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나 어느 모임에서나 단체로 즐길 수 있는 게임 중 한 가지가 마피아다. 게임 말고 마피아 하면 떠오르는 게 영화 <대부>고 여기서의 마피아는 비정한 조직이지만 그래도 낭만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다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의 덕이다. 영화는 그렇고 실제는?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르포르타주 <고모라>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주의 마피아 카르텔 카모라의 실체를 파헤친 책이다.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나폴리. 우리는 학창시절에 나폴리 민요를 몇 곡 배웠고 그 덕에 나폴리 하면 어떤 낭만적인 이미지를 마음에 그려보기도 한다. 민요 말고 유명한 게 있다면 항구와 피자 정도가 우리가 나폴리에 대해 아는 전부겠지만.
사실 몇 년 전에 이탈리아를 여행했었다. 그래봐야 10일 정도라 남부는 제끼고 북부만 돌았다. 여행사가 숙박처와 교통편만 제공해 주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일정을 짜는 그런 여행. 혼자라서 이곳저곳 들추고 다니는 재미가 있었던 이 여행은 원래는 이탈리아 일주가 목표였다. 듣자하니 남부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매치기가 극성이라 위험하다고들 해서 뺐다. 그래도 나폴리 정도는 가 볼만하다는 말에 다음을 기약 했었다. 하지만 <고모라>를 보니 나폴리와 그 인근지역이 차마 그런 곳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뒤 위 조직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아 5명의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채 3년간 신변보호를 받았다는 둥, 책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 최근에 해외로 이주하겠다고 로베르토 사비아노가 천명했다는 등의 얘기는 그만큼 이 책이 나폴리 마피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책 제목인 <고모라>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마피아 조직이라고 해도 그 실체가 없으며 일족들이 지배하고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일족 사업의 지향점이 바뀌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체제를 유지해 나가는 이곳의 마피아 조직 카모라는 그런 카르텔이다. 이들은 이를 시스템이라고 부르는데 누가 머리에 있든 어쨌거나 조직은 돌아간다. 게다가 위계질서가 수직적이지도 않으며 각 일족들이 알아서 사업을 벌이는 등, 그래서 더 그들의 실체를 파헤치기가 어려운데 사비아노는 자신이 직접 조직에 침투하여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썼다. 저자 자신도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롱 부츠의 코 앞에 공 하나를 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이탈리아. 라치오 주에는 수도인 로마가 자리하고 있고 그 바로 밑에 캄파니아 주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나폴리가 있다. 이들 범죄조직이 언제부터 득세했는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어렵다. 캄파니아 주에 있는 여러 도시의 시 정부가 해체될 정도로 카모라는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이 지역을 주름잡고 있는데 문제는 이탈리아 GDP의 1/3을 지하경제가 차지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카모라라는 이 마피아 연합 카르텔은 이탈리아 전반 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며 국지적 분쟁이 잦은 요즈음 무기밀매사업 등을 벌여 이권을 취하기도 한다. 나폴리와 인근 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활약하는 이들은 이곳에서 용인되는 불법을 바탕으로 타 지역이나 다른 나라들에서는 합법을 가장한 사업을 벌인다. 이들은 정치적 감각도 탁월하고 앞을 내다보는 능력도 있어 같은 사업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여 이득을 취하기도 하고 타국의 불안한 정세를 이용, 자신들이 진출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그 결과 동유럽과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그 세를 확장하기도 했다.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이 책의 문체는 하드보일드한데 오히려 그런 점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몸에 공포감을 점점 더하여 준다. 일족들이 벌이는 사업 보다는 이들의 파벌 싸움을 벌일 때 펼치는 복수혈전, 그리고 여기에 연관있다고 의심되는 무고한 시민들-조직의 누군가와 조금 친하다는 이유로- 을 살해하는 등의 모습을 보며 원래 이탈리아인들의 기질이 다혈질인데 여기다가 범죄자가 더해지면 어떨까하는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지기도 한다. 이 책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작년 칸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다. 영화의 포스터보다 더 유명한 건 저 위에 있는 영화 스틸이다. 아마도 조직원이 되고 싶어하는 소년을 훈련시키는 듯하다.
그들이 본거지에서 자신들의 불법이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시민들이 그들을 두려워하며 아무도 똑바로 그들의 눈을 보며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꼬봉이라도 그들의 비호를 받을 수 있고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손에 쥘 수 있으며 그런 이유로 소년들은 마피아가 되길 희망한다고 한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일원이 되기를 꿈꾸다니.....
