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선비들이 연경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만나면 반드시 물어보는 말이 있다.
"자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장관이 뭐였는가? 하나만 꼭 집어 말해 주게나."
그러면 사람들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해 버린다.
"요동 천 리의 넓은 들판이 장관이야."
"구요동의 백탑이 장관이더군."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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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들이 분분하여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소위 일류 선비는 정색하고 얼굴빛을 고치며 이렇게 대답한다.
"허 도무지 볼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황제가 머리를 깎았고, 장상과 대신 등 모든 관원들이 머리를 깎았으며, 선비와 서민들까지 모두 머리를 깎았더군요. 공덕이 비록 은나라·주나라와 대등하고, 부강함이 진나라·한나라보다 낫다한들 백성이 생겨난 이래 여지껏 머리를 깎은 천자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드높은 학문을 이루었다 한 들 일단 머리를 깎았으면 곧 오랑캐요, 오랑캐는 개돼지나 마찬가집니다. 개돼지에게서 뭐 볼 게 있습니까?"
이는 최고의 의리를 아는 자의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질문을 한 사람도 잠잠해지고 사방에 앉아 있던 사람들 역시 숙연해진다.
그 다음, 소위 이류 선비는 이렇게 말한다.
"성곽은 만리장성을 볻받았고, 궁실은 아방궁을 흉내냈을 뿐 입니다. 선비와 서민들은 위나라와 진나라 때처럼 겉만 화려한 기풍을 좇고, 풍속은 수 양제와 당 현종 때처럼 사치스러움에 빠져 있더군요. 명나라가 멸망하자 산천은 누린내 나는 고장으로 변했고, 성인들의 업적이 사라지자 언어조차 오랑캐들의 말로 바뀌어 버렸지요. 그러니 무슨 볼 만한 게 있겠습니까? 진실로 10만 대군을 얻어 산해관으로 쳐들어 가서, 만주족 오랑캐들을 소탕한 뒤라야 비로소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춘추》를 제대로 읽은 사람의 말이다. 《춘추》이 한 권은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기 위한 책이다.
(중략)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 한다. 더구나 삼대 이후의 성스럽고 현명한 제왕들과 한·당·송·명 등 여러 왕조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한 원칙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성인이 《춘추》를 지으실 제, 물론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려고 하셨으나, 그렇다고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히는 데 분개하여 중화의 훌륭한 문물제도까지 물리치셨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이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전해오는 법을 모조리 배워서 먼저 우리나라의 유치한 습속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밭갈기, 누에치기, 그릇굽기, 풀무불기부터 공업, 상업 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다 배워야 한다. 우리 백성들이 몽둥이를 만들어 두었다가 저들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두들길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중국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삼류 선비지만 감히 말하리라.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
(중략)
똥오줌은 아주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거름으로 쓸 때는 금덩어리라도 되는 양 아까워한다. 한 덩어리도 길바닥에 흘리지 않을 뿐더러, 말똥을 모으기 위해 삼태기를 받쳐들고 말 꼬리를 따라 다니기도 한다. 똥을 모아서는 네모반듯하게 쌓거나, 혹은 팔각으로 혹은 육각으로 또는 누각 모양으로 쌓아 올린다. 똥덩어리를 처리하는 방식만 보아도 천하의 제도가 이에 다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겠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리라.
"저 기와 조각이나 똥덩어리야말로 진정 장관이다. 어찌 성지, 궁실, 누대, 점포, 사찰, 목축, 광막한 벌판, 아스라한 안개 숲만 장관이라고 할 것인가."
***일류 선비, 이류 선비, 삼류 선비는 선비의 등급을 나누는 말로 《맹자》《노자》 등에 나온다. 일반적으로 선비 중에서 덕망을 갖추고 세상의 모범이 되는 최고의 선비를 일류 선비라고 하며, 그 아래로 이류와 삼류가 위치한다. 그러나 박지원은 세상의 일반적인 등급을 거꾸로 뒤집어서 표현하고 있다.
박지원이 말하는 상사는 청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도 없이 그들의 머리 모양만 보고 문화적 수준이 형편 없는 오랑캐라고 치부하는 계층이다. 그들의 논법은 언뜻 명쾌해 보이지만 단순무식하기 그지없다. 머리를 깎으면 오랑캐요, 오랑캐는 짐승과 같은 수준이다. 따라서 머리를 깎은 청나라는 짐승과 같은 오랑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일류 선비'들의 말을 사람들은 깍듯이 떠받든다.
'이류 선비'는 일류 선비보다는제법 논리를 갖춘 것처럼 보인다. 성곽이나 궁실 같은 것들을 직접 보기도 했고, 청나라의 풍속을 살펴보기도 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중국의 모든 문화는 과거 한족들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이라고 간주한다. 그들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청나라라 중국 땅을 점거한 이래 중국에는 과거의화려한 문화가 사라졌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군대를 동원해서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모습에서 당시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북벌론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박지원은 세상의 존경을 받는 최고 지식인인 일류와 이류 선비를 통해서, 당시 조선의 중국 인식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청나라의 표면적인 모습만 보고 오랑캐라고 폄하한다. 청나라 문명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럴 마음도, 그럴 능력도 없다. 이렇게 상의 통념을 뒤집어서 자신의 주장을 명쾌하고 강려하게 전달하는 대목에서 박지원의 역설이 빛을 발한다.
(그린비 출간 열하일기 중에서)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며 열하일기를 집어 들었다. 매일 핸드폰 겜으로 내 길디긴 장에 매달린 노폐물을 밀어내는 게 한심하게 여겨졌던 탓이다.
마침 읽을 부분이 '일신수필' 부분인 바, 내 눈은 글을 하나하나 곱씹어가며 머리와 가슴에 -깊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이렇게 그 흔적의 또 다른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정치판이 떠올랐다. 엊그제까지 구회에서 난투극이 벌어졌지만, 어제 불과 두 시간 만에 50여 건의 안건이 졸속으로 처리됐다고 한다.
일주일이 넘도록 국회의 기물을 부수고 도끼로 찍어내고 하더니만, 결국 그 중요하고도 세심히 다뤄야 할 안건들이 두 시간만에 처리되다니....
과연 그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아마 자신들은 일류 또는 조금이나마 양심이 있는 사람은 이류 정치인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바는 박지원이 말한 '똥덩어리'보다 못하도 생각된다. 심한 착각 속에 빠져사는 그들에게 권하노니 제발 이 《열하일기》 한 권만이라도 읽고 정기 국회든 임시 국회든 임하는 게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