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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로뎀 클린턴 at Ewha

김효정 |2009.02.26 16:09
조회 817 |추천 0


 현정아. 이거 사회 주연이가 봤어.

방한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0일 오후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국무장관으로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을 줄 몰랐습니다. 인생은 그렇습니다. 언제나 준비하고, 기회를 잡고, 다른 사람과 협력을 통해 공통의 좋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꿈을 좇으십시오."

21시간의 짧은 방한 일정을 쪼개 20일 오후 이화여대를 찾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희망`을 설파했다.

클린턴 장관은 커리어 우먼으로서 겪어왔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로펌에서 최초의 여성 변호사로 일하며 딸 첼시를 임신했을 때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제도가 없어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 로펌에서 언제 출근할 것이냐는 전화가 오자 "아이를 돌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전업주부이거나 아니면 결혼 후 자녀 없이 직업에 전념하거나 어떤 선택을 하든 여성들에게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중요한 문제에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원군이 되는 가족을 만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회의 많은 지원이 있게 된다면 더 많은 여성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네트워크부터 균형잡히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여러분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클린턴 장관은 "양성평등을 위해 아직 할 일이 많다"며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모든 여성이 완전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무장관 임무에도 포함돼 있다"며 "여권 신장을 통해 (여성들이) 번영하고 안전한 삶을 사는 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닌 안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 권리의 진작이야말로 국가발전의 핵심"이라면서 "여성과 사회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인류의 번영과 안전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참여에 의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가능하다는 말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 되기까지 많은 장애를 어떻게 헤쳐나갔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클린턴 장관은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모든 인생에는 도전이 있고, 어떤 경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대응하는가죠. 장애물을 놀랍게 극복하는 사람도 있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변에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훈련을 하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장애에 맞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에 가족과 주변 사람, 그리고 종교적 신념이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클린턴 장관은 자신의 인생이 오래 전에 계획한 그대로 움직이지는 않았음을 고백했다. 열서너 살 무렵 꿈은 우주비행사였다고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어떻게 하면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느냐`는 편지를 썼는데 `여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장을 받았다.

클린턴 장관은 "지금까지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것을 선택했더라면 많은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우주인 외에도 기자도, 의사도 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변호사가 됐고, 변호사로서 소외되고 어려운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단다. 변호사 시절인 20년 전만 해도 공직에 진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미국의 영부인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고, 1998년 말쯤 당시 뉴욕 상원의원이 은퇴하며 대신 자리를 맡아달라고 해서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정치에 참여하게 됐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클린턴 장관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학생들에게 "시작과 다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만 기회와 재능을 본다면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다"고 조언했다.

클린턴 장관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마음도 드러냈다.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해 "남편은 굉장히 오랜 시간 함께한 가장 좋은 친구"라며 "남편과 의미있는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로서의 모성애를 나타내기도 했다. 딸 첼시가 갓난아기 시절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나도 엄마인 적이 없었고, 너도 아기인 적이 없었구나. 우리 모두 새로운 경험이니 함께 도전하고, 설렐 수 있는 기회를 함께 가졌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여성의 경쟁력 강화(Women`s Empowerment)`를 주제로 한 이 강연에 앞서 이배용 이대 총장에게 `명예이화인`패를 받았다. 이화여대는 클린턴 장관이 나온 웨슬리여대의 자매학교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0일 오후 이화여대에서 강연회를 했다. 강연은 “한국의 미래 여성 리더를 만나고 싶다”는 클린턴 장관의 요청으로 마련됐다. 이 행사는 ‘명예 이화인’ 증서 수여식과 강연 및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화사한 빨간 재킷 차림의 클린턴 장관은 “아버지가 이화여대의 설립자인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지역 출신”이라며 이대와의 인연부터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크랜턴 여사는 학생 한 명을 가르치면서 지금의 이화여대로 성장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나도 국무장관이 돼 여기에 설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Do what you love)”며 “지금 하는 것을 잘 준비하고 오는 기회를 잘 활용하라”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강연의 주제는 ‘여성의 경쟁력 강화(Women’s empowerment)’였다. 그는 “이 자리에 오기 전 한국의 여성 정치인들을 만났는데 그중에 미래 대통령이 탄생하길 바란다”고 말했고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학생들과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질문이 쇄도하는 바람에 예정된 시간(40분)보다 30분이 더 지난 오후 3시30분쯤 강연이 끝났다.

다음은 학생들과의 일문일답.

-국무장관이 되지 않았다면 뭘 했겠는가.

“(객석에 앉은 우주비행사 이소연씨를 가리키며) 내가 13, 14세 때 NASA(미 항공우주국)에 편지를 보내 어떻게 하면 우주 비행사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여자는 받지 않는다’는 답장이 왔다. 다른 젊은 여성이 (내 꿈인) 우주 비행사가 되고, 또 잘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 지금 보면 내가 (상원)의원 선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힘들었지만 해내서 기쁘다.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는 건 더 힘들었지만 너무 많이 배웠다. 여러분은 위험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딸 첼시와 똑똑하고 확신에 찬 모습이 꼭 닮았다.

-> 이 때 클린턴이 '아.. 첼시도 여기 올 수 있었는데' 라고

말했다. 어떤 애가 '꺄악' 하고 소리 질러서 힐러리 언니가

진짜 깔깔 웃었다.

 

“(환하게 웃으며) 그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 첼시에 대해서는 몇 시간이고 답변할 수 있다. 엄마가 되는 것 중에 가장 멋진 것은 당신의 아이가, 당신이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이다. 자그마한 아기가 훌륭한 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걸 볼 수 있는 건 엄마로서 최고의 부분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남편감인지 어떻게 알아봤느냐.

“국무장관이 아니라 연애 카운슬러로 이 자리에 나온 것 같다(웃음). 매일 긴 대화를 나누고 함께하면서도 지루해하지 않는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다. 남편의 사랑이 내 인생을 컬러풀하게 만들었다.”

-가족과 일 중 어느 것이 우선인가.

“딸을 가졌을 당시 난 로펌의 유일한 여자 변호사였기 때문에 출산·육아와 관련한 조언을 제대로 못 받았다. 어떤 직장 동료들은 아예 얘기조차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꼭 내가 임신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 능력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 엄마 역할, 일을 조화롭게 해내는 게 어렵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이에스더 기자


▒바로잡습니다▒

‘클린턴 장관의 아버지가 이화여대 설립자인 스크랜턴 집안 출신’이라는 부분은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지역 출신’이기에 바로잡습니다. 클린턴 장관은 강연에서 이화여대와 본인의 인연을 강조하며 “나는 감리교도이며, 나의 부계 쪽 가족이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출신(I’m a Methodist and my family on my father’s side comes from Scranton, Pennsylvania.)”이라고 밝혔습니다. 스크랜턴은 펜실베이니아주 북동부 도시로 클린턴 장관의 아버지인 휴 엘즈워스 로댐의 고향입니다. 클린턴 장관은 이화여대 설립자인 메리 F. 스크랜턴 여사와 종교가 같고 여사 이름이 아버지 고향인 스크랜턴과 철자가 같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스크랜턴 여사는 북감리교 선교사로 1885년 한국에 와 다음해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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