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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영광이죠. 이런 좋은 일에 참여했다는 점에 우선 굉장히 기쁘고요. 이 캠페인 자체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기꺼이 불러 주시기만 하면 영광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서재는 오픈 되어 있고 문도 없어서 직원들도 언제나 들어와서 책을 볼 수 있는 그런 열린 공간입니다. 공간을 구획하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도록 모두 에게 공유하고자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로재(履露齋)라는 집단 자체가 공유하는 거죠. 책은 지식이고 모두가 공유해야 마땅한 것이니까요. 책의 가치는 모두가 나눌 수 있을 때 커지는 것 같습니다.
에릭 구나르 아스플룬드(Erik Gunnar Asplund)가 설계한 스톡홀름의 중앙 도서관인데요. 이 곳은 가운데가 동그랗게 생겨서 열람실 가운데 앉아 있으면 온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즉, 책이라는 세계 속에 있다는 것 자체 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한눈에 수만권의 책을 볼 수가 있어서, 세상 에서 가장 멋진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곳은 직업상의 정보를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공간이고, 한편으로는 굳이 가서 책을 읽지 않더라도 제 지식의 저장소가 여기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 한 에너지 를 얻습니다. 실제로 추상적인 에너지뿐 아니라 무언가를 상상하게 되면 구태여 보지 않더라도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이렇게 책더미들을 곁에 두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결국 서재라는 자체가 제가 하는 건축 자체를 지지해주는 실질적인 자산입니다.
사실 책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값이 싸요. 어떤 사람이 일생을 들여 한 권의 책 을 저술하는데 그 사람의 인생을 불과 몇만 원으로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 값이 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을 살때마다 너무 미안한 생각 을 하게 됩니다. 이 서재를 보면 그러한 수 천명의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고 있 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힘도 나고, 용기도 얻습니다.
특별히 서재를 계획했던 건 아니고요. 건축이 라는게 결국은 다른 사람의 삶에 관한 일이니까.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정보를 얻 기 위해서 저혼자 모든 사람을 경험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러한 정보를 얻는 소스로 가장 좋은건 책이기 때문에 많이 읽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의 양이 너무 많아 져 처치할 방법 을 찾다가 이렇게 서재를 구성 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번역된 책을 추천하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천 리스트에 꼭 넣을 수 밖에 없었던 외서 2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문화비평가이자 소설가이자 화가인 존 버거 라는 사람이 쓴 ways of seeing이라는 책인데요. 사물을 보는 법이라는 뜻입니다.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놀라운 책이죠. 번역본이 있지만 외서가 훨씬 얇고 보기 쉽게 되어 있어 추천하고 싶습니다.
또 한 권은 ‘공허에서의 대화’라는 dialogue in the void(마티 메지드)입니다. 이 책은 친구인 사무엘 베켓과 자코메티,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적은 글인데요. 두 사람의 창작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그 근원이 어떤 강박관념 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표현하 였는데요. 이 표현에 굉장히 공감했습니다. 저도 참 소심한 사람이거든요.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이런 실패에 대한 소심함이 나쁜 것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저뿐만 아니라, 건축가들은 기본적으로 대부분 소심합니다 (웃음). 자기가 만든 건물이 실패할 경우에 한 사람이 완전히 실패한 인생을 살 수도 있거 든요.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건축가들이 가장 소심하지 않은가 생각 합니다.
책에 지배당하는 게 좋은가, 책을 지배하는 게 좋은가’... 이것은 제가 항상 가지고 있는 의문입니다.
이 의문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 재미있고 좋은 것 같습니다. 바로 책과의 갈등 구조인데요. 예를 들어 책방에 가서 책을 살 경우, 책이 그저 너무 좋으니까 모든 책을 다 사고 싶다는 생각과, 이 책을 가져가면 시간이 없어 못 읽을 텐데 라는 고민과, 어렵게 산 책을 곁에 쌓아 놓고서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 라는 고민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책과의 갈등 구조이자, 책/지식/지혜와의 스트레스인데요. 이런 스트레스는 절대 사람을 약하게 만들지 않고, 선하게 만들고, 강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책과 갈등 구조를 가지고 살아보시기를 강력 추천해 드립니다.
막스 피카르트’ 라는 철학자가 쓴 [침묵의 세계]입니다 1992년도에 처음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요. 제가 ‘빈자의 미학’ 이라는 화두로 좀 더 많은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 침묵, 비움, 정적, 고요, 절제를 테마로 여러 문헌들을 조사하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서구의 물질 문명이 도를 지나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에 쓰여진 책인데요. 오히려 지금 우리 시대에 딱 맞는 책이 아닌가 합니다. 도시나 환경이 위험할 정도로 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에 시간이 갈수록 더욱 요긴한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특히, [침묵을 모르는 도시는 몰락을 통해서 침묵하게 된다]는 마지막 경구가 섬뜩한 울림을 전해옵니다.
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