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대성당 피에스타)
[꼭 손에 피를 묻혀야하나?]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법관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둘러싸고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하여 법원장으로서의 당연한 업무범위에 속한다면서 부당한 행위가 아니라는 입장과, 법관의 독립을 해한 행위로 비난받을 일을 하였다면서 사퇴까지 요구하는 입장이 극렬하게 대립한 가운데 지난 2월 18일 이용훈 대법원장의 삼성사건에 대한 대법원재판부의 재배당 및 특정 대법관 배제행위까지 들고 일어나 일각에서는 대법원장 퇴진까지 요구하는 사람들도 등장하였다.
먼저 법원장의 업무범위에 속한 당연한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1. 법원장이 그러한 메일을 보내게 된 배경, 즉 당시 법관들이 촛불시위사건 재판을 어떻게 진행하여 왔으며, 그러한 재판 진행은 어떠한 법적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가 없이 행하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2. 법관이 담당한 사건에 적용할 법률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면, 헌법재판소법 제42조에 의하여 당해사건의 재판의 진행이 정지되지만, 반면에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해당 법률을 적용하여 재판을 하게 되므로 법관이 위헌심판제청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법관이 위헌심판제청을 하였다고 하여 담당 사건의 심리나 선고를 미루는 것은 법률상 아무 근거가 없는 재판의 지연행위이다.
3.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지만, 법률은 법관에게 '재판을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권한'까지 부여하지는 않았으므로 법관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 것은 직무를 게을리 하는 것이다.
4. 법원장이 행하는 사법행정사무와 소속공무원에 대한 지휘,감독권(법원조직법 제29조 제3항)은 사법부에 존재하는 행정사무로서 재판작용 또는 사법작용에 부수하여 생기는 재판의 효율성이나 지연방지, 법령의 공정한 적용 등 일반적인 사항에 대한 지휘, 감독권에 의한 것이라면 직무상 당연한 것이다.
5. 법원장 입장에서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에 대하여 위헌심판제청을 하지 않은 법관들에게 통상적인 사건처리 필요성을 지적한 것은 당연한 행동이고, 거기에 재판권 침해의 여지가 없음은 명백하므로 이러한 사정을 무시한채 재판간섭이라고 목청을 돋우는 것은 사법권 독립이라는 명분만을 내세워 사건을 호도하는 것이다.
6. 만약 이번 사태로 신영철 대법관이 사퇴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 법치주의의 확립을 위하여 묵묵히 일해 온 다수 법조인의 가슴에 또 다른 피멍으로 기억될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당한 간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1. 우리 헌법은 제103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하여 법관이 정치권력은 물론, 다른 국가기관이나 사법관료, 금력, 여론의 부당한 압력 등 법원 내·외부 일체의 세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입각한 법조적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함을 규정하였다.
2. 법관에게 압력으로 또는 부당한 간섭이나 지시로 느껴질 만한 의견 표명이나 지시, 관여 등은 설사 그것이 사법행정적인 측면에서 개별 법관의 상관인 법원장이나 상급자에 의한 것이라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3. 신 대법관은 이메일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의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전했고, 대법원장도 그런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판사는 자기 소신에 따라 판결하고 다른 영향을 받지 말라는 원칙론을 말한 것" 뿐이라고 하지만, 곧이들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4. 법원이 사건심리 중에 동일한 쟁점이 다른 재판부에 의해 헌법재판소에 회부되었다면 위헌결정이 나면 이미 선고된 판결은 위헌법률을 적용한 잘못된 판결이므로 상급심에서 파기되고, 당사자에게 부당한 부담을 주므로 헌재판결시까지 재판을 연기하는 것이 관례인데 촛불사건에서는 재판부에 따라 독자적으로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5. 법원조직법 상의 사법행정사무와 소속공무원에 대한 지휘,감독권(법원조직법 제29조 제3항)은 사법부에 존재하는 행정사무로서 재판작용 또는 사법작용에 부수하거나 이를 지원, 운영, 관리하기 위한 인사, 예산, 회계, 시설, 통계, 송무, 등기, 가족관계등록, 공탁, 집행관, 법무사, 법령조사 및 사법제도연구에 관한 사무 등에 관한 사무를 의미하므로 법원장은 재판작용, 즉 법률상의 쟁송에 관하여 심리하고 판단하는 업무에는 관여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6.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서 변호사 실직이 사회문제가 된 요즈음 하급심 법관들이 위축되어 보직과 승진에 신경을 써가면서 재판을 해야 하는 법관들에게 대법원장의 뜻은 하늘의 계시와 같으므로 당연히 외압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7. 대법원장이 연루된 사건을 대법원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므로 당사자들의 결단이 있지 않는 한, 한국의 사법부는 불신의 깊은 늪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어느 쪽도 만만치않고, 법관 경험이 없는 변호사로서는 일방을 함부로 나무랄 수 없기는 하지만
도대체 엊그제 임명된 대법관이 이렇게 허망하게 분란에 휩싸여 전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게 생겼으니 정말로 대한민국 법원의 일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법관에게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 분쟁에 대하여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법적 평화를 유지하고 행정부의 권력남용을 억제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려는 헌법의 취지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살릴 것인지 신대법관의 행보와 대법원의 처분이 주목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에서 임명된지 며칠 되지도 않은 대법관의 사퇴를 무조건 강요하는 것 또한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불확실한 사실과 소문만으로 관련자를 매도하고, 매장하여 사퇴를 강요함으로써 항복을 받으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민주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너는 꼴도 보기 싫으니 아예 없어져라”는 마음으로 손에 피를 묻혀서 사태를 해결하여야 할까?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법원의 진상조사 후 법관으로서의 징계사유에 해당하면 법관징계법에 따라 징계처분을 하면 될 것이고, 다른 판사의 재판업무를 위계나 위력으로 방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하고, 나아가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잘못이 있다면 헌법절차에 따라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하면 될 것이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가정의 화목을 해치는 일을 하였다면 가족들이 모두 의논하여 충분한 해명을 듣고 서로 의논하여 혼을 내던가 벌을 주고, 그래도 안 될 일이라면 이혼을 하던가, 헤어지면 되는 것을 확실하지도 않은 의심스러운 일을 하였다고 하여 아무런 진실규명 절차도 없이 “더러운 년, 너 나가 죽어라!”고 한다면 그 가정은 이미 가족들의 모임이 아니라 원수들 간의 동거지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우리 시민사회에서 가장 먼저 고쳐야 할 점은 이러한 여러 가지 법절차가 존재함에도 헌법과 법률에서 임기를 보장한 공무원에 대하여 법절차를 무시하고 무조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강요하고, 이에 불응하면 불법인 것인양 사람들을 호도하는 풍조라고 생각한다.
법원은 국민들에게 그동안 법원장이 원만한 사법권의 행사와 공평한 재판의 확보를 위하여 행하여 온 사법행정권과 소속직원에 대한 지휘, 감독권의 내용을 설명하고, 그 범위와 한계를 명백히 선언함으로써 추후 법관의 독립을 해하지 않는 확고한 방어막을 제도적으로 정립하고, 국회는 필요하다면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여 더 이상 법원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효율적인 대책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이 국가적 위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온 국민의 힘을 모아
난관을 극복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09. 3. 11. 최영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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