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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김상은 |2009.01.24 00:10
조회 121 |추천 0


1999년, 재수할 당시였다. 아침 일찍 발딛을틈 없는 버스에 타서

 

재수학원으로 가서 오후 늦게까지 수업을 듣고 독서실에 들러서

 

식구 모두 자는 집을 혼자 들어가는 생활을 휴일일 것도 없이 매일

 

반복하는 생활을 하던 때였다. 그리고 아침이면 홀로 일어나

 

저녁에 끓여놓은 국을 데워 찬밥과 부랴부랴 먹고 버스정거장까지

 

뛰어갔다. 5분이라도 늦으면 그버스를 탈수 없기에....

 

 

 

그런데 어느 날, 고전시가의 고공가 수업을 듣고 있는 오후였다.

 

창 밖은 잔인하리만큼 밝고 아름다웠으며, 내 또래 학생들은 즐거운

 

대화에 달콤한 향내를 흩뿌리며 지나갔다. 당시 유행이었던 핑클에

 

HOT 브로마이드 모으는 취미생활은 커녕, 남자셋 여자셋 시트콤

 

조차 마음대로 볼수 없었던 생활이었다.

 

 

 

그때,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가 계속해서 울려댔다. 하는 수 없이

 

세번째 전화는 수업 도중에 나가서 받게 되었다.

 

"여보세요?"

"네, 윤 서희씨죠?"

"네"

"저, 여기 박중원 변호사 사무실인데요. 윤현철씨 따님 되시죠?"

"맞는데요...?"

 

윤현철..3년만에 아버지 이름을 들어보았다. 나도 모르게 목이

 

메이면서 마른 침을 삼켰다.

 

"저, 아버지가 굉장히 아프셔서 가족들께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드렸습니다."

"어떻게 아프신데요?"

"하여튼 ..몸이 안좋으신데, 집에가셔서 쉬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어머니께 말씀드려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서둘러 전화를 끊고, 화장실을 계속 서성거렸다. 무슨일일까..삼년

 

만에, 그것도 지금. 이렇게 식구들 다들 힘들때...

 

 

수업하는 교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아버지 세브란스 병원으로 입원하셧습니다. 가보세요.'

 

목부터 배까지 무언가 쓸고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어려운 몽롱한 느낌마저 들었다.

 

 

서둘러 병원에 가보았다. 오빠는 학교에 있었고, 엄마는 당연히

 

올 필요가 없었다. 나 혼자서 응급실에 있었다. 아버지 옆 서랍장을

 

열고 책상삼아 모의고사를 풀기 시작했다.

 

 

툭투둑....

 

갱지로 된 모의고사 종이가 내 눈물로 젖어, 인쇄물 잉크가 번지기

 

시작했다.

 

젊은 의사가 나에게 다가와 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했다.

 

"지금 아버지께서 따님을 알아보지 못하실겁니다. 우선 진단명은 뇌졸중입니다. 저, 그런데 아버지가 사무실에 계속 계셧다고요? 어떻게 된건가요?"

 

대답을 못하고 서 있는 나에게 그는 계속해서,"지금 상태로는 해파린을 투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성인이시면, 여기에 서명하세요"

 

아...성인이라고? 내 생일 지난지 2일째. 그것도 생일상은 커녕 사람

 

들에게 전화한통 못받은 내 20살 생일 뒤에 이런 책임은 너무 가혹

 

했다.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을 사람도 없었고,

 

눈물 흘릴 생각은 감히 할 수도 없었다.

 

 

 

 

그날 밤 뒷산에 올라가 참았던 울음을 한번에 터뜨렸다.

 

티슈나 손수건 따위는 필요없었다.

 

내가 20살 여자라는 것은 안중에 없었다. 옷소매가 축축하게

 

젖고, 차가운 손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고 나무에 기대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끝없이 흘러 내렸다.

 

어찌나 울었던지, 숨도 제대로 쉴수가 없었다.

 

하지만, 친한 사람이어도 이런 모습은 죽어도 보여주기 싫었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중학교 동창 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서희야, 왜이렇게 목소리가 가라앉았니?

 

나 지금 엠티와서 지금 잘 안들려 내가 나중에 다시 걸게."

 

그렇게 내 마지막 용기는 끊긴 수화음과 같이 끊어졌다.

 

 

그날 이후 이일에 관해 나는 무덤덤한 미소로만 답했다. 응, 그냥...

 

그러면 다들 잘 해결된거라 생각하고, 자기들 이야기 풀어놓기에

 

바빴다. "신촌 앞에 민들레 영토라는데가 있는데, 거기에..."

 

내 재수생활이 어떤지, 부모님은 관심이 없었고, 친구들도 마찬가지

 

였다. 무관심. 그네들의 새로운 대학생활에의 적응.

 

 

 

하지만 그날은...정말 그날만큼은..

 

정말 지독하게 외롭고, 긴 밤이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얼마나 처참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의 엄마도..보라도...

 

그날 기대어 울던 등 굽은 소나무만이 기억할 것이다. 어린 나의

 

눈물이 얼마나 차디 찼는지...울음을 집어삼키려는 신음소리가

 

얼마나 가여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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