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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기에 - 로랑스 타르디외

박미정 |2009.02.27 13:17
조회 708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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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이 밝아오기에, 새벽이 되었기에,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서 도망쳤건만

   내가 부르고 간청하는 희망이 내게로 돌아서고 싶어하기에,

   이 모든 행복이 내 것이 되기를 원하기에,

 

   이제 우울할 생각들은 막을 내리고,

   악몽도 끝이 나고, 아! 무엇보다 야유와

   불만에 찬 얼굴, 그리고 은총 없는 정신이 기승을 부리던

   남들이 사라지고.

 

   마주쳤던 약한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 앞에서

   움켜쥐었던 주먹과 분노도 물러가고,

   끔찍한 원한도 물러간다! 혐오스런 술에서 찾던,

   망각도 물러간다!

 

   난 이제 별의 존재가 칠흑 같은 내 발에,

   불멸의 첫 연습에게서 발산되었던

   그런 광명을 던져놓았길 원하니까.

   우아함과 미소, 자애로움이 가득찬……

 

 

재능있는 신인에게 수여되는 알랭 푸르니에 상과 문학적 성취가 검증된 사랑 이야기에 수여되는 르 프랭스 모리스 로맨스소설 상을 수상한, 로랑스 타르디외의 소설 .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으나 딸의 실종이라는 불가항력의 시련에 떠밀려 헤어진 두 남녀가 여자의 죽음을 앞두고 용서와 화해에 이르는 가슴 뭉클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필립 베송의 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소설. 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재한 아이와 그로 인해 상처 받은 부부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 끝까지 함께한 이야기다. 후자는 좀 더 다른 존재론적 문제. 실종된 아이에서 시작하지만, 아내와 남편은 서로 다른 삶의 길을 택한다. 아내는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삶의 영속성을 유지한다. 즉 아이의 부재를 서서히 삶의 공간과 연결시키고 융합하여 맘속에서 한번도 떠난 적 없는 아이와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남편은 그 처음의 아픔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여 새로운 일상을 키워나간다. 

 

 

지난 십오 년간 난 이 과거를 지워버리고 살았지. 그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으니까. 그것과 나,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 했는데, 난 죽고 싶지 않았어. 난 마흔 살이었고, 아직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어. 쾌락과 기쁨을 맛보고 싶었지. 내 육체가 썩어 문드러져가는 걸 용납할 수 없었어. 그저 묘비 위에 이름만 달랑 남긴 채,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양 나, 뱅상의 모든 게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은 견딜 수 없었지.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을 무엇을 난 아직 해내지 못했으니까. 아니, 그보단 이렇게 말해야겠지. 내가 해낸 것, 우리가 해낸 것이 설령 사라져버렸을지라도 나마저 사라져버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난 매달리고, 저항하며, 살고 싶었어. 아직 살고 싶었던 거야.

-p11

 

 

그러던 중 죽어가고 있다는 그녀의 전갈. 그는 과거로 나간다. 아니 온전한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용기내어 도망쳤던 그곳으로 돌아간다. 

 

 

죽지 마, 주느비에브. 죽어선 안 돼. 난 고독이 무언지 안다고 믿었지. 하지만 이제 머지 않아 네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그건 순전히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네가 죽는 순간 비로소 난 혼자가 될 거야.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산 세월 동안에도 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내게 삶의 용기를 주었어. 세상 어딘가에 네가 존재했으니까. 비록 널 볼 순 없었지만 그래도 나와 똑같은 시련을 겪어야 했던 여자가 아직 건재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 서로를 만질 수 없었어도 우린 함께 손을 잡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이제 네가 사라져버린다면 난 흔들릴 거야. 더는 발밑에 단단한 땅을 딛고 서 있지 못하게 될 거야 .-p25

 

불행은 이유 없이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하며, 너나할 것 없이 약한 존재들이다. 오늘은 행복하지만, 내일이면 먼지처럼 흩어지고 마는 게 삶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넘어지는 걸 보았으면서도 우리 자신만 괜찮을 거라고,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 다음이 우리 차례인 걸 모르는 채. 그러다가 갑자기 발아래 땅이 꺼진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 역시 다칠 수 있으며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덧없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우리의 삶이라고 더 값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교만때문에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걸까?

-p34~35

 

 

최후의 순간에 만난 두 사람은 행복했던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며 부조리한 삶과 화해한다.

 

조용하고 슬픈 밤이다. 체념의 밤. 내가 이 집에 살 수 있었을까? 내겐 주느비에브처럼 클라라가 남겨둔 공허와 맞설 힘이 없었을 것디아. 주느비에브는 클라라를 잊은 적이 없다. 그녀는 부재하는 클라라와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여기로 피신한 것이다. 반대로 난 클라라가 달아나도록 내 기억과 내 몸에서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었다. 난 그애를 두 번 잃은 셈이다.

-p106


"의사가 나한테 마지막이라고 하는 거야. 난 마치 긴 꿈에서 갑자기 깨어난 사람처럼 자신에게 물었지. 이제 나한테 남은 게 무얼까 하고. 그것은 당신이었지.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것, 뱅상, 우리 두 사람의 사랑, 그리고 클라라, 그애의 실종…… 이게 내 삶이야. 이 삶이 누린 기쁨과 상처. 나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왜 삶의 밝은 면만 기억해야 하는 걸까? 빛을 눈부시게 만드는 건 어둠인데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끔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만일 우리가 클라라를 잃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난 순간의 가치를 몰랐을 거야. 슬퍼하지 마, 뱅상. 영원은 시간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깊이 속에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주는 현기증 속에 있어. 내가 누구한테 감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죽음이 무언가를 향해 열려있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이 빛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될 거야. 빛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어. 그렇지?"-109


시간은 이제 흐르지 않고 얼어붙어버렸다. 아니면 녹아서 사라진 건지도 모르지. 어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공간 속에 반듯이 잠겨 있을 뿐이다. 그때까지 내가 한번도 침투해본 적이 없는 공간. 삶과 죽음, 움직임과 정지,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하나가 되어버리는 곳.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말을 건다면 과연 내가 대답할 수 있는지, 그 사람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난 지금 주느비에브가 들어가고 있는 세계의 기슭으로 다가서고 있는 중이니까.

-p119~120

 

 

이 여정을 통해 작가 타르디외는 소설의 제목과는 반대로, ‘존재하는 영원’을 그리고자 하고 있다. 사랑에서 끝이란 있을 수 없고,  언제나 영원으로 기억될 것이며 부재했던 아이란 그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그들과 함께인 행복한 아이만 있을 뿐이란 걸 알기에... 영원한 것은 진실로 있다.

 

 

주느비에브를 잃고 있는 이 순간, 내 안에서 영원히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던 딸아이의 얼굴이 다시 나타난다. 삶은 어떻게 같은 순간에 거두어가고 주는 것일까?

-p133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순간마다에 좌절할 것도, 환희에 찰 것도 없다. 진실 속 숨은 거짓과 거짓 속 숨은 진실 사이에서 너무도 반복적인 삶을 영위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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