저자는 직접 소년들과 얘기를 나누었던 일을 기술하는데 이들은 나이로 보면 중학생에 불과한데도 벌써부터 어떻게 총을 맞고 죽어야 고통스럽지 않게 빨리 죽는지를 알며 이들을 받아들인 조직은 나이는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방탄조끼를 입히고 직접 총을 맞는 연습을 시킨다고 한다. 그래야 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저자가 한 소년의 몸에서 발견한 여기저기 멍든 자국은 다 그래서 생긴 거란다. 이 소년들의 여자친구들도 카모라에 몸을 담은 이들이 언젠가 파벌싸움에 의해 희생될 것을 알며 벌써부터 그것을 감내하는 모습은 이게 분명 제대로 자라는 아이의 모습은 아닌데 대담한 건지 아니면 정신줄을 놓은 채 체념하여 그냥 그러고 사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패션의 나라이기도 한 이탈리아. 그러나 패션 사업이 카모라와 얽혀 있다면? 번화하는 도시의 건축물에 쓰레기를 섞어 짓고 있는데 이들이 일조하고 있다면? 한 일족이 경찰에 붙잡혀 가고 재판에 회부되어 상상할 수도 없는 막대한 재산을 압수 당해도 이 카르텔은 멀쩡하기만 하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유연하며 그래서 더욱 더 잡기 힘들기 때문일까? 책 첫부분에 나오는 나폴리 항에 대한 묘사는 이들이 저지른 만행(?)이 어떤 식으로 자행되는지 보여주는데 몇 년 전 안젤리나 졸리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입었던 의상이 유명 패션디자이너가 조직이 관리하는 가내 수공업형 옷 공장에서 일하는 한 장인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과 유명제품을 판매할 때 진짜와 가짜를 섞어 팔지만 질적인 차이가 전혀 없어 오히려 카르텔에 이득이 되고 있다는 점 등은 카모라가 나폴리와 인근지역에서만 득세하는 조폭집단이 아니라 얼마나 경제와 밀착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폴리 항의 규모에 무지 놀랐는데 항구가 작았다면 수입되어 오는 원자재와 중국산 물품들이 세관을 통과하기가 까다롭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중국으로부터 위와 같은 선적품이 들어올 때 분명 물건은 이곳을 거쳐갔는데 어딘가로 사라지고 세관도 피해간다. 그럼으로써 수입품의 값은 싸지고 가격경쟁이 가능해 진다. 일족이 벌이는 사업은 다 이런 식이다. 건물을 지을 때 시멘트에 쓰레기를 섞어 공사비용을 줄이고 부동산 사업에도 진출하여 시장을 장악하는 등, 이들이 벌이는 사업과 수법은 분명 범죄집단의 것이지만 이래저래 얽혀있어 아주 치밀하게 조사를 하여 여러 사업과 일족들간의 연결고리를 찾지 않는한 카모라의 실체에 한 발자국씩 접근해 가는 건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마약 판매를 통해 이런 발판을 마련한 일족들. 지역의 사람들을 실험체로 이용하여 여러 마약을 섞어 팔기도 한다. 부작용이 없으면 유통시키고 부작용이 생겨 사람이 죽어나가면 그냥 안 팔면 그만. 유럽 대부분의 지역의 마약이 이들 손을 거치지 않고는 판매가 불가능할 지경이라니 말 다했다.
이들은 <대부>에 나오는 패밀리가 아니라 그때그때마다 모습을 바꿔가며 사업을 주도해 가는 일족들의 연합이다.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는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이라고 이 조직을 묘사하는데 그 머리를 잘라 버리면 또다른 머리가 자라며 그 근원은 너무나 깊어서 잘못 들어가면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히게 되는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세계화가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라 일상적인 단어로 자리한지도 오래되었다. 국가 간의 장벽이 없어지고 왕래도 점점 쉬워진다. 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물품의 원산지를 보고 '이런 게 이렇게 먼 나라에서도 들어오는구나' 했던 적은 혹시 없는지? 그런데 이런 무경계의 시대에 맞춰 범죄 역시 경계가 없어졌다고 하면? <고모라>는 이탈리아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화의 그늘도 보여준다. 갑작스런 국제정세의 변화로 공백이 생기거나 적응하지 못한 국가들은 카모라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도 남았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현실을 드러내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다국적 자본 역시 카모라 못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처음엔 실체를 드러내지 않다가 그리고 다국적이어서 들여온 자본이 어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가늠조차 못하고 금융이라든가 경제의 주도권을 결국은 '실체없는 그들'에게 내주고 마는 상황. 그리고 이런 자본은 한 국가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굴러간다. 어느 국가에 진출하고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리면 그만이다. 국가를 초월하기도 한다. 카모라는 나폴리와 인근 지역을 장악한 지역 범죄조직이지만 이들의 세 뻗치기에는 경계도 없고 어느 나라든 상관치 않는다. 합법을 가장해 사업을 벌이고 심지어 그곳에서 성공한 명사로 분류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들의 커넥션을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워낙 일족들이 많은데다 다각도로 사업을 벌이며 그 연결고리를, 앞서 말했듯이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다국적 자본도 그 출처를 알기가 어렵지 않은가.
얼마 전에 본 <인터내셔널>과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고모라>를 읽으면서 범죄조직이나 자본을 굴리는 집단이나 비슷한 무리로 보였던 건 결코 나만의 착각은 아닐 거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