신매매 거래가(去來價)」가 기록돼 있습니다. 보고서는 탈북여성이 평균적으로 중국 돈 1천900위안에 팔려가고, 1천700위안이하의 가격에 팔리는 이들도 절반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1천900위안이면 244달러, 1천700위안이면 218달러입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3~20만 원대에 불과합니다. 탈북여성 김춘애氏은 『지린(吉林)성을 포함한 중국 땅 곳곳에서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인민폐 500위안(한화 8만원)에 팔려온 북한 여성들까지 목격했다』고 증언합니다.
북한인권 단체들은 중국 내 탈북민 수를 많게는 30만 정도로 추산합니다. 이 수치대로라면 단 돈 20만 원에 돼지처럼 팔려 다니는 동족(同族)의 수가 지금도 20만이 넘는다는 게 됩니다.
돼지 한 마리 값에 팔려 다니다 보니, 실제 중국 내 人身매매범들은 탈북여성을 가리켜 「돼지」로 표현합니다. 돼지 한 마리, 두 마리 하는 식입니다.
인신매매는 범죄 집단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집니다. 범죄조직에 팔려 다니는 탈북여성에게 인권(人權)이 있을 리 없습니다. 王씨에게 팔렸다 낙태당한 뒤, 李씨에게 다시 팔리는 격입니다. 이들은 性폭행·강제결혼·원치 않는 임신·부인과 질병에 노출돼 있습니다. 강제로 결혼을 해도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무시와 구타, 경제적 어려움, 북한거주 가족에 대한 그리움, 不法체류신고 협박 및 체포, 송환의 두려움에 떨어야 합니다.
중국 내 탈북민이 북한 당국에 강제 송환되는 순간부터 참상은 격렬해집니다. 수갑·포승·새끼줄·신발 끈·철사 심지어 족쇄에 끌려가 송환되는 탈북민은 한 해 수천 명에 달한다고 2006년도 대한변협 북한인권백서(白書)는 지적합니다. 실제 미국의 민간단체 「난민·이민위원회(USCRI)」는 「2006년도 국제난민조사」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은 매주 100여 명의 탈북자를 북한으로 강제송환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5천여 명이 강제 송환됐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98년 4월 탈북자 강제송환을 위해 보위부 산하 소위 「추격과」를 신설했습니다. 북한의 보위부 공작원들은 탈북민을 가장하기도 합니다. 중국 동북지방의 민가를 습격하거나 강도, 절도 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을 조작, 중국 공안당국이 탈북자 색출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2004년 4월부터 朝·中국경지역에 소위 「4중 감시체제」를 작동시켰습니다. 2005년 말부터는 탈북민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발에 밟히고」「눈에 찔리도록」 고안한 대못을 박은 『인간 덫』을 설치했습니다.
白書는 북한당국에 강제 송환된 탈북민들은 우선 「국가안전보위부 산하 변방구류장」 등에서 온갖 비인간적 처우를 받게 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辯協이 인터뷰한 탈북민 100인 중 송환 경험을 가진 절반가량의 탈북민들은 쇠사슬·부삽·불갈고리·각목·벨트 등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합니다.
손을 뒤로 묶고 수갑을 쇠창살에 채워 안지도 서지도 못하게 방치하여 온 몸의 근육을 굳게 하는 「비둘기고문」, 손발을 뒤로 묶은 뒤 바닥에 닿을 정도로 매달아 놓고 구타를 하면서 고문을 가하는 「비행기고문」, 겨울에 옷 벗기고 바깥에서 기마자세로 밤새 세워두는 「동태고문」등은 강제 송환된 탈북민들이 공통적으로 당했던 고문행태들입니다.
여성들에 대한 유린은 극심합니다. 白書에서 인터뷰한 송환경험을 가진 여성 탈북민 대부분은 항문이나 음부에 숨긴 돈을 색출하기 위해 보위원들 앞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수색(?)」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펌프질」 또는 「뽐프훈련」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역겨운 고문은 옷을 벗긴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여성 탈북민들은 소위 비밀편지, 비밀문건을 찾기 위한 몸수색 과정에서 「자궁검사」를 당하기도 합니다. 심문이라는 구실 아래 여성의 옷을 다 벗기고 몸의 특정부위에 「전기형(電氣刑)」을 가하는 등 성폭행을 당한 증언도 있습니다. 변방구류장에서 옷을 모두 벗기고 속옷 차림으로 수감생활을 했다는 여성들은 그나마 무난한 수준입니다.
