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자 얼굴 공개에 관한 우리 사회의 단상. 요즘 살인자 얼굴공개를 놓고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일반인들은 찬성쪽이 좀 더 많은 것 같고, 각 방송사, 언론사는 의견이 제각각이고(심지어는 진보, 보수가 갈린다), 예를 들면 중앙,조선, kbs(얼마전에 보수가된 방송사), sbs(중도 보수라고 해야할까?)는 얼굴공개쪽이고(이미 공개를 했고), mbc, 한겨레, 경향은 비공개 원칙을 주장한다. 또한, 법조계에서는 찬반이 팽팽하다고 한다. 이처럼 이것이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된 이유가 뭘까? 우선 찬성과 반대의 근거를 알아보자. 찬성하는 쪽에서는 대략 흉악무도한 놈을 뭔 인권보호를 하냐? 그냥 공개해라! 식의 소위 국민 알권리 내세우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살인자의 가족들 등을 예로 들어 인격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또한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사실 과연 어느 것이 '법과 원칙'에 맞는 것이지 정말 헤깔리게 하는데, 이른바 '무죄추정의 원칙(http://shiningsky.tistory.com/5?srchid=BR1http%3A%2F%2Fshiningsky.tistory.com%2F5)이 그것이다. 이것에 의하면, 살인자 즉 아직 용의자(재판받지 않은)는 그의 얼굴은 공개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번 강호순 사건 같이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말 명명백백하게 살인을 저질렀음이 드러난 경우에는 얼굴을 공개해도 된다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원리원칙대로 하면 후자가 법과 원칙을 어긴것일테지만, 조금만 법의 융통성을 발휘해 본다면 이번 경우에 한해서는 그 융통성의 테두리 안에 '얼굴공개의 정당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 고려대 법대 박경신 교수 같은 경우는 "나도 공개를 지지하지만 그가 흉악범이라서가 아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얼굴사진들을 찍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면 국민들은 그 사진들을 돌려보며 소통할 자유를 가진다. 이 자유는 바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이며 사진 속 사람이 일순간 피의자가 되었다고 갑자기 없어지지 않는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021804565&code=990303)"라는 일반 사람들의 그것과는 색다른 논리고 공개를 찬성하고 있다. 내 의견은 이것이다. 우리가 운전을 하다보면 정말 마음에 안드는 운전자를 가끔 만나게 된다. 그럴 때면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 운전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기어코 본다. 앞지르기를 해서라도.. 그리고 욕을 대개 한 마디씩 하고 걍 씽~ 지나가버린다. (이것은 과연 본능일까?) 그런데 보고나서는, 대략 그 시간이 2초 이상은 될까?.. 그냥 지나칠수 밖에 없다. 더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 얼굴을 기억했다가 다음에 어떻게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즉 단지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유의 논리는 적어도 유의미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본 사안에 대하여 감성적 접근은 배제해야함을 뜻한다. 한 가지더 얘기한다면, 찬성하는 쪽에서는 반대편에 이런 주장을 한다. '니 가족이 죽었는데도 니가 반대를 할것이냐?'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 아버지가 살인자라도 얼굴 공개를 찬성할 것이냐?" 이런 고립무원식 질문은 한계성을 지니는 인간을 애달프게 한다. 기실 내 결론은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런데 여기서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 하나는(사실 이말을 하려고 위의 말들을 다 적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과연 자기가 이 사회의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강호순이라는 살인마를 양산하는데 정말 아무일도 안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왜 이것에 대한 토론은 없는 것일까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사회라는 틀이 없이는 살아갈수가 없고, 그 안에서 더불어 살아 간다. 얼마나 상호 관계하는지, 영향을 주고 받는지는 그 양과 질적으로 분석을 해봐야 겠지만, 결론은 우리는 같이 살아갈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가 알든 모르든 그러는 동안에 적으나마 타인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 사안은 공동책임, 연대의식을 필요로 한다. 또한 그것은 근본으로의 회귀이다. 그리하여, 근본을 개선하지(바꾸지) 않는 다면 참담한 결과의 예방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토론을 본다면 위에서 터진 강둑을 위에서 막지 않고, 아래에서만 막고 있는 형국이다. "근본"은 그것은 곧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