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라>의 원제는 <Whatever Lola Wants> 다. 영화서 롤라가 같은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이 노래는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것은 아니고 1955년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Damn Yankees!>에 나왔던 노래란다. 이 뮤지컬은 상업적인 성공에 힘입어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뮤지컬의 캐릭터 중 악마의 매혹적인 비서로 롤라가 등장한다. <롤라>에서 로라 램지(Laura Ramsey)가 열연한 캐릭터 롤라는 여기서 따온 듯하다. 노래도 그렇고. 뮤지컬의 내용은 <파우스트>의 현대판이란다. 그러니까 여기서 악마는 소원을 들어주는 악마쯤 되겠지.
우체국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롤라는 댄서를 꿈꾼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르기를, 뉴욕에서 스물다섯 살의 댄서는 퇴물이란다. 위로부터 이어져 온 우편집배원이라는 직업에 롤라는 회의를 느끼지만, 우체국 직원들을 그녀를 사랑하며 아낀다. 정식 직원으로 들어오라고 독촉까지 할 정도다. 롤라는 나이와 오디션 탈락 때문에 점점 댄서로서의 자신감을 잃어가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절친 이집트인 게이 웨이터 덕에 밸리 댄스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우연히 만난 이집트인 청년사업가와의 로맨스도 문화의 차이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하고 롤라는 무작정 이집트로 길을 떠난다. 그리고는 푸른 눈의 밸리 댄서가 된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했다. 친구의 집에서 본 최고의 무용수 이스마한을 찾아가지만 정작 그녀는 댄서를 그만 두었다고 하며 제자 받기조차 냉정히 거절하는데.....
밸리 댄스는 알랍어로는 라크스 샤키(raqs sharqi), 라크스 발라디(raqs baladi) 라고 한단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각각 oriental dance, dance of country 라고 하며 후자는 포크댄스 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프랑스어 'danse du ventre' 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belly dance 가 되었고 그게 1899년의 일이란다.
락스 발라디는 축제나 결혼식 등에서 남녀가 다 같이 축하하고 즐기는 춤이란다. 락스 샤키는 공연용 춤인데 여자 뿐 아니라 남자도 춘단다.
이그터, 아마 관광 좀 다닌 분들은 이 말을 이해할텐데 각각 이집트 그리스 터키를 가리킨다. 여행사에서 패키지로 이 세 나라를 도는 상품을 파는데 나는 밸리 댄스를 터키에서 봤다. <롤라>에서는 롤라의 사부 이스마한과 롤라 외에는 그다지 날씬한 여성들이 등장하진 않는데, 영화라서 그렇지 로라 램지도 그리 크지 않은 키(163)라고 한다. 밸리 댄스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복장으로 춤을 추지만 그것이 섹시해 보이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다. 터키에서 본 춤은 자극적이라기 보다 오래 보니 좀 지루하기도 했었다. 댄서가 밀로의 비너스 같았다고 한다면 어떤 체형인지는 굳이 말 안해도 될 듯하다. 영화의 롤라처럼 늘씬하고 예쁜 댄서들이 밸리 댄스를 추는 게 아니더란 말이다. 가진 돈도 다 떨어져 가는 롤라는 호텔 근처 클럽에 댄서로 취직하는데 그녀의 동료들은 남자들의 눈으로 볼 때 저 몸매로 어떻게 춤을 추나 싶은데 이 지역의 댄서들은 몸매가 기준이 아니라 체력과 강건함, 거기다 미모가 더해지면 금상첨화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같다. 물론, 영화에서 롤라 돋보여야 하니까 그런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일 수도 있는데 실제 터키에서 봤던 밸리 댄서들은 건강도 아니고 강건해 보였다. 외모나 몸매는 부수적인 거더란 말이다.
