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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 한산도 대첩

조정환 |2009.02.28 21:16
조회 549 |추천 0

 

 

 

 

 

 

 

 

 

불멸의 이순신 - 한산도 대첩

 

이순신은 전라좌수사에 보직되어 수군을 새롭게 창설하고 전투선인 판옥선을

수십척을 건조하고 미약하지만 최선을 다하면서 왜국 침입에 대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임진년 발생한 왜국 침입 후 보름이 넘도록 출전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왜국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조선은 약하다

라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충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결국 도도 다카도라를 비롯하여

왜국 장수들 조선수군이 사거리가 길고 화력이 강한 화포가 탑재된 사실조차 알지못해

이를 얕보게 되었고 결국 이순신은 출진할 때마다 20척 내외로 한 모든 소규모, 중규모

해전을 여러번 대패하게 됩니다. 이런 여러번의 해전 속에서도 이순신의 함대는 전혀 피해를 입지도

않게되자 대부분의 왜장들은 이순신의 힘을, 조선함대의 강력함을 두려워 하여 부산진에 소이 짱박히게 되지만..

 

단 한명의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달랐습니다.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

이순신이 출생한 뒤 9년뒤인 1554년 오우미에서 출생하였고 19세까지 아사이 일족의

사무라이로 지내다가 1573년 아사이 일족이 오다가(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군)에 멸망당하면서 

오다가의 하시바 치쿠젠노카미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휘화가 됩니다.

시간이 지나 와키자카는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면서 시즈가타케 7본창 중 한명이 되고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 등과 함께 임진년에 수군으로 편재되어 조선을 공격하게 됩니다.

한산도 대첩이 있기전까진 용인에서 천여명의 병력만으로 이광의 조선 민,관병 5만을 와해시키는 등

7본창으로서의 능력을 한 것 발휘하지만 한산도 대첩 이후 그의 사무라이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은

송두리째 뽑혀질정도로 이순신에게 번번히 혹독하게 당하게 됩니다. 

와키자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일본으로 돌아가 세키가하라라는 두개의 세력으로 쪼개져 발생된

세키가하라 라는 큰 전투에 참여하게 되고 다른 장수들과 달리,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붙어 자기 영지를

지키는 것에 멈추지 않고 5만3천석까지 자기 영지를 늘린 후, 자기 아들에게 물려준 뒤

1626년까지 수명을 다 채우고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와키자카의 가문은 에도시대(조선 후기)까지 후다이라는 명망높은 가문이 되었다고 합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자신의 수군장수로서의 지식과 힘을 믿고 왜국 수군 총 사령관인 구키 요시타카의

명을 어기고 홀로 이순신이 지키고 있는 한산도로 진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와키자카의 수군 전투선만

백척이 좀 안되었다고 하니 이순신의 함대는 처음으로 자신의 함대에 수배가 넘는 병력과 맞붙게 됩니다.

이순신은 미리 띄어놓은 탐망선과 망루등으로 와키자카가 한산도로 쳐들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동안 자신의 함대의 수배에 달하는 병력을 와해하기 위해 준비했던 카드들을 하나씩 준비시키게 됩니다.

 

먼저 두척의 판옥선으로 와키자카의 함대를 한산도로 유인했습니다. 와키자카는 자신을 유인하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와키자카 또한 자신의 카드를 믿고 속아주는 척하며 두척의 판옥선을 전속력

으로 쫒게 됩니다.

 

 

와키자카는 그동안 이순신이 일자진( 진형 : _-_-_-_-_-)으로 왜국 전투선들을 분멸하여 왔기 때문에

이순신이 한산도의 좁은 협수로를 띄고 일자진을 펼칠 것을 예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숨겨왔던 카드를 뽑으니

좌우측 왜해를 돌아온 양동 매복 공격이였습니다. 

 

 

 

 

 

이순신은 한산도 대첩이 있기전 전라좌수사의 병력만으로 적을 분멸하겠다는 통보를 경상우수사와 전라우수사

에게 통보하여 왜군은 물론이고 아군까지도 속인 상태였습니다. 와키자카가 왜해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병력이 왜해를 비롯 다른 수로의 적들을 사전에 막을 만한 병력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와키자카의 양동매복공격은 사실 그의 손바닥 안이였던 것이였습니다.

그은 양동매복공격을 피해 한산도의 좁은 협수로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게 됩니다.

그는 적을 완전히 유인하여 자신이 완벽하게 유리한 지형지물과 고지를 가진채 싸움에 임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촉의 재상 제갈공명과 같은 전투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는 계획했던 위치에 다시 선회하여 새로운

진형을 펼치게 됩니다.

 

 

 학익진이였습니다. 하지만

 

 

와키자카는 비웃고 말았습니다.

학익진은 육군과 수군 모두 가능한 진형으로 적을 감싸는 형태로서 적보다 수배에 달하는 병력이 있어야만

그 공격력이 극대화할 수 있지만 적보다 열세인 병력인 이순신이 학익진의 진형을 펼치기에 와키자카는

비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병력이 열세라면 측면 공격에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뒤돌아서 측면 공격을 명령한 와키자카.. 하지만..

