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홍보실에 일하다 보니 ‘업소’에 자 주 갈 기회가 있었다. 처음 갔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돈을 가지 고 타인의 몸을 빌리고 점유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참 웃기는 일이었 다. 내 파트너는 스물네 살이었다. 어머니가 사준 어린 왕자 의 펜던트를 하고 있던 소녀. 그 어머니의 마음과 어린 왕자, 그리고 그녀가 하는 일 사이의 괴리감에 문득 서글퍼졌다. 노래를 부르고 춤 을 추는 그녀의 모습이 도리어 안쓰러워 보였던 건 그래서일 것이다.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다면 그녀를 그곳에서 벗어나 게 해주고 싶다는…(31세·대기업)
editor's comment 한 달에 2백 만원도 못 버는 샐러리맨보다 업소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의 수입이 더 많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여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동정의식 같은 게 있다. 자신보다 약자라고 느껴질 때 보호해주고 싶어지는, 살짝 어이없는 기사도(?)랄까?
입대 후 1년, 여자친구의 편지가 조금씩 뜸해 지기 시작했다. 간만의 휴가, 들뜬 마음으로 그녀에게 전화했지만 그 녀는 나를 피했다.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예상했던 대로의 레퍼토 리.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게다. 친구 녀석은 나를 위로한답 시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룸살롱에 데려가 주었다. 그곳에서 그 녀를 만났다. 그날 따라 나에게 살갑게 굴던 그 스물한 살의 낯선 아 이는 그렇게 내 마음에 들어왔다. 복귀 후에도 우리는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휴가 때면 나는 그녀를 찾았고, 그렇게 병장쯤 되었을 때 문득 그녀에게서 연락이 끊어졌다. 제대 후 다시 찾았을 때, 그녀 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26세·대학생)
editor's comment 한없이 외로 울 때 남자의 마음은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만큼 빈틈으로 가득하다. 비록 그것이 돈을 매개로 한 친절과 서비스라 하더라도, 아니 하다 못해 고객 관리 차원의 이메일이라 하더라도 정에 굶주린 자에겐 충 분한 위안이 된다.
나는 여덟 살 때 교통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소위 ‘애자’다. 살짝 가식을 덧붙여 불러주는 말로는 ‘장애우’라 고도 하더군. 외모 하나 구린 걸로도 사람 대접 못 받는 요즘 같은 세상에 나 같은 놈이 여자를 사귄다는 건, 한나가 제니 되기보 다도 힘든 일이었다. 여자들이 나에게 보내는 시선은 잘해야 동정이 었지 결코 사랑은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부모 잘 둔 덕에 적당히 외제차까지 굴리면서 살 수 있다는 것 정도랄까. 내가 ‘업소’를 즐겨 찾게 된 거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 따위 어차피 엿먹는 세상, 하지만 적어도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 는 순간만은 나는 ‘애자’가 아닌 ‘남자’였다. (34세·화가)
editor's comment 뒤틀린 마음 을 탓할 수는 없다. 타인의 사랑과 관심조차 때론 가식으로 느껴질 정도로 상처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차라리 계산된 가식과 관심이 수월하다.
나는 한때 소설가를 꿈꾸었다. 사실 소설을 쓰고 싶었다기보단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는 소설가란 아이콘을 흉 내 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에게 소설가란 폐병 정도는 걸려 줘야 했고, 이상의 금홍이 같은 여인네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존재 였다. 나 같은 소설 속의 파멸적이고 위험한, 그런 밑바닥의 사랑을 함께해줄 여인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끌렸던 거 같다. 그녀라면, 나와 함께 그 치기 어린 사랑에 가담해줄 것 같 아서.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여기는 자들끼리의 사랑 같은 것 . 나는 그렇게 그녀를 내 유치한 환상극의 여주인공으로 초대했었다. (32세·카피라이터)
editor's comment 사람들은 때 론 위험한 사랑에 이끌린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사랑. 끝이 빤히 보이지만 그래서 더 매혹적인 사랑. 남자들이 보기에 그녀 들은 그런 사랑을 함께할 수 있는 클리셰로 가장 적합한 직종이기도 하다.
나이 스물, 나는 동정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 고 선배를 따라간 곳이 퍼블릭 룸살롱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였다. 반라의 여인이 스스럼없이 나 의 손을 잡고, 자신의 몸을 맡겼다. 그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섹스 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의 스킨십만으로도 그 기억은 내 머리 속 깊이 박혔다. 살과 살이 맞닿을 때의 느낌. 낯선 여인이었지만 그건 일상 에서 흔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24세·대학생)
editor's comment 남자들이 스 킨십에 약한 건 사실이다. 때론 내밀한 관계 사이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기에 순진한 남자들이라면 그 스킨십에서 다른 감 정을 품게 되기도 한다.
광고 대행사다 보니 아무래도 사무실에 여자 천지다. 내일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노처녀 차장부터 나보다 어린 여 자 선배까지. 그 사이에서 하루를 부대끼고 나면, 밤이면 여자를 안 고 싶어하는 ‘남자’라는 존재가 도리어 불가해하게 느껴지기도 했 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담배를 꺼내 물 기도 전에 알아서 불을 붙여주고, 술 한 모금을 채 다 털어넣기도 전 에 이미 안주를 준비해서 입에 넣어주는 센스. 물론 안다, 그게 다 돈이라는 것도, 이딴 소리 하면 마초라고 욕먹을 거라는 것도. 하지 만 비록 돈으로 사는 것이라 해도 요즘 여자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서비스를 해주는 그녀들이 히스테리 노처녀들보단 나아 보이는 건 사 실이다. (28세·광고 대행사)
editor's comment 바야흐로 남 녀평등을 넘어 여성상위 시대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위축되어가는 남자들 입장에선 그런 사근사근함을 대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