白書가 지적하는 강제 송환 여성들에 대한 또 다른 인권유린은 「영아살해」와 「강제낙태」입니다. 인터뷰한 탈북여성 중 『강제낙태를 직접경험하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57.7%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아이를 비닐에 싸서 살해한 뒤 화장실에 버리게 하였다』『온성 OOO에서 탈북여성 수감자의 출산한 아이를 비닐에 싸서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청진 OOO에서 「중국 놈의 아이를 뱄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자마자 비닐에 싸서 질식사시키는 것을 목격했다』『구둣발로 임신부의 배를 걷어차서 강제 유산시키는 것을 보았다』는 등 직·간접의 증언들이 白書에 기록돼 있습니다.
한 탈북여성의 증언입니다.
『무산 OOO에서 함흥 출신의 8개월 된 임산부는 중국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강제낙태가 강요됐다. 운동장을 계속되는 형벌이 가해졌다. 이 임산부가 조산을 하자 아기를 비닐로 싸서 감방 안에 방치했다. 그러나 아기가 죽지 앉자 다른 수감자를 시켜 양동이의 물에 넣어 아기를 살해했다.』
美國의 인권운동가 데이빗 호크의 「감춰진 수용소(Hidden Gulag)」는 영아살해에 관한 증언들을 더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를 일부 인용해보겠습니다.
《南신의주 道집결소(2000년 5월). 증언자 최영화(25) ; 구금자 중 10명의 임산부가 있었고, 이 중 3명은 임신된 지 8개월 이상 된 여성들이었다. 崔씨는 산모를 돕는 일을 맡았다. 산모들은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아기를 출산했다. 그러나 잠시 후 담당자들은 산모와 崔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를 젖은 수건으로 질식시켜 죽였다. 산모는 실신하고 崔씨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됐다. 다른 아기들도 산모 앞에서 죽음을 당했다.》
《南신의주 道집결소. 증언여성 A(66) ; A는 7명의 아이를 받아냈지만 7명 모두 죽음을 당했다. 첫 번째 아기는 중국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28세의 任이라는 여성의 아이였다. 그 아기는 산모가 중국에서 임신을 해 양양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건강하고 몸집이 컸다. A는 출산 당시 아이의 머리를 잡아 빼주었고, 탯줄을 끊어 주었다. A가 아기를 받아내고 모포로 감싸주었을 때, 경비대원은 아기의 한쪽 다리를 잡아채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집어 던졌다. 박스에 죽은 아기 시체들이 가득 차면 밖으로 옮겨져 묻히게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金이라는 여성의 출산을 도왔다. 산모는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A가 아기를 쓰다듬어 줄 때, 아기는 그녀의 손가락을 빨기도 했다. 경비대원이 와서 A에게 소리 지르며 아기를 박스 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A가 머뭇거리자 경비대원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고 이로 인해 A의 이가 부러졌다.》
《이틀 후 강제 분만된 2명의 아기는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아기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록 얼굴은 노래지고 입술을 파래졌지만 아기들은 여전히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경비대원들이 와서 아직 두 명의 아기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 머리의 부드러운 부분을 집게로 눌러 아기들이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보고 A는 경비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비대원들에게 심하게 발길질을 당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청진시 농포 집결소(1999). 증언여성 B(30대 중반) ; 집결소 구금자의 80%가량은 여성이었고, 그 중 12명가량이 임산부였다. 경비들이 임산부들의 경우 「배신자의 자식」을 뱃속에 가졌다는 이유로 음식이나 물을 잘 주지 않았다. 하열을 일으키기 위해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B는 몇 명의 임산부들이 끌려 나가, 낙태를 위한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다시 농포 집결소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 후 출산을 위한 준비된 방에서 4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들은 바구니에 담겨 비닐에 싸인 채 근처의 창고에 죽을 때까지 방치됐다.》
《청진시 농포 집결소(2000). 증언여성 C ; C는 8개월 된 태아 3명이 낙태되고 7명의 아이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다.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을 바닥에 뒤집어 눕혀놓았다. 어떤 아기는 즉시 사망했고, 어떤 아기는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이틀이 지난 후에도 생존해 있는 아기들은 경비대원들이 데려다가 젖은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켰다. 다른 방의 문에 서 있던 女수감자들은 방바닥에 눕혀져 있는 아기들을 볼 수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이 중국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산모들이 아기들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들어야 된다고 말하곤 했다.》
《온성 노동단련대(2001년). 증언여성 D(38) ; 10명의 임산부가 강제낙태를 당한 후 바로 다음날 강제노동에 투입되는 것을 목격했다.》
북한인민 여러분, 오늘 제가 말씀드린 내용은 북한당국에 의해 저질러지는 인권유린의 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김정일 정권은 이런 금수 같은 만행을 즉각 중단해야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양심을 가진 백성,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는 김정일을 하루빨리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 땅에 자유와 인권이 넘쳐나는 곳으로 바꾸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 역사적 결단에 우리 북한해방동맹도 함께하겠습니다. 우리 힘을 모읍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