 

 놀란 와키자카의 부관.. 그것은..

 

 

 

 

 

그것은 바로, 경상우수사 그리고 전라우수사의 병력이였습니다.

왜해 섬 뒷편에서 매복하고 와키자카를 기다린 병력은 일제히 신호에 의해 적을 둘러싸게 됩니다.

와키자카는 놀랄 틈도 없이 이순신의 조선함대에게 삼면에서 공격 당합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정면에서

 

 

 

초전박살이납니다.

하지만 와키자카는 이에 굴하지 않고 포격이 멈추자마자 대장선인 이순신에게 돌격하게 됩니다.

 

 

와키자카는 과연 왜국 최고의 수군 장수로서 화포의 약점인 장전시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우째..

이순신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습니다.

한산도 대첩의 최대 변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판옥선에 있었습니다.

판옥선은 재자리 선회가 가능한 평저선이였습니다. 평저선이라 함은 밑이 말그대로 평평하여 수압에 영향을 받지

않고 회전이 아주 빠르고 용이한 형태였습니다. 이것을 이순신은 화포사격의 맹점인 재장전 시간을 없애는데

성공했습니다.

 

우선 왼편의 화포를 사격 후 재장전 하면서 배를 돌립니다.

 

 

 

 

 그런 뒤 오른편에 있는 화포를 사격하는거죠 -0-

 

 

말처럼 간단히 보이겠지만 사실 굉장히 힘든일이였습니다.

20명의 인력의 힘으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전투선이였기 때문입니다.

180도, 360도를 정확하게 선회하기 위해서 수군들은 얼마나 고된 훈련이 필요했을지

상상이 안갑니다. 더구나 한두척도 아니고 수십척이 명령을 받고 정확하게 진형을 짜서 움직이고 이동하며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상황.. 그 일분 일초에 화포 사격 한번이 더 이루어지고 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곧 승패하고도 연관이 큰 것이였습니다. 이순신의 23전 23승 신화는 수군들의 힘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였다고 생각됩니다. 어찌되었든

 

 

와키자카는 재장전시간이 거의 없고, 삼면의 적에게 둘러쌓여 있으며, 앞으로 가는 족족 분멸당하는

자신의 전투선들을 보게 됩니다.

 

 

왼편에 있는 화포를 다시 맞고

 

 

 

다시 오른편에 있는 다시 맞고 -0-

 

 

 

 

 

와키자카가 이리터지고 저리터지는 가운데

한국사람이면 누구든지 알고 있는 배가 연기속에서

 

 

 

 

그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거북선이였습니다. 거북선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지붕만 덮어서 적이 올라타지 못하는 기능만 갖춘

전투선이 아니였습니다. 아니 그 기능만 갖춘것은 맞긴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최고의 돌격선이 된 것이였습니다. 적진 깊숙히 침투해도 측면에 화포가 없는 왜국 전투선에는 도선할 수 없는 병력과 댓포라는 총들밖엔 없었습니다. 결국 유유히 돌격하는 거북선에게 완전히 분멸당합니다.

 

 

[거북선을 창안, 제작한 나군관의 발포 명령 장면]

 

 

 

 

결국 완벽히 분멸당하는 와키자카의 함대들 속에

 

 

 

승리를 외치는 조선 수군..

 

 

 

자신에 차 홀로 이순신 함대에게 도전하였다가 4분의1의 병력에게 완벽히 자신의 함대가 분멸되어 울부짖는 와키자카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이 전투에서 죽은 와키자카의 병사는 모두 8980여명, 분멸된 왜선은 모두 59척, 완벽한 패배를 당한 와키자카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는 듯 합니다.

 

 

[시청자들도 불멸의 이순신 방영 당시 이순신에게 매일 같이 당한 와키자카가 안쓰러웠는지

여러방식으로 위로아닌 위로를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순신은 이 한산도 대첩으로 인해 전란을 축소시키는데 크게 성공하였고

적들을 부산진에 묶어두는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선조에 의해 오직 조선의 백성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이순신은

병사들에게, 백성들에게 찬양받고, 어줍잖은 군왕의 보잘것 없는 명령을 불복종 했단 이유로

파직당하게 되며, 고되고 고된 고초를 당하게 됩니다.

전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한게 하나도 없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자신의 입지를 불편케 하는 것, 그것이 고작 자신의 안위만을 명예만을 지키기 위해서 인데도 불구하고

진정한 실리를,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그것들을 버리려 하는 짓거리들을 일삼는 대통령과 정치인들..

자신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것인지..

이 드라마에서 아니 모든 사극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대사입니다.

 

이순신의 전략은 제갈공명과 닮았고, 이순신의 이상은 국가의 재상과 닮았으며

이순신의 인격은 자신의 아들 딸들에 대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그처럼

조선의 백성들을 아끼는 그마음은 그와 닮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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