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한·미 FTA 전철 밟는가
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주요 쟁점을 대부분 타결짓고 어제로 전체 협상을 끝냈다. 1년10개월간 진행된 협상은 다음달 초 통상장관회담에서 최종 타결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EU FTA 협상은 쌀·쇠고기 문제나 눈에 띄는 독소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한·미 FTA의 그늘에 가려졌던 게 사실이지만, EU가 중국에 이어 우리의 두번째 교역국임을 감안한다면 그 파장은 한·미 FTA에 못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협상의 기본 구도와 진행이 문제의 한·미 FTA 방식을 답습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한·EU FTA 협상은 자동차·전자·조선 등 제조업부문에서 이득을 취하고, 서비스와 농업부문에선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구도로 진행됐다. 기존의 한국과 EU 간 불균형한 교역 구도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고착화하자는 것이다. 국내 산업부문의 유기적인 균형발전보다는 한·미 FTA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과 EU 간 기계적인 비교우위만 강조된 셈이다. 핵심 쟁점에 대해 공론화를 통해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EU만이 살 길이라며 속도전을 펼친 협상 방식도 한·미 FTA와 닮은꼴이다.
협정의 영향에 대한 평가 또한 우리의 수혜는 부풀리고, 피해는 줄이는 고무줄식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자동차의 경우 유럽의 관세가 높아 우리 측이 남는 장사라고 하지만, 유럽차의 비관세 장벽이나 미국차와는 다른 제품 경쟁력을 무시한 계산법이다. 서비스와 축산·낙농에 대해 우리 협상단의 자세는 백기 투항이나 다름없다. 세계 3위의 서비스 무역적자국인 우리의 최대 서비스 적자 대상국이 EU다. 돼지고기 등 축산물과 버터·치즈 등 낙농품이 무관세로 밀려들 경우, 지금도 숨이 턱에 찬 국내 농가의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한·EU FTA의 숨어있는 쟁점이 얼마나 될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더구나 정부는 속도전만 강조할 뿐 서비스와 농업부문의 피해는 불가피한 것이라고만 강변할 뿐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협정문을 공개해 공론화와 검증을 거치기보다는 일정대로 사인부터 하려 하고 있다. 한·미 FTA에서 보인 오만과 만용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2009년 3월 25일 경향신문