아만다 바인즈가 남장하고 나오는 <쉬즈더맨>은 온스타일 무비라고 해서 20~30대 여성들의 취향에 맞는 영화들을 골라 선보이는 기획 중 하나로 개봉한 영화인데, <롤라>를 광고하면서 <쉬즈더맨>의 그녀라고 하니 누군지도 기억도 안 나고 '그나마 어디서 본 같기도' 라고 해주려다가 깜찍하고 어떨 땐 섹시해 보이기도 하는 영화 속 롤라의 모습에 이 모든 것을 잊었다. 그녀는 <쉬즈더맨>에서 올리비아로 나오는데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를 학원청춘물로 바꾼 것이다. 쌍둥이 여동생이 남장했는데 그걸 보고 반한 여성이 있고 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다가 다같이 해피 엔딩 하며 유쾌하게 끝나는 작품이다. 포스터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로라 램지다.
모든 멤버가 악기를 연주하는 여성그룹 중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정복한 뱅글스 언니들. 우리에겐 발라드 넘버 Eternal Flame 과 월요일이면 라디오 팝 프로그램에서 가끔 틀어주는 Manic Monday 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집트인처럼 걸어요' (Walk Like an Egyptian)로 이 언니들은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곡들은 모두 위 곡 이후에 히트친 것들이란다. 뮤비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집트 벽화에 묘사된 댄서들처럼 춤을 추거나 그런 자세로 걷는다. 밸리 댄스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롤라는 뉴욕을 떠나 이집트 카이로로 간다. 잠깐 뉴욕에서 눈이 맞았던 사랑을 찾으러. 명함만 보고 찾아간 그의 집은 꽤나 재력있어 보이는데, 실제 그런 집이 이집트에 있다면 이 이집트의 엄친아는 헬리오폴리스에 살지 않았을까 싶다.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오마 샤리프도 이곳에 산다는데 이집트의 재력가와 명사들이 모여 사는 동네란다. 나머지는 평범하다 못해 초라하게 산다.
롤라는 낮에는 이스마한에게 밸리 댄스를 전수받고 저녁에는 클럽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번다. 생활비까지는 어느 정도 드는지 모르겠지만, 10년 전에 들었던 현지 가이드의 설명은 이집트에서는 1년에 미화 100달러로 식생활은 해결할 수 있단다. 우리가 <롤라>에서 보는 이집트 풍경은 서구의 편견대로 담았다고 생각할 법한데 꼭 그렇지도 않다. 폐차제도가 없어서 매연이 넘쳐나고 밖에 나와 물담배를 즐기는 사람들. 호텔 벨보이들은 만만한 관광객들을 보면 짓궂게 굴고 공항과 호텔로비 화장실 앞에는 휴지를 건네주는 사람이 있다. 안에 휴지가 버젓이 비치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이 사람에게 휴지 받아가면 돈 내야 한다. 이집트 국내선 이용할 때 권위에 따른 융통성을 발휘하는 철저한 관료주의 하며.....
이집트 인구의 절대 다수가 모슬림이긴 하지만 일부 기독교도도 존재한다. 콥트라고 해서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치는 이들은 이집트 인구의 2%로를 차지하는데 종교 때문에 차별 받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죽은 자를 집에 매장하며 망자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모두가 섞여 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던 것 같다.
밸리 댄스를 널리 알리고자 벽안의 아리따운 아가씨를 내세워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집트를 알리는 데는 이 영화는 꽤나 효과적인 것 같다.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자국에 머물 수 없어서 뉴욕에서 웨이터로 살아가는 롤라의 베프나 이집트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청년 사업가는 어느 정도 편견이 개입된 캐릭터이기도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롤라>를 보는 재미는 꽤나 쏠쏠하다. 춤을 통해 사랑을 얻거나 하는 따위의 상투적인 전개는 피해 가며 대신 롤라의 스승 이스마한과 롤라의 매니저와의 못 다 이룬 로맨스가 밸리 댄스를 빌미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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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재밌게 봤다만 씁쓸한 건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의 초라한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거기엔 우리가 기대했던 유물들은 없었다. 정작 그 나라에 있어야 할 알짜들이 서양의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과 영화로 이집트의 무형문화를 대할 수 있다는 사실. 둘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그리고 아랍권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이 영화가 국내 개봉을 할 수 있었을까도 의문이다. 백인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던들 헐리우드에서 이 영화의 컨셉이 먹히기나 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