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활치료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이러니 저러니 찔찔거려도
내가 헛투로 대학생활을한게 아니고 재활치료를 배우면서 보람이 있다고 느낀건 정말 오랜만에 느낀 감정이었다.
아니 그보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나는 그래도 사회에 어울려 살아 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부끄럽지 않은 생각을 할 수있었다.
아침 11시 40분경 강변역에서 신도림을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거리는 40여분인데다가 가방은 무겁고 사람은 많고
아예 문 옆 명당 자리로다가 몸을 들이밀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면서 한 참 가고있는데 종합운동장역에서
중년의 아주머니와 10대후반 혹은 20대로 보이는 아들이 함께탔다.
문제는 그 아들이 지체장애아였다는 것
어미 캥거루가 주머니에 아기 캥거루를 품듯
혹은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뒤에서 가슴팍으로 안아주듯
아들을 자신의 가슴팍안으로 끌어안았다.
아들의 등이 엄마에게 거의 기대어 있을만큼
그냥 그런 그 모자의 사소한 행동에도 자식을 아끼는 엄마의
모정 , 장애아 아들을 둔 엄마의 사랑이 듬뿍 느껴질만큼
내 눈에 확 사로잡혔다.
그런데
평온했던 지하철 안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한건
내가 기대어 선 난간 옆에
30대쯤으로 보이는 아줌마와 6-7살 정도의 아들이 탄 이후부터다.
난간 옆에 나와 지체장애아를 아들로 둔 엄마와 그 아들이 섰고
난간 바로 옆에 일반아동을 둔 엄마와 그의 아들이 나란히 앉았다.
중심을 잡기 어려운 장애아가 자꾸 앉아있는 어린 남자아이에게
스치는데 그 30대 아줌마는 손 등으로 보는 나마저도 기분이
확 상할만큼 여러차례 그 장애아의 몸을 밀쳐냈고
'기분이 더럽다'는 그 문구가 얼굴에 확 드러날만큼
괴상한 표정을 연신지어댔다.
그 광경을 장애아를 아들로 둔 엄마가 보지 못한건아니다.
이내 삼키고 삼키며 인내하는 모습이 내 눈엔 보였다.
그렇게 싸늘한 기운을 남긴채 두정거장쯤 더 흘렀을까
결국 싸가지라곤 찾을 수없는 그 30대 아줌마는
저리 좀 가라고 소리쳤고
웅얼웅얼 제 할말을 하는 지체장애아에게 말도말라고
싹둑 잘라말했다.
정말 얼굴은 잔뜩 찌푸리고 지하철이 떠나가라 외쳐대는
이야기속에는 ,
침 질질 흘리는 장애아는 더럽다 . 왜 밖으로 데리고 나왔느냐
왜 우리 아들에게 치대며 , 안좋은 기운을 옮기느냐
이런식의 개념을 상실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어디 입을 가진 사람이 입밖으로 낼 말들인가.
눈물이 금방이라도 그렁거릴 것같던 장애아의 엄마는
내 마음같아선 대판 싸우기라도 하시면 좋으련만
죄송하다고 허리숙여 말하고 또 말했다.
정말 왠만해선 나서지 않고싶지만
어린내가 감히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줌마에게
거의 대들듯이 말했다.
'왜그러세요. 진정하시고, 생각을 하고 말하세요'
화가 잔뜩 나고 흥분되어 이성을 잃을뻔했던 나의 한마디에
옆에계시던 50대 아저씨도 거들어주셨다.
나는 그 천진난만한 지체장애인과 반대편 난간옆으로 이동해서
사당부터 구로디지털단지역까지 대화, 아니 수다를 떨었다.
나도 대학에 입학하기전에는 실습을 해보기전엔
아프고 약한사람이란걸 알면서 선뜻 나서서 돕거나 다가가길
어려워했는데, 이젠 그들도 그냥 내겐 너무 익숙한 사람들이다.
여전히도 장애인이 더럽고 가까이 하면 안되며
자기 아들과 어울리는걸 끔찍히도 두려워하는
개념없고 생각없는 어른들이 있긴한가보다.
그렇게 곱디 곱게 키워서
어디 사회라는 험난한 곳에 나와 얼마나 잘 사나보자고.
지체장애아의 어머니가 내게 고맙고 미안해요 라고 말했지만
하나도 고마울 것도 미안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아를 아들로 뒀다는 사실이 죄가 되는건 절대아니다.
그걸 죄라고 생각하는 뻔뻔한 사회가 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